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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l 03. 2023

폭염속 짧은 여행

힘들 땐 친구 만나기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바다에서 표류 중이라도 든든한 구명보트가 있으면 잠깐이라도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


자신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는건 약점이 된다고 아빠는 늘 이야기했다. 그래서 진짜 친구라는건 없다고. 어릴 땐 그냥 믿었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 땐 이 말과 싸웠다.


내가 힘든 것들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늪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아빠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남의 상처를 약점으로 잡아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가장 힘든건 친구에게만 이야기한다. 믿을만한 사람들에겐 먼저 물어보면 이야기는 한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에겐 굳이 나서서 말하진 않는다.


뭐, 약점이라고 해봤자 사실 별것도 없긴 하다. 남의 험담만 아니면...? 나머진 어차피 계약직인데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요즘 조금 고갈된 느낌이라 친구에게 기대고 싶었고 마침 친구와 시간이 맞아서 친구네 집 근처로 놀러갔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지만, 카페와 맥주는 시원했다. 우리는 푹신한 의자 두개를 창밖을 볼 수 있게 배치하고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미노리 맥주는 설명대로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버섯과 치즈가 가득 올라간 피자도 맛있었다.


친구랑 카톡으로 다 말하지 못했던 사는 이야기들도 나누고 요즘 내 기분을 다운시키는 고민들도 털어놨다. 일 이야기, 그리고 가족 이야기... 그리고 친구에게 조언도 들었다. 지난번엔 고기 굽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이번엔 업무에 관한 조언을 들려줬다.


근데 의자에 반쯤 눕듯이 기대서 창밖 풍경을 보면서 친구랑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까 그걸로 다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민의 내용이 뭐가 중요할까. 그걸 처리할 에너지만 있으면 되는걸. 그리고 지금 난 충전되고 있으니까 그걸로 다 된거 아닐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땐 앞날이 아득하고 아무것도 안보였는데 지금 우리는 뭔가 잘 살고있다. 나도 뭔가 방향을 잡고 일을 하고 있고,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고 주위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


뭐라도 되겠지 했는데 정말 뭐라도 됐다. 친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게 기적이다. 여전히 미래는 잘 보이지 않지만, 또 어떻게 살아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분수를 보면서 잠깐 쉬었다. 멍때리기 좋은 풍경이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친구는 자기가 쓴 책과 엽서를 선물로 주었다. 내가 길치인걸 잘 아는 친구는 나를 위해 버스를 잡아주고 어디서 내려서 어떻게 환승하면 된다고 카톡으로 보내줬다. 정말 고마웠다.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바람 빠진 풍선같은 마음으로 갔다가 다시 바람을 꽉 채워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친구의 책을 읽었고 따뜻하고 기분좋은 느낌으로 명동의 거리를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며칠만에 푹 잠들었다. 밤에 기침을 많이 했다는데 정작 나는 모르고 잤을 정도였다.


오늘 출근하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진걸 느꼈다.  


8월엔 생일 기념으로 친구와 동물원에 가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열심히 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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