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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Oct 17. 2023

부모님에게 자퇴나 우울증을 이야기하는 방법

마음의 준비

부모님에게 자퇴하겠다거나 우울증 때문에 힘들다거나 매일 자살 생각이 들어서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등의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사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지 막막하고 어떻게 설득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보통 그런 이야기들의 배경에는 부모님이 모르는 긴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전혀 모르고 있어서 자퇴, 우울증, 자살 생각 등등이 너무 갑작스럽고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지 말고 맨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엄마, 사실은 몇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부터.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은 이해를 할 수가 없고,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차근차근, 아주 처음부터,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자. 미리 노트에 써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한다. 이해 못 받을 준비, 상처받을 준비, 그럼에도 내 상태에 대해 다 말하겠다는 마음의 준비 말이다.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땐, 부모님도 사람이라는걸 한번쯤 이해해주는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선뜻 이해해줄 부모님들도 많겠지만 보통은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아파죽겠어서 말했는데 전혀 이해를 못하고 화를 낸다거나... 평소에 티를 안냈다면 더더욱 그렇다. 말이 너무 안통해서 몇백미터 거리에 서서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우울증에 안 걸려본 사람, 자퇴를 안 해본 사람은 그 심정을 이해 못할수도 있다. 때로는 알아도 부인하고 싶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순간순간 감정속에 휩쓸려 살아간다. 부모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자식이라고 해서 더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람 안에는 두렵고 불안한, 낯선 결정을 갑자기 하게 되면 외면하고 싶고 강하게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나는 아빠가 결코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부정할거라는 것(우울증을 의지력 부족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낼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상태를 설명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해버렸다. 울면서. 악쓰면서.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빠는 자기의 편견 속에 갇혀있고 평생 그 안에 갇혀 살 것이기 때문에 이해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이해를 못하는데 왜 이야기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이야기를 한건 나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였다. 더이상 아빠의 편견과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깎아내리지 않겠다는 선언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걸 아빠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나는 아빠와 별개의 사람이고 내 생각은 다르다는걸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싸워나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됐다. 한번 싸울 때마다 나는 조금씩 나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집세고 자기가 틀리다는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 아빠도 천천히 인정하게 됐다. 내 현재 상태와 자기가 이해는 못하지만 바꿀 수도 없는 나의 독립적인 영역에 대해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내가 내 목소리를 다는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자기 마음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거니까. 내가 뭘 원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니까.


의미없어보일 수 있지만 그런 작은 행동, 경험 하나하나가 쌓여서 우울증을 막아주는 단단한 성벽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도 당장은 부정해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우울증이 뭔지 검색이라도 해보고 자퇴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책이라도 찾아본다.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서로 이해하게 되는, 최소한 타협이라도 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꼭 말하자.

상처받더라도.

사실 지금보다 더 찢겨질 마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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