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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점점 모르겠다

by 오렌지나무


약은 중간을 유지하게 해준다.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딱 그 중간지점에서 균형을 맞춰주는게 약이다. 엄청 좋았다가도 끌려내려오고 엄청 슬프고 비참했다가도 잡혀올라온다.


거기에 이유는 없다. 약이니까. 그래서 스스로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생각을 전환해서 슬픔을 해소하는 그런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다. 경험하지 못하니 배울수도 없다. 그래서 약이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약을 먹을 정도면 그걸 배울 여력이 없을만큼 정신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 약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생존하는 것>>>>>>>>감정의 파도를 타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니까.


그런데 내가 모르겠는건 약이 주는 상태가 정말 답일까 하는 점이다. 사람의 감정이 중간에서 수렴하는게 정말 맞는걸까? 그게 답일까?


어디까지가 조증이고 어디까지가 울증이며... 어느 선에서 감정을 잘라내는게 맞는걸까...?


내 생각엔 사람들이 모두 약을 복용해서 항상 중간값에 머무른다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건 예술일 것 같다. 예술은 절벽에 부딪치는 거친 파도처럼 커다란 감정 속에서 나오는게 보통이니까. 감정이 고양되지도, 바닥을 치지도 않는데 세상 사람들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하다못해 나조차도 삶에서 설렘, 들뜸, 희열같은 감정들을 이제는 조증이라고 경계해야하나 싶고, 약간의 우울과 비참함에도 약이 있는데 굳이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하나 라고 생각해버린다. 불필요한 두통을 괜히 참고 견디는 느낌이다.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사라지는 것 같다. 설렘도, 좌절도, 절망 끝의 희열도. 그 경계선을 잘 모르겠다. 어떤게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 정상이라는게 있는걸까?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른데, 각자 자기만의 감정선도 다 다른게 아닐까...? 니체의 감정선이 중간치에 맞춰져 있었다면 과연 그의 책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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