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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디테일 수집가

 

 뭔가 초심을 잃고 모호해졌을 때,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쌓이지 않고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공회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시야를 좁혀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하느님, 어디에 계십니까?”

 외칠 때에도 하느님은 내 손발보다, 호흡보다 더 가까이 항상 함께 계심을 깨달을 때, ‘바로 지금 여기’에서만 그분을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분을, 나의 현실을 놓쳤을 때 뿐이다. 하느님을 만난다는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표현은 나의 현실에 충실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구체적인 기록과 관찰의 힘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위대한 예를 살펴보자.


 케플러는 행성 운동법칙으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분, 자신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만났다고 증언한다. 그는 하느님은 밤낮으로 기하학과 음악 등으로 창조 사실을 알리신다고 했다. 케플러의 증언에 의하면 하느님은 진정한 예술가이다.

 케플러는 다섯 개의 정다면체가 여섯 행성의 사이에 안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토성과 목성 사이에 정 육면체가 끼어있다.

목성과 화성 사이에 정사면체가 끼어있다.

화성과 지구 사이에 정 십이 면체가 끼어있다.

지구와 금성 사이에 정 이십 면체가 끼어있다.

금성과 수성 사이에 정 팔면체가 끼어있다.‘

 케플러의 발견의 밑바탕에는 ‘하느님이 계획 없이 창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정보의 밑바닥까지 사실을 붙잡는 유일한 길은 기록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일기와 예견의 모든 리스트를 적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기록을 근거로 나중에 그들이 실제 일어나는 것에 어떤 예측 성공률을 지녔는지를 검증할 수 있다.”

 케플러는 철저한 기록과 검증을 통해 당시의 점성술에 대한 신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오랜 기간의 점성술의 정확성을 조사한 첫 번째 과학자였다. 

 케플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과학과 신앙에 대한 경고와 격려를 전한다.

 “하늘은 강한 자를 더 강하게 할 수도 없고, 약한 자를 더 약하게 도울 수도 없다. 어느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조언과 용기로 강화하는 자는 하늘이 그의 편에 선다.”

 목사가 되려고 했던 신앙심 강한 천문학자 케플러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필사본 『우주의 비밀』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창조자를 위한 찬양의 노래로 끝을 맺는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 돌보아 주십니까?‘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미국 내 자유주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것이었다.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지오포)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에 도착한 주인공 노섭은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암담한 세월을 살아간다. 이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노예 12년》에서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단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뭇가지를 깎아서 만든 펜과 접시에 고인 과일즙을 모아서 쓴 글은 채찍과 총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실패를 거듭했던 자유로의 탈출은 몰래 쓴 편지로 가능했다. 

 솔로몬 노섭은 자유의 기회가 올 때 까지 절망에 빠져있지 않았고, 열심히 살아서 버텼고, 결국 자유인 증명서를 받아낸다. 이후에 비밀열차를 운행하여 노예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화를 소설로 썼고,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어 펜의 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나는 노예가 아닙니다."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지.

살아 남아야지! 절망에 빠져있진 않을 거야.

자유의 기회가 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있을 거야.

자유의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틸 거야."

노예제도가 없고 자유인 증명서가 필요 없는 이 시대에도 스스로 노예가 되고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로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는 사람들. 땅이 내 발을 밀어내서 걸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내 몸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 속에서 세상에 나아가도록 스스로의 촛불을 끊임없이 살려내야 한다. 


 뭉툭한 일상을 깨우는 힘부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을 궁극의 존엄과 해방의 힘까지 구체적인 기록에서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체화된 경험적 실체만이 나를 밀고 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있다. 지금까지 해왔기 때문에 하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상투적인 질문이 아니라 진짜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보이기 때문에 보고 들리기 때문에 듣는 습관적인 감각적 체험이 아닌, 보려는 의도, 들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고 듣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보다 깨어있는 의식의 지향이 없을 때 어두운 무의식은 자기 마음대로 우리를 끌고 간다. 지혜로운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명료하게 깨어있음으로써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일상의 디테일이 무너질 때 삶이 무너진다. 삶을 일으키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삶의 구체성이 움직여야 한다. 디테일이 살아나야 한다.

 아침에 눈 뜨면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눈에 보이는 것을 새롭게 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새롭게 듣는다. 오전 10시에는 힘을 북돋우기 위한 티타임을 가진다든가, 오후 4시에는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하늘을 본다든가……. 상투적인 루틴 속에 작고 섬세한 습관을 추가함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어보자.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입 부분에 ‘레몬 냄새가 나는 보리꽈배기’가 나온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판다면 당장이라도 나가서 사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냥 꽈배기였으면 그토록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장은 글로만 읽어도 향기와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냥 꽈배기라고 해도 그만이지만 레몬 냄새가 나는 보리 꽈배기라는 특이성이 부여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활력소로 재표출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감각적 묘사는 또 어떤가.

‘굉장히 무더운 밤이었다. 계란이 반숙이 될 정도의 더위였다. 나는 제이스 바의 무거운 문을 평소처럼 등으로 밀어 열고는 에어컨의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가게 안에는 담배와 위스키와 감자튀김과 겨드랑이와 시궁창 냄새가 바움쿠헨(나이테 모양을 한 독일 케이크) 무늬처럼 고여 있었다.’

 ‘더운데 안 좋은 냄새가 났다’는 말을 이토록 근사하게 해내는 것은 시공간의 구체성을 확보해 내는 감각의 예민함에 있다.


 딸 주희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동네에 새로 연 작은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를 보고 주희는 거침없이 봉골레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봉골레 스파게티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바지락이 들어간 해산물 스파게티로 알리오 올리오와 비슷하다’며 준비된듯한 전문적 멘트를 한다. 특별한 날이니 만큼 나는 보통 때 주로 시키는 것을 탈피해서 좀 더 스패셜 해 보이는 ‘오징어먹물 파스타’를 주문했다. 

 내가 피자와 스파게티를 처음 접한 것이 대학교 무렵이었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스파게티하면 토마토 스파게티였고, 크림 스파게티와의 양대 산맥을 발견한 것도 한참 후였다. 심지어 크림 스파게티가 느끼하다고 못 먹는 사람도 꽤 많았던 그 시절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까르보나라, 마레, 알프레도 등등 다양한 종류를 헷갈림 없이 수용하는 아이가 만나는 세상은 확실히 더 복잡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은 것을 느낀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되는 식당에서 나온 스파게티는 면보다 바지락이 더 많았고, 같이 주문한 버섯 샐러드는 여러 종류의 버섯을 마늘과 함께 볶아 낸 뜨거운 모듬 버섯에 리코타 치즈가 올려지고 싱싱하고 차가운 초록이 함께해 오감을 만족시켰다. 

 생일 선물로 향수를 주었다. 뚜껑에 벌 모양 날개가 붙어있는 노랑색에 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주희가 태어난 순간부터 쓴 꽤 많은 육아 일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생일에 7세, 8세 생일에 주었던 일기를 선물로 주었다. 당시에 선물을 했지만 엄마인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완전히 넘겨주었다. 주희에게는 '너는 특별한 아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짧은 메시지만을 전달했지만 그 짧은 메시지 이면의 깊은 침묵 속에서 지지와 행운을 빌었다.

 주희는 고등학교 입학식 때 흰 운동화를 신을 건데, 지금 신고 있는 것을 빨아서 신을 것이고, 베이지색 가방을 들고 다닐 건데 베이지 색은 때가 잘 탈거니까 두 개를 사서 일주일 마다 빨아서 들고 다니겠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지 색 가방에는 다리미로 눌러 붙이는 와펜으로 장식을 하겠다고 한다.

 주희의 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 흰 운동화와 와펜이 붙어있는 비싼 하나의 베이지색 가방이 아니라 그 앞을 수식하는 동사였다. 스스로 빨고, 다림질해서 붙이겠다는 의지적 행위에서 멋진 고등학생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비싼 새 것을 원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어두운 갈색 책상 대신 새 책상을 사게 되면 그 위에 초록색 식물을 키우겠다고 한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한 원칙도 확실했다.

 첫째, 미션스쿨일 것, 둘째, 교복이 예쁠 것, 셋째, 축제가 재미있을 것

 길을 걷다가 분홍과 하늘색이 그라데이션 된 일몰을 보고는 하늘이 너무 예쁘다며 곧바로 사진을 찍는다. 건물을 화면 귀퉁이 앵글에 적당하게 걸쳐서 가볍게 찍는데도 근사한 작품 사진 같다.

 부족하고 결핍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더 나은 것을 구체화하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생명력'이 떠오른다.

 그 날 이후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이 날 쓴 일기인 이 글을 읽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때 주희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었다. 

 입학식 때 신고 들 흰 운동화와 가방이야기, 흰색 새 책상과 그 위에 초록색 식물 까지.

그리고, 원하는 고등학교의 세 가지 조건 미션스쿨, 예쁜 교복, 재미있는 축제도 모두 맞아떨어졌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주희는

 “진짜. 아, 소오름!”

 하면서 양 손으로 자기 몸을 감싸 안으며 발을 동동 구른다.

 식사를 하면서 아이가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곱 살 주희가 산책할 때 마다 -특히 비오는 날- 깨끗이 씻은 마요네즈 병 안에 지렁이를 많이도 잡았다. 어린 동생들 한데 어디에 지렁이가 있는지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한 마리도 못 잡아서 슬퍼하는 아이에게는 몇 마리 선심 쓰듯이 주기도 했다. 어떻게 알고 지렁이를 잡느냐는 질문에 주희가 한 대답은 정말 놀라웠다.

 "지렁이 냄새를 맡고 잡아."

 지금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주희는 씩 웃으면서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비 냄새였어.“

 라고 말한다. 이미 7세의 놀라운 생명력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그 때, 지금은 잊어버린 지렁이 냄새를 맡고 매일 쉬는 시간 마다 그토록 많은 지렁이를 찾아냈던 것이다.

주희의 열여섯 생일을 맞아 또 하나 기억해주고 싶은 아이의 놀라운 능력 하나는 스토리텔러로써의 자질이다. 낮잠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한 날은 일곱살 주희가 선생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고, 허락했다. 주희는 그림형제 동화, '향나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죽였고,

우리 아빠는 나를 먹었네.

누이동생 마들렌은 내 뼈를 빠짐없이 추스려서

 곱디고운 비단으로 정성껏 싸서

 향나무 밑에 두었네.

짹짹 짹짹! 나같이 예쁜 새가 또 어디 있을까!"

7세 이전의 어린 아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성인이 생각하는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과는 다른, 이전 세계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에 아직 남아있다.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론이 온전히 내 안에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되지 않은 고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당시였다. 

 -가령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왕자님에게 선택받기 위해 유리 구두를 신는 장면은 이야기의 본질적인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쉽게 들려주지 못하고 각색하게 된다.

 큰 딸은 자기 엄지발가락을 끊어버리고는 지독한 아픔을 참으며 억지로 유리 구두 속에 발을 집어넣는다. 둘째 딸은 뒤꿈치를 잘라낸다. 이와 비슷한 예들로 눈을 찌른다든가, 손 없는 아이 등 현실적인 시각으로 보면 신체를 훼손하는 가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장면들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이런 장면이 아이를 위한 동화로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삭제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동화가 가진 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옳다.-

 내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제법 긴 그 이야기를 미소를 띠면서 끝까지 했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 것 보다 더 집중해서 잘 들었던 어느 오후의 낮잠 시간이었다.

어떤 심오한 이론으로도 다 이해 못할 인간의 놀라운 능력과 신비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은 대단한 신비체험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들 속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 일화다.




 지금,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 받고 있는,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여름방학 때 대학탐방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힘을 내는 주희에게서 나를 보고, 지금은 잊어버린 7세 때의 감각과 재능을 기억하면서, 주희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우리 자신이 이해 못할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자산의 거대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 보물을 발굴하는 것이 육체의 기회이고, 이 세상의 미로는 그 게임에 초대받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축복의 길임을 믿는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샘플과도 같은 좋고 아름다운 발도르프 교육, 주희는 발도르프 유치원과 학교를 초등 3학년 까지 다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반학교로 전학을 갔다.   적응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의 주희는 학교를 너무나 사랑하는 멋진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학교 교복이 제일 예쁘고 우리 학교 밥이 제일 맛있어. 석식은 진짜 최고야. 

우리 선생님 진짜 귀엽고, 친구들이 너무 좋아!“

 친구들과 작사.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고, 뮤직비디오 찍을 콘티를 짠다고 바쁘다. 앱으로 뮤직비디오 앨범 자켓을 디자인해서 보여준다. 

 야간자율학습이 밤 9시 까지 진행되는 것에 못할 짓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 틈 사이로 질투가 날 만큼 재미있게 지내고 있고, 즐거운 계획으로 가득하다.

 좋은 교육은 좋은 매뉴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은 어떤 제도나 이념 속에서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고, 자체적인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가정과 학교, 부모와 선생님이 할 일은 자신의 걱정으로 짜여진 프레임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낡은 사고를 버리는 것이다. 아이도, 부모도, 선생님도 각자 자신이 순수하게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고,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믿는다.


 사물을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고 디테일을 수집하는 일은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고, 생생한 시각화를 통해 상상력을 키운다. 기억을 새롭게 재편집, 재배열, 재가동시켜 새로운 감정과 시간을 창조해낸다. 

 식당에서 나오자 바깥이 어두워져 있었다.

주희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오징어 먹물 파스타 같은 밤하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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