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Jun 09. 2023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차라리 화를 내자


자살의 이유 중 가장 큰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모든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살 방법을 고민하고 발버둥친다. 그러다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안보일 때, 비로소 낭떠러지에 몸을 맡긴다.


길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울증이란 병이 사람의 시야를 극도로 좁혀놓기 때문이다.


길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한테만 안보인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사회적 지위도 높고 돈도 많고 가족도 화목하고 뭐든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자살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고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자살할 수 있다. 남들 눈에는 보이는 그 길이 안보이니까.


직장 내 따돌림. 그 직장 나와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자살을 한다. 그동안 겪은 일들이 마치 줄곧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다 우울증이 오면 자살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오면 되는데, 안 보인다. 나올 힘도 없다. 죽음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폭. 부모에게 말해서 이사를 가버리면 된다. 자식이 괴로워 죽겠다는데 전세금이니 직장이니 하면서 이사를 망설일 부모는 없다. 하지만 이미 견디고 견디다 우울증이 왔기 때문에 부모에게 말을 하지도 못한다. 해봤자 의미없을 것 같고 설령 벗어날 수 있다해도... 이미 모든게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까지 내몰리는 사람의 심정은 그렇다.


그래서 인생에 문제가 있으면, 너무 참으면 안된다. 화를 내든 욕을 하든 사표를 쓰든 책상을 뒤집어 엎든 새롭고 낯선 곳에 가서 일년살기를 하든 뭐라도 해야된다. 그래야 죽지 않는다. 견디고 또 견딘 끝에 오는건 달디단 열매가 아니라, 우울증, 어쩌면 죽음일수도 있다.


맞더라도 때리고, 못 때리면 언론사에 제보라도 하고, 무단결근하고 여행이라도 떠나고, 남들이 다 미친ㄴ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악다구니를 쓰고 비명이라도 질러야 한다. (그만두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그만둬야 한다. 그냥 나가면 그때 못했던 말들이 우울증의 먹이로 남는다.)


아직 마음이 건강해서 그럴 힘이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원래 할말 절대 못하는 사람이지만,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는 나름 잘하고 있다. 평소에는 예의바르고 어떤 면에선 간, 쓸개 다 빼주듯 상대를 배려하고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마지막 선을 넘고 갑질하는 사람에 대해선 눈에 뵈는 것 없이 지른다.


사직서는 안 썼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그때 그 직장이 소중했으니까. 할말 다하고 내 할일도 다 하면서 그냥 다녔다. 그럴만한 마음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힘이 없어질 것 같았으면 바로 그만뒀을거다. 세상 어떤 거라도 우울증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나는 우울증에 깊게 빠져봐서 그 패턴을 알지만, 우울증이 없었던 사람은 고통을 참거나 견딜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모를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일 이미 우울증에 빠진 상태라면, 나라면 그냥 그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으로 정신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넉넉히 받을 것 같다. 우울증이 진짜 심하게 왔다면 그 갑질하는 사람을 이미 내 머릿속에 심어놓은 것과 같다. 직장을 나와도, 그 사람을 안 봐도, 우울증은 계속 된다는 의미이다. 그 상태에서 과연 정상인도 버티기 힘든 무직 기간을 견딜 수 있을까?


차라리 월급이라도 받으면서 정신과 2주에 한번 다니고, 심리상담 월, 수로 받는게 훨씬 낫다. 처음에는 상담 가서 휴지 붙들고 통곡하다가 나중에는 갑질하는 당사자 앞에서 태연하게 말대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울증까지 안갔다면 아직 기회가 많다. 명분을 갖고 할 말은 하자. 화를 낸다? 상관없다. 분노는 우리 정신의 면역력, 방어력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화를 내고 돌출 행동을 해서 일어날 어떤 상황도 죽음보다는 낫다.


벗어날 수 없는 그 가느다란 외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을 바라는 달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