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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12. 2023

불량하게 직장생활 중

성실하지 않은데 성실한

마카롱처럼 당 충전 되는 선배들의 조언


이번 직장에 들어오고 나서 나의 근무 태도가 많이 불량해졌다. 선배들이 대충대충 일하라고 많은 격려를 해준 덕분이다.


강박증 약과 불안장애 약의 효과가 이제서야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들어 굉장히 마음이 느긋해졌다. 평생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안해도 돼, 망해도 돼, 대충 살거야'라는 느낌이랄까. 뭔가 누군가한테 잘보이고 싶고 완벽하고 싶은 기분이 없어졌다.


메일을 보낼 땐 한번만 확인한다. 전화할 땐 항상 긴장하거나 미리 시나리오를 생각해두었는데 요샌 그런거 없이 전화기를 들고 본다. 나는 대체로 글을 쓰거나 할 때 한번에 완벽하게 하는 편인데, 예전에는 그래도 못미더워서 두번, 세번 확인을 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엔 한번에 쓰고 확인도 안한 채 상사에게 제출했다.


약이 아니라도 선배들이 참 잘 가르쳐준다.


- 일을 잘하면 성공하는게 아니라 일만 몰린다

- 잘하면 칭찬받아서 좋고, 못하면 다음에 일을 안 시켜서 좋다

- 열심히 한다고 월급 더 받는거 아니다

- 실수하면 인간적으로 보여서 좋다

- 큰 실수를 해도 몇달이면 풀린다

- 웃고 다니고 리액션 잘하는게 일 잘하는거다

- 조직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나 말고) 한둘이면 충분하다

- 일은 잘하는게 아니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사무실에선 일이 많은 것처럼 가끔 한숨을 쉬어라

- 일 없으면 맘 편하게 놀아라

- 일은 내가 하라고 있는게 아니라 해야될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할 필요 없다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느긋해진 것도 큰 것 같다.


사실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지금 직장에서 좀 힘들기도 했다. 처음 경험하는 조직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직장에서 사람들이 다 좋다는거, 경쟁이 없다는거, 처음으로 느긋함을 배우고 있다는거... 이걸로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물론 말이 그렇지 선배들도 다 완벽주의자에 일도 많이 한다. 내 일까지 가져가서 도와줄 정도로. 나도 열심히 하는 편이고.


하지만 예전처럼 부담은 갖지 않는다. 이 결과물로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쓸데없는 두려움이 줄었다. 결과물을 전송해놓고 머리를 쥐어뜯는 일도 없다. 열심히 하지만, 그 후에는 그냥 '어쩌라고'의 마인드로 나간다.


'그래, 나는 오렌지나무야', '난 원래 이렇게 일해', '내 방식이 마음에 안들면 다른 사람 시키세요~'같은 배짱이 조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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