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없이는 발전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은 게으를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경쟁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발전할 수 없다고. 노력하지 않을 거라고. 공산주의를 예로 들기도 할 것이다. 노력에 상관없이 똑같은 결과를 얻을 때 인간은 베짱이가 되어버린다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그런데 공산주의와 경쟁없음은 꼭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하기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건 인정한다. 경쟁 없음이란, 다만 옆 사람의 팔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옆 사람의 팔이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서 얼마나 많은 곡식을 거두고 얼마나 많은 과일들을 수확하는지 쳐다보지 않고, 내 팔과 내 바구니, 내 앞에 놓인 세상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경쟁은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언제? 내가 이기고 있을 때. 최소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을 때. 그 희망이 부서지는 순간 인간은 패배자가 되고 삶의 의미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만다. 애초에 경쟁은 경쟁에서 뒤떨어진 사람에게 제공할 존재의 정당화나 명분같은 건 갖고 있지를 않으니까. 경쟁에서는 승리만 의미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패배해서 바닥에 나뒹굴면서도 다시 일어나 그 승리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희망이라는 마약에 집착한다. 그런데 희망은 정말 필요할까?패배라는 것 없이, 우리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나갈 때도 희망이라는게 그토록 절실할까?
희망이라는 건 참 좋은 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꼭 희망을 가져야 할까? 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만 할까? 왜 희망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면서 지금의 현실을 구질구질하고 벗어나야 할 무언가로 만들어버릴까? 식물들과 동물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게 있을까? 먹이가 있다/없다, 번식할 때이다/아니다, 나는 잔다/깨어있다, 사냥하러 간다/누워있다... 그들에게는 존재와 행동과 판단으로 구성된 세상이 펼쳐져 있고 그것으로 살기에 충분한데 우리 인간들만 희망과 꿈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인생을 이리저리 재단하고 있는 게 아닐지.
그러면서 우리는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끈적한, 지울 수 없는 열등감, 패배의식, 이런 삶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 내가 무능해서 이렇게 괴롭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생각, 생각, 생각. 그래서 점집도 간다. 사주를 보고 타로 카드를 뒤집어가며 희망을 내게 좀 이야기해달라고 애원한다. 나는 이렇게 모자르고 부족한 인간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달라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내 인생에도 엄청나게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 좀 해달라고. 그리고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본다. 그 안에는 해피엔딩이라는 둥근 결말과 결국 잘 풀리는 희망찬 인생들이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의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험을 볼 때, 틀려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내가 이걸 모른다는 걸 발견했으니까. 그리고 모르는 걸 배우고 알아가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곧 망가져버린다. 나는 나를 평가하기 위한 감독관 앞에서 '틀린' 대답을 하고 나의 '뿌리깊은 무식함'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이 점수로 인해서 내 앞날도 예쁘게 '박살날' 테니까.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한테도 무가치한 인간, 멍청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실수하는 것, 틀리는 것을 점점 두려워하게 된다. 더이상 뭘 알고 싶지도 않다. 많은 일들에 부딪칠수록 패배할 확률도 높아지니까 경험을 하는게 두렵다. 제발 내가 포장해둔 얄팍한 지식들을 집어가서 나를 굉장히 가치있는 사람으로 평가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점점 살아가는 것, 시간에 발을 딛고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경쟁이 없으면 정말 게을러질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공자님이나 예수님처럼 수천년이 지나도 쓸모있고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사상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경쟁이 꼭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분들이 옆집 학자, 앞집 성인때문에 '에잇. 저 놈을 이겨야 되는데.'하고 툴툴거리면서 책상에 '정신일도 하사불성'같은 말들을 써놓고 분발해서 좋은 생각을 뽑아낸 건 아니니 말이다.
실제로 경쟁하지 않는 교육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다.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고.
초등학생들조차도 수포자로 만들고, 첫단추를 잘못 채우면 인생이 꼬이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이런 경쟁은 실제로는 다수의 사람들을 삶에서 밀어내기만 할 뿐 엄청난 발전을 가져오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경쟁 없이도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즐거움 속에서 충분히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은 배고픔을 만들고 악마는 갈증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배고픔이 있다. 인간이 지금까지 발전해온 건 그리고 싶은 욕망때문에 동굴벽에 사냥감을 그리던 사람들과 따뜻하게 살고 싶은 욕구때문에 불을 피우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과 다양한 소리를 내어 의사를 표현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배고픔이 인간을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그런데도 또 갈증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