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우울증의 의미는 무엇일까
암처럼,
우울증은 그저 인생을 망가트리는 병일뿐인 걸까?
인생에서 우울증의 의미는 뭘까? 우울증으로 10년 이상의 세월을 그냥 통째로 날려버린 내 입장에서는 꽤 슬픈 질문이다. 물론 우울증을 앓는 동안에도 사회생활을 아주 못했던 것은 아니다. 운이 좋아서 대학에도 가고 대학원에도 갔다. 휴학을 반복하고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취직도 했고 제법 대우받으면서 일도 했다. 몇 번의 연애도 했다. 남들이 대충 훑어보기에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고, 아니, 꽤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하루에 단 1시간도 공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떨어지는 걸 반복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볼 때도 험난한 인생이긴 하다.)
하지만 내 속은 불에 타고 또 타서 재만 남아있다. 나는 지난 10년간 단 하루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진심으로 웃고 즐거워하는 시간이 하루에 5분도 안 되었을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거나 진지하게 뭔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도 거의 없었다. 시험은 항상 벼락치기였다. 매일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오직 시험 2주일 전이 되어야만 하루에 2~3시간 정도 울면서 겨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 2~3시간은 짧게 집중했던 시간이 아니라, 1분 공부하고 30분 딴짓하는 식으로 하루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1분, 2분씩 모은 대단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오전에 2시간 공부하고 오후에는 놀러나갔다면 그렇게 비참하고 불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에 내게 있었던 건 중학교 때까지 쌓아놓은 영어실력과 독서로 길러진 언어능력뿐이었다. 교과서를 읽을 수도, 문제를 풀 수도 없었으니 수학은 순수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사탐은 국사, 세계사처럼 어릴 때 읽은 역사책으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는 과목들을 골라서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논술 한판으로 결정되는 수시전형이 없었더라면 나는 모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에 와서도 남들이 행시 공부니 인적성검사니 하면서 열심히 살아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능력도, 의욕도 없으면서 점점 앞서가는 남들과 비교하고 더 불행해지고,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뒤쳐지고, 나는 대책없이 게으르고 머리도 나쁘다고 자학하고 절망하고, 끝내는 내 인생은 이미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졌으며 자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울증이 내 인생에 남긴 족적이었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사람들은 우울증때문에 '잃은' 것들이 많을 것이다.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가질 수 있었을 학벌, 갈 수 있었던 직장, 붙을 수 있었던 시험, 사귈 수 있었을 친구, 할 수 있었을 결혼,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이나 행복, 머릿속에서나마 그려볼 수 있었을 꿈이나 의욕 등등.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비슷한 능력치와 환경의 친구들이 나아가는 길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나도 저 정도는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우울증으로 많은 것들을 잃었다. 10년 동안 계속 잃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처럼 외부적인 것들을 잃더니, 마지막에는 내면적인 것, 감정까지도 전부 잃었다. 나는 우울증때문에 뭔가를 느낄 수도 없는 단계까지 내려가버렸다. 기쁜 것, 슬픈 것, 고통스러운 것, 화나는 것......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건 끝도 없는 우울감과 수치스러움 정도였다.
아니, 잃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건 뭔가 하고 싶어서 열성적으로 매달리고,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그렇게 노력의 결과물들로 인생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그 과정을 겪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무엇을 시도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패배가 떨어지는 것을 얻어맞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의 패배는 부끄럽기만한 패배였다. 나는 하늘에서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지붕이 무너진 집처럼 수리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져 흙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로 그저 비바람을 맞으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며 숨만 쉬고 살았다.
이쯤되면 우울증 환자들이 절규할만 하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온 거지, 왜 나만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거지, 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거지, 왜, 왜, 왜, 왜 나만.
그러다가 최근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하나는 대학 때 알고 지내던 어떤 친구가 굉장히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내가 간절하게 붙고 싶었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내가 정말 가고 싶어했던 직장에 취직해서 이쪽 분야에서는 가장 선망받는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한때 내가 그 길을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한 거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고 그 신념에 따라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는 판정을 내렸고 그 결과 자살하려고 했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우울증 환자답게 자기합리화에 민감하고, 불쌍한 내 자아가 살기 위해 조금의 자기합리화라도 하려고 들면 바로 찾아내 도끼로 찍어버리는 모진 인간인지라 이건 자기합리화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정말 아무 감정이 안 들었다. 지속적인 우울감에서 벗어난지 두달이 조금 넘었으니 우울증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끼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말 괜찮았다. 예전같으면 바로 일어나 차에 치어 죽기 위해 길가로 나갔을 일인데도. (실제로 우울증이 극심했을 때는 한번도 차가 오는 걸 확인하고 길을 건넌 적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자살시도를 하지 않을 때도 항상 죽을 기회를 기다렸다.)
다른 하나는 가끔 가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람이 쓴 글을 읽은 것이다. 그 사람은 고등학교 때는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어떤 친구가 10년만에 굉장히 성공한 것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람은 대학 입학 때는 그 친구보다 잘나갔지만 지금은 그 친구가 자신이 원했던 길에서 성공해서 탄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실패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댓글들은 대체로 그 친구의 능력이 글쓴이보다 원래 뛰어났던 거라는 걸 인정하라는 식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능력이 비슷했더라도 나중에는 명문대생과 보통의 초등학생만큼이나 능력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우울증이 온 사람에게 '너의 능력이 없는 것을 인정해라'라는 건 별로 공평하지는 않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 사람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당신은 아직도 무조건 남들이 선망하는 길을 원하고 가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서 마음이 허전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거라고, 그래서 당신은 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아무 의미 없는 기준으로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거라고, 그걸 버리고 당신이 원하는 걸 찾아나서면 자유로워질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말을 써놓고도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증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이 말이 전혀 와닿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한창 우울증이 심할 때 내가 이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나는 신종 개소리(?)류로 취급하고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와닿는 말이라 하더라도 뭘 어떻게 버리라는 건지 말로는 절대 알 수 없다.
그 두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우울증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우울증은 나를 살리고,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를 공격했던 것이다.
우울증은 삶은 밤 속을 티스푼으로 파내어 먹는 것처럼, 내 속을 한층한층 다 파내었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부 다 파내버렸다. 그동안 나는 내가 잃은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울증이 나를 죽이려는 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잃은 것 중에 나쁜 것들도 많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울증이 오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양해서 이 이야기가 꼭 맞지는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다. 내가 우울증이 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나의 사고방식에 있었다. 나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역사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최근에 우연히 기억이 났다. 그 정도로 내가 원하는 걸 무시하고 억압했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그건 아빠가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아빠는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길을 내가 가기를 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인정과 칭찬이 이끄는 쪽으로 가도록 길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아빠가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들이 선망하는 방향으로 가는게 나쁜 것처럼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주위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어쩌면 우리나라 사회의 대다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될 능력은 있고? 될 능력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주제에 허세쩌네. 내일이라도 당장 누가 의사시켜준다하면 달려올거면서."
내가 본 우리나라 사회는 그랬다. 누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싶은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는 서열이 붙었다. 가장 갖기 어려운 대단한 것부터 쉽게 가질 수 있는 하찮은 것까지. 그리고 가장 갖기 어려운 대단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진짜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고, 마침내 그것을 쟁취한 사람이 가장 능력있고 존경받고 부러운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걸 간절히 원하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성공한 소수와 대다수의 낙오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할 능력이 없어서 실패한 사람들밖에 남지 않는다. 그 '가장 갖기 어려운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지방대를 다니더라도 자기 모교에 만족하고 굳이 서울대에 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자유따위는 우리나라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대에 다니는 사람들 자신조차도 자기 대학 이름이 쓰여진 대학잠바를 부끄러운듯 입고 다녀야 하고, 자기 대학을 지잡대라고 스스로 비하해야 한다. 실제로 부럽든 부럽지 않든, 자기 학교보다 서열이 더 높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던 나도 자연히 그 서열놀이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것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건 그 놀이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남들이 모두 원하는 대단한 성공의 길을 원해야 했고 그밖의 것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것을 원하는 건 능력없는 낙오자의 비겁한 도피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들에게 공부가 재미있고 좋다고 말했다. 한때는 좋았다. 과정이 좋았던게 아니라 결과가 좋았던 것이다. 성적이 잘 나오면 내가 성공의 길에서 뒤쳐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그런 기쁨을 주는 공부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 공부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취미생활도 만들지 않았다. 취미생활을 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펙으로 필요한 취미생활이 아니라면.
그러던 어느날 내 장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면? 그때는 우울증이 심할 때도 아니었고, 외부적으로도 나름 잘나가던 때였다.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이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몇 살에는 어느 지점에 도달해야 하고, 그 다음 몇 살에는 또 더 나아간 어느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내 인생은 오로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게 남는 것은 그 학벌, 그 직업, 그 성취밖에 없었다. 그러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그 직업만 존재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들의 칭찬과 인정과 부러움이라는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평생 그 빚을 아등바등 갚으려고 사는 것 같은 인생. 저당잡힌 인생. 한창 그 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나조차도 내가 왜 사는건지 모르겠다는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주위에서는 나를 공부에 방해되는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는, 오직 공부만 좋아하는 공부기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러워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게 없다고. 달리 좋아하는게 없으니 공부만 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좋아하는게 많은데.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나의 충동들과 즐거움을 전부 억압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는게 즐거울리가 없었다. 아빠는 아직도 내가 원하던 길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내 우울증은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이 놀이 속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미끄러져서 우울증이 온 게 아니라, 우울증때문에 미끄러졌던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우울증은 나를 철저히 황폐화시켰다. 내 능력을 못쓰게 만들어서 내가 그 길로 갈 희망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내가 끝끝내 그 사고방식을 놓지 못하자 그럼 죽으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내가 실패한 길에서 성공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하자 우울증은 실컷 고통스러워하라고 내 마음속에 불을 질렀다. 나는 내 사고방식때문에 참혹하게 고통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사고방식을 지키려고, 놓지 않으려고 내 몸과 마음을 태웠다. 그러자 우울증은 내 몸과 마음을 진짜 태워버렸다. 내 사고방식이 마침내 다 탈 때까지. 나를 괴롭히고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던 주범은 우울증이 아니라 바로 그 사고방식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다 실패했는데도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내게 남아있던 깊은 우울감은 단지 모든 것이 다 타고 남은 후의 약간의 후유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치유와 회복은 이미 내 깊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예전의 사고방식은 전부 사라졌다. 이제는 다시 나를 재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브런치에 쓴 매뉴얼들에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생활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다.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는 예전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앞에서 말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괴감에 빠진 그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더라도 그건 아무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우울증이라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 모든 불순물을 태우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만 진심으로 변화할 수 있다. 남의 말이든 자기 말이든, 말은 소용이 없다.
우울증이 오는 원인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신체적인 통증이 시작되면서부터 우울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참을 수 없는 주위 환경때문에 우울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내부적, 외부적 원인이 없음에도 약물 부작용 등 순수하게 화학적인 이유로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우울증이 자신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우리 정신의 작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우울증이 자신의 사고방식에도 기인한다고 생각된다면 한번 우울증을 이런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무엇때문에 괴로운가, 우울증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진짜 괴롭히고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최근 즐겨본 중국 드라마 중에 '삼생삼세 십리도화'라는 드라마가 있다. 위에 흰 옷을 입은 여인은 투신자살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여자의 이름은 소소. 원래는 가장 고귀한 신선 중의 하나인 백천이다. 그런데 백천은 어떤 일로 인해 힘과 능력을 봉인당하고 인간 여자 소소로서 정겁을 겪게 된다. 정겁이란 불로불사의 신선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신선의 기억과 힘을 잃고, 인생의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겪는 과정을 말한다. 백천은 같은 신선인 천족 태자인 야화와 혼약한 몸이다. 야화는 인간 여자인 소소가 백천인줄 모르고 소소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야화가 속한 천족들은 소소가 고귀한 여신선인 백천과의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소소를 핍박한다. 그 과정에서 소소는 사랑하는 남편인 야화의 손에 의해 두 눈까지 빼앗기고 실명하게 된다. 이건 소소의 눈을 빼앗는 대신 그녀의 목숨을 구하려는 야화의 고육책이었지만, 소소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지도 않고 직접 눈을 빼앗아간 것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소소는 야화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자신은 천족들 사이에서 치워야 할 쓰레기일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절망한 소소는 야화의 아이를 낳은 후, 그 아이를 두고 홀로 죽음의 길로 걸어간다. 그리고 미련없이 투신자살한다.
이것은 백천을 인간의 몸에서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어 소소는 백천의 몸과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백천이 소소일 때 겪은 고통은 엄청난 것이어서 백천은 정겁을 마치자마자 가장 높은 등급의 신선으로 등선한다. 하지만 백천은 그 사실을 기뻐하는게 아니라 여전히 소소일 때의 고통을 생각하며 몸서리치고 슬퍼한다. 그만큼 인간으로 겪은 그 과정이 아팠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우울증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평범하고 적당히 잘살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주기 위해서 겪는 정겁일지도. 그리고 그 끝에는 그 모든 것을 전생의 기억으로 여길 수 있는, 인생의 몇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성장한 새로운 나 자신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