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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30. 2023

인정받고 싶은 마음

집에서 샌 바가지가...


직장에서 많이 긴장하는 이유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작성하는 문서, 사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 업무 태도 등 매사를 평가받는다는 기분을 스스로 갖고 있다. (물론 실제로 평가할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 모든 평가에서 A를 받아야만 한다고 느낀다.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든 나는 초보이고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걸 인정하는 것만해도 많이 나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초보라서 할 수밖에 없는 실수와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아서 하게 되는 실수를 구분해놓고 후자는 절대 안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 꼼꼼하게 나를 잘 묶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강박적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실수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난이도가 높아진다.


떨어져도 괜찮은 낮은 다리 위를 걷는 사람과, 떨어지면 죽는 낭떠러지를 걷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일을 해도 강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느끼는 긴장감은 정말 다르다.


나는 오랫동안 후자로 살았고 긴장감을 못 이겨 떨어졌고 바닥에서 다리가 부러진 채 죽음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살기로 결정하면서 스스로를 바꾸겠다고 생각했고, 강박증 약도 먹지만 나는 엄청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몸에 밴 습관은 경쟁이 덜한 곳에서도 나를 경쟁하게 만들고 성공을 가져오라고 몰아세운다. 경쟁 한건 한건에 자기 마음대로 내 자존심을 다 걸어버렸다.


강박증, 불안장애 약을 먹고 바뀐건 예전보단 조바심이 줄고 조금 느긋해졌다는 점, 확인은 2~3번만 하고, 10번씩 확인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다는 점 정도가 있다.


살기로 결심하면서 바뀐건 경쟁을 피하고 외진 곳에서 편안하게 살자는 마음이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대신 편하고 좋은 사람들 틈에서 안전하게, 즐겁게 살자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샌가 원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와있곤 한다. 조금 능률이 오르고 살만해지면 다시 예전처럼 포악하게 경쟁에 뛰어들려고 하고 뒤쳐진걸 만회하려고 발버둥친다.


썰물 때가 되면 밀려나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밀물 때가 돌아온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이 정말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는건지, 내가 정말 다르게 잘 살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문제였던건 외부의 경쟁이 아니라... 없는 경쟁도 만들어서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게 우울증을 만든다는걸 알면서도 쫓아가고 있는 내가 바보같고 싫다.


경쟁에서 이기고 뭐든 인정받아야 한다는건 아빠와의 관계 형성과 관련이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아빠의 사랑은 전부 성과와 연관되어 있었다. 경쟁에서 이길 때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그게 학업으로도, 직장으로도 이어졌고 어느순간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도 지금은 알아차린다. 내가 지금 경쟁에 목매고 있다는거, 인정받으려고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다는거, 그래서 괴로워한다는거. 그걸 인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인지한다고 해서 생각과 행동이 바로 바뀌는건 아니지만 그냥 잠깐의 멈춤과 느슨해짐은 있다. 나도 모르게 남들을 따라 맹목적으로 다시 달려가기 전까지.


오늘처럼 불행해진 날에도 잠깐 멈춰서서 이 글을 남긴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이 순간 머리는 믿지 않지만 마음은 믿는 그 말을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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