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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23. 2023

우울증이 낫는게 어떤건지 묻는다면

바다에 돌 던지기


그러면 나는 바다에 돌 던져넣기라고 말할 것 같다. 나처럼 길고,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바다에다 돌을 아무리 던져넣어도 바다는 고요하고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울증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막막하고 과연 끝이란게 있는걸까 라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사람은 뭐라도 시도하게 되고 어떤 거라도 경험하게 된다. 그 하나 하나가 돌이다. 굉장히 충만해지고 행복해지는 경험은 큰 돌, 작고 소소한 즐거움은 작은 돌.


그런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추억만 남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속 우울의 바다에 잠겨있다. 그리고 그런 돌들이 많이 쌓이면 어느순간 바다 위로 내가 만든 돌다리가 올라와있다. 그걸 딛고 걸어나오면 된다.


우울증 속에 있을 땐 절대 믿어지지 않지만,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믿음을 갖고, 혹은 믿지 않더라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무거나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여러가지 경험들을 쌓아나가는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우울감이 올라오면 바로 친구를 만나거나 원데이클래스를 예약하거나 평소 갖고싶었던 옷을 사거나 카페에 가거나 뭔가를 한다. 잠시라도 기분이 좋으면 그게 나중에 쌓여서 돌다리가 되어준다는걸 믿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 좋은 경험, 나를 잠깐이라도 웃게 하는 유머, 힐링되는 그림... 뭐든 좋은건 다 바다 밑에 쌓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쌓이고 쌓여 올라올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우울증 속에 있을 때, '연금술사'라는 책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우울증 없는 나'라는 보물을 찾아가는 순례자였기 때문이다. 산티아고와 나는 같은 입장이었다.


그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에메랄드를 찾으려고 돌을 깨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년간 무수히 많은 돌을 깼어도 보석 하나 찾지 못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마지막으로 돌을 던져버렸는데 그게 깨지면서 아름다운 에메랄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9999개의 돌을 깨면 마지막에 한개의 에메랄드가 나오는데 대부분은 9999개까지 깨고 포기한다거나 거기까지도 못 가고 돌아선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솔직히 그때는 욕이 나왔다. 우울증이 20년이면 끝난다, 30년이면 끝난다 같이 말을 좀 해주면 덧나냐. 아마 그 사람도 9999개까지 깨면 에메랄드가 나온다는걸 알았으면 포기 안했을거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고 불안하고 두려웠겠지... 나처럼.


지나고보니 인생에 그런 친절한 안내자는 없다는걸 알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살아있는 동안엔 무념무상으로 돌을 깨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꿈을 갖든, 갖지 않든.


그래도 우울의 바다는 약간 나은 편이다. 돌을 던져넣기만 하면 그 돌은 쌓이니까. 내 눈엔 안 보이더라도. 그리고 내가 죽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그 돌들이 언젠가는 돌다리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어느 돌 하나 무의미한게 없다.


좋은 경험, 힘든 경험, 뭔가 이겨낸 경험, 방 청소 한 경험, 오늘 나를 위해 먹어준 든든한 점심 한끼, 밖으로 나가 걸어본 열발자국, 잠깐 쬔 햇빛 한 줄기... 이 모든 것이 다 돌덩이들이다. 하나 하나가 다 의미있고, 언젠가는 나를 우울의 바다 위로 밀어올려줄 것들이다.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온다는건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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