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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17. 2023

자살하는 사람은 정말 신호를 남길까

그걸 알아볼 수 있을까

자살에 관한 글을 가끔 쓰는 이유는 죽고싶어서는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가족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기 때문에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든 주위에 자살할 것 같은 사람이 있든 하는 이유로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 있는 주제니까.



자살하는 사람은 죽기 전에 신호를 남긴다는데, 정말 그럴까?


경험상으로는 남긴다.

나도 몇가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죽어도 위안이 되게) 강아지 한마리 키울까?

(그동안 키워줘서 고마워) 사랑해.


앞부분은 말을 안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자살이 성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관심을 끄는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앞부분은 대개 이야기하지 않는다.


쓰던 물건을 정리해서 택배로 보낸다거나 여행을 멀리 가게 돼서 반려동물 좀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는 정도도 흔하진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은 거의 티나지 않게 신호를 남긴다.


심지어 아침까지만 해도 웃고 출근했고 얼마전 같이 효도여행도 다녀왔고 미래 계획도 세우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 방법을 간절히 찾기 때문에 최후에 남긴 글이 긍정적인 내용일수도 있다.


그래서 마지막 신호를 눈치채지 못한건 절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자살자의 구조 신호, 자살의 징후같은걸 언급하는 기사들을 보면 좀 불편하다.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서.


진짜 막으려면 한마디 한마디에 발작적으로 반응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는 내가 강아지를 키울까 하고 물어봤을 때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나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을거다...


막을 수 없었다고 해도, 남겨진 사람들많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평소에 티를 냈더라면, 이유라도 써놨더라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다 지켜봤더라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조금 나을 수 있다. 최소한 이해는 되기 때문이다. 이유도 알고, 죽음을 막기 위해 노력도 했을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나중에서야 자살한 가족의 삶을 알게 된다. 학교 폭력, 직장 내 왕따를 당했다거나 오랜기간 우울증으로 약을 먹어왔다거나 하는 것들을 뒤늦게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남겨진 흔적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간절히 찾아 헤매다가.


내가 자살하려고 했을 땐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커서 남겨질 가족의 고통은 미처 볼 여력이 없었다. 지금은 안다. 자살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같이 죽이는 일과 같다는걸.


글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한테서 자살을 허락받은 적이 한번 있고, 내 아빠가 자살하는걸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둘 다 우울증이 주는 고통이 극심한걸 곁에서 지켜본 경우다.


가족이 극한의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고 모든걸 시도했지만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걸 몇년간 지켜보면 가족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받는 것보단 편히 쉬는게 나을 수 있다는걸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아빠가 한창 우울증으로 고통받아서 매일 죽고싶어할 때 그랬다. 나는 아빠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고, 만일 아빠가 편해지는 방법이 죽음밖에 없다면 내가 너무 슬퍼도 받아들이겠다고. 그걸로 내가 무너지지는 않을 테니까 아빠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도 괜찮다고.


아빠는 결국 죽지 않았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1. 자살하기 전에 신호를 남기긴 하지만 대부분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남긴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하는게 정상이다.


2. 우울증이 있거나 죽음이 떠오를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가족한테 이야기하자. 말해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은 해야한다. 자살했을 때, 그 이유를 생전에 알고 있었던 가족은, 오랜 투병 끝에 보내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 하지만 몰랐던 가족은 길 가다 이유없이 칼을 맞은 것처럼 고통을 겪게 된다.


3. 신호는 알아채지 못해도 평소에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어릴 때부터 '니가 뭘 해도, 너한테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는 무조건 니 편이고 너를 사랑할거라고' 이야기해주기. 때로는 빈말일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니까...) 빈말이라도 그 말은 마지막 순간에 큰 효과가 있다. 살고싶어하는 마음이 악착같이 붙들고 놓지않을 구명보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의외로 말을 하면 해결될 수도 있다. 우울증은 사람의 시야를 극도로 좁혀놓는다. 그래서 본인은 자기가 아주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상황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빨대 정도의 시야로 보고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게될 수도 있다.


현실이 실제로 내가 보는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가족의 사랑으로 인해 좀더 견뎌볼 힘이 생길수도 있다. 그래, 이 사람들(이 강아지, 이 고양이 등등)을 위해서 내가 좀 희생하지 뭐... 우울증의 고통을 좀더 견뎌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바랄 정도의 상태라면,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어가는 사람과 같다. 만일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가족에게 전화해주고 바로 119에 전화해 응급실로 보내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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