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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Oct 26. 2023

내가 요즘 직장에서 배운건...

사람은 결국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필요한건 적절한 칭찬 정도라는 거였다. 원래는 일 자체에 열정이 좀 있었는데 (내 작업물은 좋아야 한다는...) 그걸 일찍 갖다버린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상대방이 A라고 처음에 썼고 나는 그걸 좀더 괜찮게 a로 고쳐썼다. 여러 사람이 보고 한 8번인가 수정을 했는데 전날 밤까지 a'정도 되었던게 결국 다음날 아침엔 A로 되어있었다. 그 사이에 노력한 것들은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 하나하나의 수정 과정에 진심으로 마음을 쏟고 고민하고 그랬더라면 허탈했겠지만, 난 한 3번째 버전부터는 마음을 비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고쳐 쓴 것을 타이핑만 해줬다. 그리고 느긋하게 4~8까지를 관찰했다.


일을 대충하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그게 일 한거였다. 어차피 내가 의견을 내도 자기 생각대로 흐름을 틀어버릴건데 굳이 애쓸 필요가...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고, 아주 미세하게 수정하고, 칭찬하는 것. 그게 일이라는걸 느꼈다. 어떤 면에선 노자의 도덕경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직장같기도 하다. 다른 종류의 '일'을 배우는 느낌이랄까.


전문성은 대학원에서도 쌓을 수 있으니까 너무 집착하지는 않기로 했다. 포장이 씌워진 채 무능한 사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보고 있다.


대학원을 마음 건강하게 다니기 위해 필요한 직장이랄까. 업무 전문성을 위한 대학원이 아니라.


내가 바보같고 속상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어찌어찌 넘어가지는 것 같다. 뒷담화는 내 귀에 들리지 않고, 평판이 나빠져도 어차피 계약직이니까.


어제는 속상했지만 오늘은 새로 산 벨벳 자이언트얀 가방의 부드러운 촉감에 기분 좋아하면서 출근했다. 오늘도 찝찝한 일들은 있었지만 다른 색 자이언트얀 가방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찝찝하고 칙칙한 것들은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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