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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19. 2023

'평범함'에 대한 갈망


친구와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평범함'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 우리가 말하는 평범함이라는건 비범함의 반대말이 아니다. 뭔가 정상적인(?) 삶의 경로에서 이탈된 것 같은 입장에서 보는 '평범함'이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들인데... '평범하게'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것, '평범하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평범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 친구와 주로 이야기했던건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평범하게 사는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을까 하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물론 경험자들 입장에서는 저 하나하나를 이루고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범하게'라는 말을 붙이는게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아쉬움은 있다. 가져보지 못한 기회라 아쉽다랄까. 우울증 때문에 나의 20대, 30대 중반까지가 뻥 뚫려있다보니 한번도 어떻게 살고싶다라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기억밖에 없다. 투병 기간이 길어서 예쁘고 좋은 시간들을 살아보지 못한게 아쉽다.


남자친구들은 있었지만 어느 누구와도 미래를 생각하기 버거웠다. 우울증을 데리고 오래 연애하거나 결혼하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하는건 그 당시의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울증이 90%정도의 내 에너지를 빼앗아갔다. 남은 10%는 생존하고 투병하는데 쓰기에도 모자랐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할 여유가 없었다. 핑계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그랬다.


어떤 면에선 '평범함'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는게 기쁘기도 하다. 좀 살만해졌다는 증거같아서. 진짜 힘들 땐 당연히 불가능한 걸로 생각하고 욕구조차 없었는데 마음이 바뀐걸 보면 내가 많이 좋아진게 아닐까.


갈망이 생긴만큼 갖지 못한다는 아픔도 있지만, 같이 고민을 나눌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재미있는건 기혼인 친구는 또 때로는 평범하지 않을(?) 자유를 꿈꾼다는거. 아, 진짜 사람은 어느 상황에 있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종족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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