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라는 말은 '완벽'보다 너그러워보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같아보인다.
하지만 최선이 과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잠을 4시간을 자고 몰두하면 최선일까? 2시간만 자야 되는거 아닐까? 주말 빼고 평일에 온전히 집중하면 최선일까? 주말 포함해서 1년 365일 집중해야 되는거 아닐까?
집중도는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얼마나, 어느정도 집중해야 최선일까?
최선도 완벽과 마찬가지로 도달할 수 없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개념이다. 완벽하라는 말은 가혹해보이니 최선을 다하라는 가면을 쓸 뿐이다.
우리는 최선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동시에 '그만하면 괜찮아' 공포증도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고 스스로를 자책해야 할 것만 같다. 그만하면 괜찮다는건 실패했을 때의 자기합리화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떨 땐 '난 최선을 다했어'라는 말이 '이게 내 한계야'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최선의 기준은 외부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게 최선이 아니라 똑같은 조건에서 뛴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정해지는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최선의 원래 의미대로라면 그 기준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 내 기준에서 최선이면 최선인거다. 우울증이 있는 나, 죽어도 잠은 8시간 자야되는 나, ADHD가 있어서 하루 순집중력이 3시간인 나, 관심가는건 열심히 하고 관심 없는건 하기 싫어하는 나... 이런 내가 기준인거다. 이 기준에서 최선을 평가해야 한다.
덧붙여 나는 내가 결정하는 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평가할 때 내가 어디까지를, 무엇을 원하는지를 배제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까지 하길 원하면 그것 또한 나의 최선이다. A부터 Z까지 있다고 할 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E 이상 가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E에서 멈춘게 나의 최선이 된다. 내가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그래서 '그만하면 괜찮아'라는 말은 패배자의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내가 결정한 나의 진짜 '최선'을 의미한다.
맨 처음에 '그만하면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