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Oct 03. 2023

내 머릿속 재활치료

추석 연휴에 한 일, 세번째


이번 연휴엔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보단 내 건강을 위한 습관을 만들면서 보내고 있다. 몸 건강을 위해 매일 근력 운동, 등산을 하고 있고, 마음 건강을 위해서도 몇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두번째 날엔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는 습관 바꾸기를 시작했고(불평 팔찌도 꼈다),  그리고 아빠를 용서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털어버리고 아빠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세번째로 한 일은 내 머리의 재활이랄까. 한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그런데 우울증으로 고장나서 못한다고 내려놓은(포기한) 일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


첫번째는 외국어 공부, 두번째는 책 읽기, 세번째는 대학원 도전.


한 10년 전까지 나는 몇가지 외국어를 할 수 있었다. 자격증도 다 취득했다. 그런데 우울증 시기를 지나면서 내 머릿속은 말 그대로 하얘졌다. 지금 남아있는건 그때 했던 외국어들의 밑그림 정도밖에 없다.


부모님과 카페에 갔을 때 문득 아빠가 옛날 이야기를 했다. 내 외국어 공부의 시작은 영어를 제외하면 모두 자격증 취득부터였다. 입시를 위해 급하게 필요해져서 반년 안에 준비해야 했다. 가능한대로 JLPT, HSK 일정을 적어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그렇게 4달 정도만에 미친듯이 암기해서 N1과 6급을 얻을 수 있었다.


아빠는 그때 내가 진짜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고생 많았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속에 있었지만 그때는 아직 머리가 덜 굳었을 때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직 클 때여서 그랬을까. 정말 최대한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집중했다.


아무튼 그때의 내 모습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처럼 열정적이고, 그때처럼 암기력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확 올라왔다. 그때처럼 유능해지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든건 몇년만에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끝없이 '내려놓기'만을 해왔는데 하나의 바닥에 다다랐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다시 갖고 싶고 이루고 싶고 뭐든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방식이다. 불가능한 완벽을 목표로 삼고 자학하는 마음이 아니라, 항상 현재의 바보같은 나를 인정해주면서 모르니까 배운다는 마음으로 가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연휴부터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책읽기도 하고 있다. (독서는 장비빨이라고 크레마 모티프도 샀다...) 대학원 연구계획서도 쓰고 있다. '내가 뭘 연구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학위가 필요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고 잘 해낼 수 있는 분야로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


얼마전까지처럼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의 마음이 아니라 꼭 해내겠다는 마음이다.


무리일지도 모른다. 다시 우울증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무리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재작년, 작년, 올해. 한 2년 반 정도 아무것도 안하면서 머리를 텅 비우고 지냈는데 충분히 나 자신을 보살폈고, 푹 쉬었던게 아닐까.


일단 현재의 내가 원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나를 믿어줄 생각이다. 내가 하고 싶은거, 나 아니면 누가 날 밀어주고 지지해줄까. 너 원하는거 다 해봐. 이제 니가 능력이 부족해도, 실패하고 원하는걸 얻지 못해도 도전하고 노력한 너를 따뜻하게 감싸줄 내가 있어. 너의 바로 뒤에.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과의 짧은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