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Jul 02. 2023

우울증 있으면 어때

그것도 나인걸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가장 좋다고 느끼는건 인생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자살 직전까지 가봤기 때문에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내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졌는지 순간이나마 느껴봤다.


그리고 자살할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자살을 두려워하고 상상도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그러니 막 살아볼 수 있다. 죽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못할 일이 없다. 무엇을 성취해야 내가 가치있어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서 뭘 하는지가 중요한 삶을 살고있다.


살아서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 맛있는 것, 의미있는 것, 소중한 것, 행복한 것이 없다면 난 굳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것들 때문에 자살을 유예했으니까.


죽음을 앞두고 가장 억울하고 한맺힌게 그거였다.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거. (물론 가족 생각도 있었지만)


우울증 때문에 수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고, 우울증 때문에 가장 예쁘고 좋은 나이에 아무것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방에 갇혀 살았다.


죽으려고 했던 그때, 나는 그동안 나를 옭아매온 외부의 시선들을 다 잘라내고 혼자 낯선 도시에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보았다. 그렇게라면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내 모습인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일을 하고 있다. 몇몇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공익활동가로도 살아보고, 니트컴퍼니 사원도 되어봤다. 입고 다니는 것도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성격도 좀 변했다. 원래가 100% 우그러진 상태였다면 지금은 70%쯤 펴졌다고 할까. 귀찮은 것도 많아졌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많이 없어졌다. 예전보단 당당해졌다. 나는 그때의 꿈을 이룬게 아닐까.



우울증이 있으면 병을 자각하고 병원에 꼭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울증 '환자'라는 표현을 쓰지만, 실제로는 우울증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가들에게 우울증은 감성과 영감의 원천이다. 우울증은 그들의 작품에 고유한 색채를 불어넣는다. 나에게도 그렇다. 우울증이 아니었으면 나는 내 인생을 죽음과 대비해서 바라보지도 못했을거고, 이런 글도 쓰지 못했을거다. 우울증이 없었으면 나처럼 감성이 메마른 인간이 책을 쓸 수 있었을리도 없다.


우울증이 아니었으면 나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했을거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식의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고통의 바닥을 쳐봤기에 지금 숨쉬는 것의 행복함을 안다. 소소한 것에 만족하고 현재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 모두 우울증의 선물이다.


나는 우울증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끄러워하는건 더더욱 아니기를... 우울증이 내 삶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우울증을 부정하는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게 되어버리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함께하는 동안엔 이것 또한 우리의 인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로카드,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