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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Oct 02. 2023

부모님과의 짧은 여행

추석 연휴에 한 일, 두번째


이번 추석 연휴에 두번째로 한 일은 부모님과의 짧은 여행들이었다. 외출에 가깝고 여행이라고 하는 것이 우습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 때 이후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항상 내 수험생활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특히 아빠는 내 교육에 모든걸 걸었고 늘 긴장상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명절 때도 친척집에 가지 않았고 기말시험 끝난 후나 어학시험들 후에 가끔 들른게 전부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여행에 익숙하지 않다. 낯선 공간에 가서 새로운 풍경을 보고, 예쁜 카페나 맛집에 가고 하는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여행계획을 짜도 시큰둥해서 김이 샐 때가 많았다.



그러다 지난 휴가 때 내가 우겨서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고 사진도 많이 찍어드리고 유명한 맛집도 함께 갔다왔다. 처음에는 뻔한 걸 왜 가서보나 하는 분위기였는데 막상 가보니 엄청 좋아하시는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이번 연휴 때도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여기저기 다니고 가이드 겸 사진기사 역할도 하고 공연도 보고 카페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참 어렵다. 친구들, (지금은 전남친인) 남자친구들, 지인들, 하다못해 사회생활하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도 편지쓰는게 자연스러웠는데, 부모님에게 편지쓰는건 너무 어렵다. 오글거리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도 편지를 생략한지 좀 됐다.


남들의 단점도 장점으로 봐주는 나인데 부모님에 대해서는 단점이 장점보다 눈에 잘 띄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카페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는게 창피하다거나 (아빠는 원래 목소리가 크기도 하지만 한쪽 귀가 잘 안들려서 더 크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락스를 만질 때 조심하지 않는다고 눈살을 찌푸리고 지적을 한다거나...


물론 어리광부리거나 평소에 애정표현하거나 부모님이 사이가 안좋아질 것 같을 때 분위기 전환시키거나 조잘조잘 이야기하는건 정말 잘하지만, 그런만큼 짜증도 자주 내고 잔소리도 자주 하는 것 같다.


... 한마디로 집에서의 나는 나쁜 딸이다.


안그러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ㅜ



나는 부모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받고 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집안일은 내 방 청소 외에는 하지 않고,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도 안내고 다.


건강관리도 스스로 알아서 해주시니 자식 입장에서 걱정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를 지지해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분들이라 그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고맙다. 내가 많이 실망시켰는데도...


물론 어릴 때부터 나에게 기대가 컸고 자신의 꿈을 나에게 세뇌시킨건 맞다. 아빠가 내 안에 심어준 서열주의 때문에 내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된 것도 사실이다. 친구도 필요없고 취미생활은 낭비일 뿐이라는 아빠의 고집 때문에 내 우울증이 악화된 것도 맞다. 뭐든 순간적으로 거슬리면 바로 100의 강도로 화를 내는 아빠때문에 내가 불안감이 높아진 것도 맞다.

 

우울증이 낫기 시작하면서 나도 처음으로 반항하고 내 의견을 말하고 내 주장을 밀고 나가게 됐다. 그동안 나를 망가뜨렸다고 아빠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분노는 가라앉고 (심리상담, 변화된 아빠의 모습, 그리고 내 영역이 생김 등이 원인이 아닐까...)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진정된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을 원망하기엔 너무 많이 자랐다는 것도, 부모님과 건강하게 같이 보낼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울증도 나아졌고, 이젠 내 삶을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어리광부리고 주저앉아서 떼를 쓸건지... 조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만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게 효도야'라는 단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좀 다른 집 자식들도 하는거... 그 '도리'라는 것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반성도 했다.


아빠가 싫어하는 행동, 몇가지 안되는거 그거 지켜주는게 뭐가 어렵다고 오늘도 짜증을 내버린 걸까.ㅜㅜ 불평금지 팔찌라도 바꿔끼면서 고쳐봐야겠다. 이 불효하는 습관이라는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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