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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짚신벌레의 도주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잃어버린 사람들


 짚신처럼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생긴 가지런하고 빽빽한 섬모로 뒤덮인 단세포 동물, 짚신벌레는 이 섬모들의 진동에 의해 물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자신의 신체의 수직축에 따라 같은 자리를 계속 회전한다. 짚신벌레는 어떤 곳에서든지, 무엇에든 자극을 받기만 하면 도주 운동을 시작한다. 그 장애물이 무엇이든 동일하게 반응하는 지각은 언제나 동일한 도주 운동을 불러낸다. 도주 운동은 몸을 옆으로 구부려 뒤쪽으로 향하는 행동으로 시작되며, 그런 다음 다시 직선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장애물로부터 멀어진다.  


 사람에게서도 종종 짚신벌레 도주 운동을 볼 수 있다. 어떤 종류이든 자신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몸을 구부려 뒤쪽으로 도망가고 다시 직선으로 나아가면서 장애물로부터 멀어지는 단순한 도주 행동. 그 장애물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인지 적대적인 것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우선 도망부터 치고 보는 것이 하나의 본능적인 행동양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한 불신은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안전 본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드러난다. 이 도주행동이 옳지 않은 것은 사람이 미개한 단세포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을 미리 피해버리고 도망감으로써 스스로 놓치는 기회를 뼈저리게 아쉬워하는 분화된 고등동물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짚신벌레 도주행동의 불행은 불안으로 인해 차분하게 생각해서 판단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미리 움직여 버린다는데 있다. 올바른 행동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충만한 곡선이라면 불안으로 인한 성급한 움직임은 날카롭고 딱딱한 직선이다.


 언젠가 겪었던 불행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서둘러서 도망 다니면서 죽을힘을 다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원하는 것은 눈앞에 나타나는 대상에 따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꾸는 단역 배우가 아니라 누가 나타나든 존재감을 지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짚신벌레 사람들은 그렇게 늘 눈치를 보고 빨리빨리 움직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부모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기능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공부를 잘하진 못하지만 중간쯤은 하고 예체능도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아도 뒤처지는 것 없이 그런대로 잘한다. 청소나 뭘 만드는 것, 사람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큰 부담 없이 잘 배우고 잘 적응한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들은 주어진 뭐든 다 잘하고 다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초점이 ‘나’로 옮겨지면 멍한 상태가 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 

 타인에 대한 배려에 뛰어난 짚신벌레 사람들의 진정한 불행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인데 자기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는 위험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불행은 위험하지 때문이다. 자족하고 행복한 사람은 안전하다. 우리 사회가 행복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부터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는 행복한 사람들만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전염된다. 불행은 전염된다. 다 같이 위험해진다. 행복도 전염된다. 다 같이 안전해진다.




행복해지려고 결심해야 행복해진다


 2011년 하버드 대학에서 한 소셜네트워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섯 단계를 거치면 거의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친구를 1단계, 친구의 친구를 2단계,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3단계라고 설정하고, 그 친구들과 교류를 함으로써 행복감에 영향을 받는 가능성을 실험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1단계 친구는 행복할 가능성을 15% 증가시킨다. 

 2단계 친구는 행복할 가능성을 10% 증가시킨다.

 3단계 친구는 행복할 가능성을 6% 증가시킨다. 

 4단계부터는 거의 영향력이 없어진다.


 이 실험에 따르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에 영향력이 있으며, 감정이 전염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행복한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도 행복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불행한 사람은 주변까지 불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보이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해서 단계별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사람을 조사하고 그 결과가 한눈에 보이도록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원형을 이루면서, 그 사람들 끼지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2, 3단계로 이어지다가 연결이 끊기는 짧은 직선의 형태들로 보였다.


 이 실험의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많다면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인간관계와 환경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치우는 사람들


 ‘짚신벌레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은 ‘해치우는 사람’이다. 이들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인 ‘한다’라는 표현 대신 ‘쳐낸다’는 표현을 잘 사용한다. 

‘쳐내다 ‘라는 말은 깨끗하지 못한 것을 쓸어 모아서 일정한 곳으로 가져가다. 의 의미를 가진다. 돼지를 친다. 양을 친다. 닭은 친다와 같이 짐승을 사육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인 ’ 친다 ‘는 말은 의외로 생활 곳곳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설계도를 그릴 때 도면을 ‘친다 ‘ 는 표현을 쓴다. 같은 업종 중에서도 하청 업체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호텔에서 청소를 할 때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룸 ‘정비’이지만 통상적으로 ‘방 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바쁠 때일수록 감정이 거칠수록 ‘방을 친다’는 표현을 쓴다. 여름, 겨울 성수기 때 전 객실이 예약인 상황에서 체크 인 시간이 가까워지면, 고객이 입실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청소가 안된 방이 있으면 빨리 해달라는 독촉 전화가 오고, 이 상황을 ‘러시가 뜬다’라고 한다. ‘러시가 뜰 때’의 방은 ‘쳐낸다’가 되는 것이다.


‘친다’에서 파생된 용어로 ‘훌치기’가 있다. 전 과정을 꼼꼼하게 처리하지 않고 대충 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사용된다.

“A는 방 할 때 훌친다고 하더라.”

‘훌치는 사람‘은 ’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훌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게 된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어떤 영역에서든 요령 부리지 않고 눈속임하지 않고 전 과정을 성실히 해내는 것, 불안 속에서도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는 태도는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미덕이다. 이 자세가 있으면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하숙을 친다든가 손님을 친다, 제사를 친다 등 ‘치다’를 사람에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뜻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응용된 형태로 ‘도움을 주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역시 바쁜 노동 현장에서 들어본 생계형 용어이다. 


 삼겹살 집에서 불판 닦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평일과 주말 고객의 양상이 크게 차이가 났다. 주말 모드가 되면 홀 서빙하는 젊은 아르바이트 생은 한두 명 더 추가하는데 주방 설거지는 주말이라고 추가하는 법은 없었다. 설거지가 너무 많이 쌓이면 매니저가 상황을 파악해서 홀 직원 한 명을 투입시켜서 일시적인 장애를 해소시킨다. 이때 도움을 준다는 표현을 ‘카바 친다’라고 한다.  실제에서 사용되는 용례는 이런 식이다.

 “이모님, 카바 쳐줄 거니까 걱정 말고 하이소.”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분노가 한풀 꺼지곤 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주말 최고의 단어는 ‘카바’였다. ‘카바’ 쳐줄 동료가 있다는 건 정말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보는 맹시


 영화《기생충》에서 기우 가족의 난관이 계속된다.

주인이 캠핑을 가고 집을 비운 사이 온 가족이 술판을 벌이고, 자신들이 계략으로 쫓아낸 전 집사를 집에 들인다든가 하는 도를 넘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문제 상황을 만든 데다가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기까지 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기우는 자신이 동경하는 친구, 민혁을 떠올린다.

 “민혁이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라고 했을 때, 가족 중에서 가장 현실감각이 있는 캐릭터인 동생, 기정은 이렇게 말한다. 

 “민혁 오빠한테는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자신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상황과 그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행은 자신들의 무분별한 생각과 부주의한 행동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짚신벌레 사람과 해치우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심리적 문제는 주어진 시간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오는 쫓기는 감정, 즉 존재 불안이다. 존재 불안은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시킨다. 


 영화 《감시자들》의 한 장면이다. 범죄 대상 감시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이 있다. 이 팀에 신참 하윤주(한효주)가 합류한다. 감시 전문가 황 반장(설경구)은 지하철 안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하면서 기억력과 관찰력을 테스트한다.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대답을 하던 하윤주는 황 반장이 떨어뜨린 신문을 주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자 대답하지 못한다.

“놓친 것 같습니다.”

“놓친 것 같은 거야, 놓친 거야?”

“놓쳤습니다.”


 황 반장은 ‘부주의 맹시’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본다는 뜻이라고.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란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다가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의도적 맹시(willful blindness)'는 ‘부주의 맹시’와는 다르다. ‘의도적 맹시’는 세부 정보를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뇌의 반응이다. 의도하는 결과를 위해 불편한 과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안 보고 싶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어떤 판단을 미리 가지고 대상을 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선택적으로 보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심리적 시야’를 말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봐야 할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되는 현상을 ‘부주의 맹시’라고 한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뇌에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세상의 수많은 정보와 자극 중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더 중요한 정보에 집중하고, 그 외의 정보를 여과하는 것을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라고 한다.

 이 선택적 주의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가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이다. 부주의 맹시란, 주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주의를 기울인 것만 기억한다.’



관찰하는 순간, 모든 것은 기회가 된다


 에이미 E. 허먼은 <우아한 관찰주의자: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에서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믿는 대로 보는 성향’은 특정 결과에 대한 기대를 통해 그 기대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더 열심히 찾게 되고, 그 결과 욕구를 사실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도록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하는, 실재 지각을 왜곡시키는 필터는 인지적 편향, 확증 편향, 소망적 보기, 터널시 같은 이름으로 다양한 왜곡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시각에 자신의 욕구가 필터로 덧씌워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놓치는 심리적 의존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계 수단으로든 어느 사물을 살펴보든, 단지 보고 싶다거나 봐야 한다는 이유로 보는 것은 자신의 욕구가 반영된 무의식의 필터가 동원되어 자신의 기대를 지지하는 자료를 찾고 그렇지 않은 자료는 무시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괴테가 말한 가장 중요한 것, ‘분명하게 현시되는 것!’은
사물이 ‘나타내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 즉 ‘관찰’에 있다.
관찰하지 않는 순간, 모든 기회는 사라진다.
관찰하는 순간, 모든 것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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