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관한 작업

by 오렌지나무

아트퍼스트 '재료와 나' 네번째 시간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습식재료로 편안함, 기쁨, 슬픔, 분노같은 감정들을 연습 겸 표현해보고, 그 다음에는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을 주제로 작업을 했다.


오늘 내 감정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는게 첫번째 생각이었다.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지난 일주일간 내가 어떤 감정들을 느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날 있었던 큰 일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분노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쁨은 소소하게 있었다. 슬픔도 어느정도 있었고, 불안감이 아주 높았던 하루가 있었다. 컨디션도 안좋고 많이 피곤해서 내 감정이 잘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피곤함이 감정보다 우세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무덤덤해진다고 할까, 차분해지는 그런게 있다. 내 감정들을 다 못 느끼고 가장자리를 오려낸 것 같이 일부분만 느끼게 된다.


내가 억압하고 싶은 감정들도 있었다. 분출되면 어쩌지 못할만큼 강한 감정들이 있지만 지금은 그냥 밟고 지나가는게 좋겠다고 느껴진다.


확실하게 느낀건 내가 그 이름모를 혹은 익숙한 감정들 사이에서 어떻게 됐든 걸어가고 있다는 거였다. 어떤 감정이든 지금은 나를 휩쓸어갈 정도로 높지는 않다. 발 밑의 흙탕물처럼, 찰박찰박하는 정도의 감정들만 있다. 나는 그 위를 꾸준히 걸어간다. 감정들을 건너는 내 다리와 시간들, 발자국들만 기억났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건 매일 감정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매순간 수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는데, 나는 정작 내 감정들을 제대로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어떤 사건을 떠올리고 난 후에야 겨우 그때 느낀 주된 감정만을 발굴해낼 수 있었다.


그 감정들이 남긴 흔적들, 그게 지금의 나이고 내 기분일텐데 그동안 감정들을 기록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날은 다른 일정이 없어서 여유롭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물감과 오일 파스텔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미술은 피로감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나보다. 올 땐 엄청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끝날 때쯤엔 괜찮아졌다.


작업이 끝난 후, 각자 그림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까 생각이 안났던 내 감정들 몇가지가 떠올랐다. 이런, 저런, 그런 감정들. 말로 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내 그림 소개를 들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어떤 감정들이든 관계없이 그렇게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내가 대단하고 칭찬받을만하다고.


나는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다.

아직은 서툰 걸음이지만, 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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