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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Feb 16. 2024

길고양이와 고양이 모형 사이


내 마음은 두려운 길고양이같지만 어느 순간의 나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앞뒤없이 웃고있는 고양이 모형들. (알고보니 강아지일수도 있지만...)


순간순간 요동치고 변화하고 끓어오르는 내 감정들,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같은 감정들도 좋지만, 그 하나의 순간을 잘라내서 굳힌 것, 단편적이고 고정된 감정도 좋다. 브런치나 SNS에 올리는 모습들은 후자의 것들이다. 한두장의 사진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 내 모습.


이런 모형이 보여주는 감정은 단순하다. 즐거움, 뿌듯함, 자신감, 당당함, (잘려나온 단면이라 깊이 파고들지 않는, 그래서 가벼운) 슬픔, 불안, 찌질함. 거기엔 깊이 뻗어가는 뿌리와 봉투를 찢고 새어나오는 구정물이 없다. 그래서 SNS에는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다 전시할 수 있는 것 같다.


인생에 가끔은 이런 모형들이 필요하다. 복잡미묘한 감정들과 사건들을 정리할 때, 힘들지만 용기를 주워와서라도 이겨내야할 때, 마음까지 좌절해버리면 진짜 못 일어날 것 같을 때.


그럴 땐 예쁜 모형 하나를 세워놓고 거기에 의지해서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이렇고 내 감정은 뭐든 소중하다고 되뇌이면서.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감당할만 하니까.


시공간을 차지하고 돌아다니는 나란 생명체에게도 정말 고생하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오늘도 길고양이와 고양이 모형 사이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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