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May 22. 2023

집수리, 나를 버리는 노동

힘들지만 개운하다

어느 정도 정리된 집 상태...


지하에 있는 보일러 관에 누수가 생겼다. 

이 참에 보일러를 올리기로 했다.

바닥을 깨고 관을 교체하려니 집 장판을 뜯게 됐다.

이 참에 장판, 도배를 새로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30년 된 낡은 빌라이고 한번도 수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판, 도배를 하려니 가구 안의 것들을 들어내야 했다.

문제는 우리집에 책장이 20개라는 거였다.

책이 꽉 찬 책장 20개...

그리고 30년간 한번도 이사 안 다닌 집 특유의 잡동사니들...


오늘은 휴가를 쓰고 노동을 했다. 

나는 이틀째지만 부모님은 일주일 정도 됐다.

책장의 책들을 버릴건 버리고 놔둘건 계단에 두고.

엘베 없는 '사실상' 5층 빌라라서 책과 쓰레기들을 안고 5층을 수십번 오르락내리락 했다.

옷과 짐들은 지하실에 가져다 두었는데 내가 미쳤다고 옷을 이렇게 많이 샀나 싶었다.

분명히 입을 옷은 늘 부족했는데... 비닐을 뒤집어쓴 이 수많은 옷들은 대체 뭐지?




쓰레기들과 책들을 버리면서 나를 비워내는 기분이었다. 난 물건에 애착을 갖고 못버리는 스타일인데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되니 저절로 "다 버려."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진짜 거의 버렸다.  미니멀리스트가 될 예정이다.


평소 같았으면 마음이 아프고 슬쩍 챙겨둘 물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갈만큼 다 뜯어내고 엉망진창이 된 상태에서 5층 계단을 20번쯤 오르락내리락 하고보니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그동안 모은 물건들이나 책들은 사실 미련이다. 꼭 필요한건 아닌데 읽지 않아서 못 버리고, 쓰지 않아서 못 버린 미련들. 그렇게 10년 넘게 쌓아두기만 한 미련들을 훌훌 털어버렸다.


책장들도 들고 가서 내다버렸다. 계단을 올라오는데 이명이 생기고 핑 돌았다. 흑흑... 너무 힘들었다. 살도 버리고 온거 맞겠지? 제발. 다이어트에라도 도움이 된다고 해줘...


다다음주부턴 새롭게 변한 가벼운 집에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살아갈 계획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이 묶인 채 자란 코끼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