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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ug 11. 2023

인사이드 미

휴가 마지막날(3)


휴가 마지막날 저녁엔 뚝섬미술관에서 '인사이드 미(INSIDE ME)'라는 전시회를 보고 왔다. 이 전시회만큼은 별로 스포하고 싶지 않다. 가서 직접 한단계, 한단계 경험해보는게 더 몰입될 것 같아서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채 미로와 같은 길을 나아간다는게 나의 내면을 여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혹시 어둠을 두려워하거나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공황이 온다면, 혹은 우울증으로 많이 지쳐서 현기증을 달고 사는 정도(스스로 존재하는게 거추장스럽고 메스꺼운 정도)라면 비추하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절반 이상이 어두운 작은 공간들로 되어있고(사진찍기가 가능한 정도의 빛은 있다) 공간들의 문을 하나하나 밀면서 나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엔 이 정도 느낌이랄까. 갈수록 환해지긴 한다.



어둠이 깊은 만큼 스스로에게 몰입해서 명상하듯 탐험하기에 아주 좋은 전시이다. 입장 인원을 통제하기 때문에 나도 대부분 혼자서 이 길을 걸었다. 가장 많을 때도 한번에 여섯명 정도밖에 안됐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매순간 어떤 감정들로 채워진 채 시간의 흐름속에서 떠내려가고 있는걸까.



어느 방에는 투명한 판에 감정 단어들을 담는 곳이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이 떴다.


괴로운, 뿌듯한, 유쾌한, 초라한, 기뻐하다, 기쁜, 만족스러운, 초라한, 지친, 기쁜, 기뻐하는...


내가 최근 몇년간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들이다. 만일 내 자서전을 쓴다면 지난 약 3년간의 페이지들은 저 감정 단어들 한줄로 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포는 여기까지...?


감정 상태가 굉장히 안좋을 때, 너무너무 화나거나 슬픈 날, 스스로가 무한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 누구라도 붙들고 울고 싶은 날에 갔더라면 더 좋았을 전시회였다. 나는 그때 휴가라서 기분이 평온했기 때문에(ㅜㅜ) 최대치로 즐기진 못했다.


만일 감정이 요동칠 때였다면 한칸 한칸 지나가면서 생생한 감정들을 꺼내어 들여다보고 눈물로 씻어내고 치유되는 경험을 했을 것 같다.


끝날 때쯤엔 전시의 주제를 되새기는 시간이 있었다.


나의 모든 감정들을 인정해주는것, 그게 전부 나 자신이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마음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다. 쉽지는 않은 과제다. 그래서 결국 '인사이드 미'는 나에게 물음표로, 또 숙제로 남은 전시회가 됐다.


한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지친 날에.


휴가 마지막날은 이렇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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