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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29. 2023

은둔형 외톨이는 방에서 뭘 할까

내 경험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먼저 유행(?)했기 때문인지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면 뭔가 애니같은 것에 빠져있고 소수적인 분야를 덕질하는 사람들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근데 실제로 보면 그냥 보통 사람이다. 거대한 강물의 흐름에서 잠시 밀려난, 다시 합류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메인 흐름에서 많이 멀어져있는, 그런 작은 조약돌같은 사람들이다.

 

시작은 자퇴, 상급학교 미진학, 휴학, n수,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질병, 장애, 가족의 간병, 학교폭력, 취준, 퇴사, 시험 준비같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인생의 어떤 장애물로 인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게 계기가 된다.


시작이 평범하기 때문에 당사자나 가족이 은둔형 외톨이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애는 3수 중이에요...라거나 저는 취준중이라 집에 있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은 1기(약 7년 정도)와 2기(약 5년 정도)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계산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건 중간에 1년씩 두번의 휴학 경험을 넣기가 애매해서 빼기도 하기 때문이다. 1년은 은둔형 외톨이라기엔 좀 짧은 기간이라...? 나머진 통으로 7년, 5년짜리다.


1기 땐 n수를 할 때였다. 고등학교 자퇴로 시작해서 n수 준비를 하는게 내 공식적인 주소였고, 이때의 내가 은둔형 외톨이인줄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때는 많이 힘들었다. 친구관계는 고등학교 자퇴 후에 다 끊어졌고 (서로 관심사도 달라지고 학교생활로 바쁘고... 그리고 우울증이었던 내가 30일 텀으로 답장을 했기 때문에 나중엔 연락이 끊겼다.) 만나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었고 외출은 계절별로 한두번씩 했다.


주로 시험을 볼 때만 밖으로 나갔다. 한번은 한자 시험을 보러 몇달만에 나갔는데 계절이 봄이었다. 사방이 꽃 향기로 가득했고 바람이 불면 나무에서 후드득 꽃잎들이 떨어졌다. 몇달만에 쐬는 바깥 공기는 마치 마약같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찬 감정이 들었다. 오랜기간 동굴속에만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와 처음 자연의 풍경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일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평생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봄이었다.


그때는 인터넷을 쓸 수 없었고 집은 감옥같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소설책들을 반복적으로 읽었다. 책마다 서른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유리알 유희, 마의 산(은둔형 외톨이 생활과 비슷한 내용), 악령, 적과 흑... 그런 책들을 계속 읽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넷 없을 때의 은둔형 외톨이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면서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2기 때는 인터넷이 있었다. 그러니까 훨씬 덜 괴로웠다. 아침엔 게임으로 출근하고, 게임 속 사람들과 대화하고 카톡도 하고, 전화할 때도 있었다.


게임이 질리면 웹서핑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몇몇 커뮤니티에 가서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랬다.


그래서 은둔형 외톨이긴 한데 사실상 온라인 세계에서는 정상 생활을 한 거였다. 우울증 때문에 힘들긴 했어도 은둔 생활 자체 때문에 고통스러운건 많지 않았다.


그리고 2기 후기 땐 비정기적인 알바(미스테리 쇼퍼, 실험이나 좌담회 참여)도 하고 마을활동에 조금씩 참여해볼 때였다. 많아야 2주에 한번, 보통은 서너달에 한번 정도 참여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외출을 하고 만날 사람들이 있어서 뭔가 오프라인에서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론은, 은둔형 외톨이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은 우울증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단 우울증 치료부터 해야된다. 그리고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어른들도 필요하고 비슷한 환경의 또래 친구들도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런 치유 활동들이 진행되면 가장 이상적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책을 만들고 있는 걸로 알고있다. 하지만 과연 정책을 만드는 사람 중에 은둔형 외톨이 경험자는 얼마나 될까? 실제로 경험해본, 혹은 경험중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듣고 정책을 설계했으면 좋겠다.


특히 현재 경험중인 사람들에게 이건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네가 사회로 돌아오려면, 넌 뭐가 필요하니?" 라는 질문. 이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겐 치유의 시작일수도 있다.


수많은 당사자들이 나름 자기 방식대로 우울증과 은둔형 외톨이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투쟁하고 있다. 한번 그들에게 직접 말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커피 기프티콘 한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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