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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20. 2023

은둔의 관성

은둔형 외톨이 골든타임

사람에게는 관성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은둔형 외톨이였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우연한 계기로 -시험이나 자퇴나 실업이나 하는 것들로- 집에 있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 관성이 생겨 은둔형 외톨이까지 가게 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집단으로 은둔형 외톨이를 경험해봤다. 최대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모임도 피하고, 집에 틀어박혀 혼자 배달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동거하지 않는 가족과는 접촉을 줄이는 생활방식은 일종의 은둔형 외톨이 체험과도 같았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서 실직한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던 일상을 뺏기고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잠깐이겠지 했던 코로나 19가 정말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예전보다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70대 어르신들도 대면보다는 줌으로 하는 회의나 교육을 선호한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의 의미도 희미해졌다. 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데 굳이 학교 폭력이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그래서 고등학교 자퇴에 대한 욕구도 늘어나지 않았을까.


예전엔 당연하게 해야되는줄 알았던 많은 것들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새로이 도전받게 된 느낌이다. "왜 대면해야 하죠?"라는 질문이 직장, 학교,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던져지고 있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집에 익숙해져서 이미 은둔형 외톨이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은둔형 외톨이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나는 그게 최대 2~3년 이내라고 생각한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어느순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게 된다. 나가서 일할 직장도 없고, 나가서 만날 친구도 없어지고, 나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은둔형 외톨이로 3년 이상 무업기간을 보내고 나면 뽑아줄 직장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내가 취업할 수 있었던건 그 기간을 대학원으로 잘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무경력,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빈칸에 대해 굉장히 냉정하다.


그리고 친구도 없어진다. 답장이 30일 텀으로 온다거나 1~2년간 카톡만 가끔 하고 만나지 않을 때에도 유지되는 친구 관계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은 은둔 3년차 이내에 다 떨어져나간다. 말 그대로 '은둔'이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기회도 없거니와, 은둔을 떠나서 20~30대 이후에 사회에서 '친구'를 새로 만든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직장, 친구가 떨어져나가면 그것만으로도 사회와 단절이 시작된다. 다시 돌아간다는게 점점 어려워지고 돌아갈 유인도 사라진다.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자기 방은 진절머리나는 감옥이지만 동시에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사회를 피해 안전한 굴에 몸을 숨긴 채 게임이나 웹서핑, 커뮤니티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살아간다. 사실 이렇게 온라인으로 관계망이 구축되고 일상이 생기면(게임으로 출근하고 커뮤니티에서 관계맺는 등) 또 크게 부족할게 없기 때문에 사회로 돌아올 이유가 더 없어지기도 한다.


요즘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여러가지 지원책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 가장 시급한건 코로나로 인해 집콕하게 된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아직 골든타임이 있고, 계기만 있으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와서 뭔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에 틀어박힌지 2년이 채 안된 사람들, 본인들이 일시적인 실직, 취준, 시험준비 등으로 집에 있을 뿐 언제든 나갈 수 있고 은둔형 외톨이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2개월 넘게 혼자 밥을 먹고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밖에 없는 사람들, 이미 은둔형 외톨이의 관성에 딸려가고 있는 사람들...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은둔형 외톨이라고 생각을 안할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고시나 취업준비를 하면서 친구를 거의 안만나고 공부에 전념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바람직한 자세(?)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당사자나 가족들은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은둔형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뭔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모임을 만들고 지원을 해주고 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은둔형 외톨이라고 낙인찍지 말고, 평범한 취준생, 평범한 시험 준비생, 평범한 고등학교 자퇴생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줘야 한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국가에서 이런 청년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6주 정도 집단으로 마음 치유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해주고, 같이 모여서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게 지원해주는 예산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장래의 은둔형 외톨이들의 수를 확 줄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니트컴퍼니 같은 곳이 진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3년, 5년 넘어가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꺼낼 방법도 마땅치 않다.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골든타임이 있는 사람들은 계기만 잘 만들어주면 쉽게 구할 수도 있다.


막말로 동네카페를 매주 한번 이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만 나눠줘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이야기까지 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면 더 좋고. 꾸준히 같이 만날 수 있게 공통의 취미를 배우게 해주면 더 좋다.


모르겠다. 그냥 경험자 개인의 생각일뿐이다. 요즘 좀 두려워진다. 구직을 그만두는 청년들도 많고... 점점 많은 청년들이 은둔의 관성에 빠지는 것 같아서. 일단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먼저 구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코로나가 어느정도 종식되었으니까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게 무엇인지도 좀 돌아보고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지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맨날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찾아달라는 광고만 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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