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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16. 2023

좋아하는 화장실이 생겼다

직장에서 숨쉬는 공간


직장에 다니니까 화장실이 좋아졌다. 화장실이 좋다거나 머물러 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평생에 처음이다.


사무실에서 벗어나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없는 작은 공간이 참 소중하다. 첫 직장에서는 사무실을 거의 혼자 쓰다시피 해서 직장생활이 이런 느낌이라는걸 미처 몰랐다.


일이 많이 바쁜 것도 아닌데도 자리에 앉아있으면 어쩐지 긴장감이 다. 뻣뻣한 정장도 불편하고 언제 전화가 울릴지 모르는 것도 불안하다. 누가 말을 걸거나 일을 시키거나 할까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수한 것 같아서 당황스러울 때, 지적받고 내가 바보같아서 슬플 때, 너무 많은 일이 한번에 몰려올 때는 잠시 혼자 마음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끔 화장실에 간다. 애정하는(?) 칸에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필요한 일들을 한다. 깜짝 세일하는 원피스도 결제하고 브런치도 한 문단 쓰고 그냥 멍때리기도 한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용기가 생긴다.


세면대 거울을 보면서 웃음도 연습하고 어깨도 당당하게 편다. 그리고 웃음을 입에 단 채로 사무실로 다시 들어간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들과 웃으면서 인사도 한다.


화장실에서 용기를 충전하고 와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다음번 화장실에 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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