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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26. 2023

감정에 관한 작업

아트퍼스트 '재료와 나' 번째 시간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습식재료로 편안함, 기쁨, 슬픔, 분노같은 감정들을 연습 겸 표현해보고, 그 다음에는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을 주제로 작업을 했다.


오늘 내 감정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는게 첫번째 생각이었다.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지난 일주일간 내가 어떤 감정들을 느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날 있었던 큰 일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분노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쁨은 소소하게 있었다. 슬픔도 어느정도 있었고, 불안감이 아주 높았던 하루가 있었다. 컨디션도 안좋고 많이 피곤해서 내 감정이 잘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피곤함이 감정보다 우세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무덤덤해진다고 할까, 차분해지는 그런게 있다. 내 감정들을 다 못 느끼고 가장자리를 오려낸 것 같이 일부분만 느끼게 된다.


내가 억압하고 싶은 감정들도 있었다. 분출되면 어쩌지 못할만큼 강한 감정들이 있지만 지금은 그냥 밟고 지나가는게 좋겠다고 느껴진다.


확실하게 느낀건 내가 이름모를 혹은 익숙한 감정들 사이에서 어떻게 됐든 걸어가고 있다는 거였다. 어떤 감정이든 지금은 나를 휩쓸어갈 정도로 높지는 않다. 발 밑의 흙탕물처럼, 찰박찰박하는 정도의 감정들만 있다. 나는 그 위를 꾸준히 걸어간다. 감정들을 건너는 다리와 시간들, 발자국들만 기억났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건 매일 감정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매순간 수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는데, 나는 정작 내 감정들을 제대로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어떤 사건을 떠올리고 난 후에야 겨우 그때 느낀 주된 감정만을 발굴해낼 수 있었다.


그 감정들이 남긴 흔적들, 그게 지금의 나이고 내 기분일텐데 그동안 감정들을 기록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날은 다른 일정이 없어서 여유롭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물감과 오일 파스텔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미술은 피로감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나보다. 올 땐 엄청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끝날 때쯤엔 괜찮아졌다.


작업이 끝난 후, 각 그림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까 생각이 안났던 내 감정들 몇가지가 떠올랐다. 이런, 저런, 그런 감정들. 말로 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내 그림 소개를 들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어떤 감정들이든 관계없이 그렇게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내가 대단하고 칭찬받을만하다고.


나는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다.

아직은 서툰 걸음이지만, 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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