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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l 20. 2023

내가 받아본 실업급여

요즘 실업급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는 최근 2년간 두번 실업급여를 받았다.


왜냐하면 약 9개월짜리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두번 다.


고용하는 입장에서 9개월짜리 계약직은 장점이 많다. 일단 퇴직금을 안주니까 비용 절감이 된다. 1~3월은 월급을 안줘도 되니까 돈을 아낄 수 있다. 그동안에 밀린 일은 4월에 채용해서 시키면 되니까 괜찮다. 거기다 계약서에 무기계약직 전환은 안된다고 못박으면 완벽하다.


그 대가로 연초에 3개월간 받게 되는게 실업급여다.


나는 생활임금(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을 기준으로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 실업급여 하한선의 적용을 받았을 것이다.


1월은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승인되는 기간이 있어서 온전하게 다 받지는 못한다. 그 다음엔 한달 단위로 받는데 나는 정확하게 이만큼 받았다.


월급을 받을 때보다 더 받은건 아니고 비슷하게 받았다. 각종 수당이 붙기 전에 기본급이 170만원 정도였기 때문이다. (초과근무 full, 주휴수당 포함하면 최대 218만원 정도였다.)


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고 생활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까 실업급여가 이만큼 나와도 크게 불편한건 없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나와서 살았더라면? 과연 168만원으로 월세 내고 생활비 내면서 버틸 수 있었을까?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왜 그런 계약직을 전전하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라 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한 거고, 이미 정규직으로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라서 그거밖에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나는 고용보험도 건강보험처럼 생각하면 안되나 싶긴 하다. 고용보험에는 고용 자체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의 측면도 있지 않을까?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걷고, 혜택은 낸 만큼이 아니라 건강이 안좋은 사람들 순으로 더 많이 받는다. 그건 질병으로 많은 치료비가 드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몇개월짜리 계약직들에겐 실업급여가 소중하다. 물론 악용하는 경우는 배제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계약직들이 실업급여를 많이(?) 반복해서 받는게 문제라면 애초에 계약직 자체를 없애고 모든 사람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9개월, 11개월짜리 계약직들이 돈을 모으면 얼마나 모은다고 실업급여 없이 추운 겨울을 날까. 그들은 12월이면 마음이 하얗게 얼어붙는 계약직들의 속사정을 알까.


나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센터에 두번 가봤다. 다들 날이 서있고 어딘가 위축된 모습들이었다. 나도 좀 기분이 그랬다. 처음 경험하는 절차가 낯설고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드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정상적인 젊은 사람은 여기 와있을 일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랄까.


물론 실업급여에 관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이건 그냥 실업급여를 받아본 내 이야기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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