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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ug 09. 2023

내려놓기


어떤 종교도 '쌓아올리기'를 권장하진 않는 듯하다. 내가 느끼기엔 기독교도, 불교도 내려놓기를 추구한다. 기독교는 신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스스로의 의지나 욕심을 내려놓는 것으로, 불교는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독립된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걸 깨달아 자아를 내려놓는 것으로.


내려놓기는 정말 어렵다. 내가 우울증에서 낫기 위해선 내려놓기가 필요했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 완벽하지 않은 것, 뜻밖의 불행, 아빠로부터 주입된 왜곡된 의식, 현재 나 자신에 대한 패배감, 내 안에 강하게 뿌리내린 욕심... 그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들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에 우울증이 왔다.


처음엔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이건 실패한 사람에게 당연히 찾아오는 감정인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무엇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 하나하나 파고들어 가다보니 우울증의 원인이 보였다. 내가 아직도 양팔에 가득 안아들고 가져가려하는 수많은 마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자아라고 믿는 것이 있었다.


고통의, 우울증의 원인을 알았음에도 나는 그것들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진짜 불속에 손을 넣는 것처럼 아플 때가 되어서야... 한 십수년 고통받은 후에야 나는 고통의 반대편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려놓기는 진행중이다. 조금 살만해지면, 조금이라도 욕구가 생기면 금방 내 마음들이 쌓여버린다. 그게 때로는 가벼운 우울증으로 나오기도 하고 지친다는 느낌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어제도 나를 내려놓는 것, 나를 신 혹은 자연히 그러함에 의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끼는 일이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어나지 않는다는걸 받아들이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묵주기도를 했다. 소리내어 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내 마음은 집중했고 잡다한 마음들은 흩어졌다. 그래서 좀 편안해졌다.


여름날의 저녁 하늘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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