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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ug 06. 2023

알폰스 무하, 그리고 고해성사

휴가 셋째날

휴가 셋째날은 명동에서 보냈다. 그라운드 시소 명동에서 하는 '알폰스 무하: 더 골든 에이지'를 예약해두기도 했고, 가는김에 명동성당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도 받을 생각이었다.



무하를 처음 알게 된 건 무하 타로카드가 있기 때문이었다. 무하 그림체로 그려진 카드로 다른 사람들은 격찬하는데 나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무하와 두번째 마주친건 어떤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친구는 무하의 그림들을 정말 좋아했고, 나에게도 입덕을 권유했다. 이번 전시회도 그 친구가 알려준 정보였다.


미디어아트로 벨 에포크와 당시의 모습들, 그리고 무하의 작품들을 재현하면서 그의 인생 경로를 따라가는 전시였다.


입장하는 회차의 제한이 없어서 나는 전회차의 하이라이트 시간(사진촬영 및 이동이 가능한 시간) 들어갔다. 사면의 벽과 바닥 전체에 무하의 작품들이 펼쳐졌는데 그렇게 감상한 무하의 그림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바닥을 걷는 것만으로도 작품 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굿즈샵에서 책갈피 세개를 사는 것으로 지름신을 막았는데 조만간 도록을 사러 다시 가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DDP에서 하는 무하 전시회에 가거나. 오는 길에 도서관 앱에서 무하와 아르누보에 관한 책들을 잔뜩 상호대차 신청해두었다. 무하 타로카드도... 어쩌면 살지도 모른다ㅜ


명동성당 상설고해소


그 다음은 명동성당의 고해소 방문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서 내 죄를 먼저 생각해본다. 그리고 고해성사 절차에 관해서도 검색해서 외웠다. 막상 고해소로 오니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겠고 당황스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대기실에서도 울고 고해소를 나오면서도 운다. 근데 별거 없는 나도 거기만 가면 찡해지고 울게 된다. 이유를 모르겠다.


내 죄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고백하고 싶은가... 지난 3~4년간의 기억을 돌이켜본다.


나는 세속의 관점에서는 별로 죄짓고 살진 않는다. 애초에 사람들을 잘 안만나기도 하고, 언제나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예의있고 상처주기 어려운)를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상처줄 땐 보통 상대방에게 100번 쯤 당한 후이다. 이게 가해가 맞나, 저 사람이 잘못하는게 맞나, 이게 내가 상처받을 일 맞나, 내가 예민한가, 저 사람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를 고민하는데 보통 한두달이 걸린다.


그런데 종교의 관점으로 돌아와보니 죄들이 좀 있다. 일단 3~4년간 냉담한 것, 어쨌든 비폭력적이어야 했는데 상대방에게 뺨 맞고 같이 뺨을 때린 것(언어폭력으로... 물론 상대방이 먼저 심하게 갑질하긴 했다), 그동안 내 실패나 상처를 불행해하기만 하고 새로운 길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없었던 것, 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느낀 것 등등.


나는 기독교 안에서 사람이 짓는 가장 큰 죄는 신이 준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가장 고통스러운건 자식이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낳았냐고 울부짖을 때 아닐까.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나는 신에 대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있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고해는 일종의 심리치료가 되기도 한다. 나 자신을 부정해왔던 부분들을 떠올리고 반성하는 시간이니까. (그럼에도 나 자신의 불편한 부분과 직면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신부님들도 대부분은 고해에 대해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는다. 들어주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 해주고, 그리고 때로는 보속을 준다. 보속을 하면서 나는 내 잘못들이 씻겨나가고 새로워지는걸 느낀다.


나는 지하성당으로 가서 앉았다.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하고 신을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침묵속에서 들었다.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저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식입니다.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한점 의심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있겠습니다.




휴가 셋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피곤하지만 개운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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