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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by 오렌지나무

마리나 반 주일렌의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를 읽는데 성공했다.


책은 자서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가졌던 고민에서 시작해서 그 고민을 인문학을 배워가며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쓴 책이다.


그래서 '평범한 삶이 왜 찬란하고 찬사받는가'에 대한 딱 떨어지는 한줄짜리 답이나 삼단논법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장황해보일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고민이 좀 많이 표현되어 있어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금욕주의 등등).


하지만 아예 답을 외면한, 미사여구로 가득찬 책은 절대 아니다. 답은 분명히 있다. 왜 평범함이 탁월함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아름다운건지.


오히려 뻔한 위로의 말보단 저자의 깊은 고민과 지적 여정 과정을 담은 이 책이 더 와닿는다. 다만 개인의 경험과 고민에 따라 얻어가는건 각자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이하 개인적인 해석, 스포주의)


1. 이 책의 세계관

2023년,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에서(작품명 기억안남ㅜ)


여기서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아래 없이 위의 공은 제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위 없이 아래의 공은 지금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노랑이 옆에 없는 초록은 지금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이런 느낌이다. 저자는 철학자 글리상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씨실, 날실로 엮여진 태피스트리라면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나도 공감한다. 우리가 가끔 SF 영화나 소설에서 보듯 과거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면 현재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현재의 지구가 현재대로 있는건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각자의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인과관계의 그물 속에서 지구는 현재의 모습일수가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우리는 모두 가치가 있고, 거기엔, 우리의 존재에는 우열이 없다.



2. 불투명성의 권리 되찾기

reSOUND 전시회 중에서


(1) 불투명성의 권리란?

자기의 정체성이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점에 기반해서 나 자신이 타인에 의해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존재로 규정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그렇기에 누구도 나의 일부분을 놓고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우열을 매길 수 없다.


(2) 불투명성의 권리를 갖는 사람

나도, 타인도 불투명성의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면서 범주화하고 우열을 나누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럼으로써 나도, 타인도 확장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3. 능력의 허상에서 벗어나기

리얼 뱅크시 전시회 중에서

우리는 흔히 능력의 허상에 사로잡혀있다. 예를들면 이 책의 저자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저자의 능력 덕분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책은 저자가 어릴 때 경험한 실패에서 시작된 고민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 고민을 해결해가는 여정에는 버지니아 울프, 카프카, 조지 엘리엇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현실에서 그녀가 경험해온 사람들, 사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책을 쓰면서 끊임없이 의식해온 장래의 독자들도 이 책에 기여하고 있다.


결국 저자의 능력만이 아니라 실패, 여러 사람과 사건들 등등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4.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대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reSOUND 전시회 중에서

저자는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강박에 눈 멀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타인의 평가에 얽매여 끊임없이 괴로워하는건 끔찍한 불행이다. 그 불행을 피하려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천부적으로 주어진 우리의 재능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스피노자를 인용해 본래 자신의 모습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불만족을 치유하는 치료제라고 말한다.



5. 살아보지 않은 삶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유토피아 nowhere now here 전시회 중에서


우리의 유토피아는 우리가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었을텐데...'하는 가상의 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특별하고 행복했을 나를 유토피아처럼 숭배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없다. 거기에 집착할수록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살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대신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이곳, 이 순간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원망하다보면 삶이 피폐해지기만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이고, 생각할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어떤 허상과 싸우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은만큼, 생각하고 실천해야겠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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