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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양자의 세계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공부를 하면서 이 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클래스를 만들었다. 

 나 자신의 고통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 공부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하면 할수록 심리학, 철학, 신학, 문학, 예술, 과학…… 학문과 종교의 모든 분야의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만물에 대한 관심의 확장은 대우주의 축소판인 소우주인 인간이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있다는 증거라고 여겨졌다. 


 어떤 지점에서 자주 ‘양자역학‘을 맞닥드리곤 했다. 꿈에서 본 이미지나 나의 느낌이 그 개념들에 흥미를 증폭시켰지만, 그럴 때 마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도 어렵기만한 물리적 개념이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아서 감각적인 느낌으로 밖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침, 이화여자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 “양자의 세계”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미술공모전을 개최했고, 나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작업이 되겠다 싶어서 응모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감각적인 느낌은 가지고 있지만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한 나에게 공모전을 통한 집중적인 작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 알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동기가 된 일이었다.

 공모전 안내 양식에 주제인 양자를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내는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자료가 제시되었다. 

 #앤트맨과와스프(영화) #슈뢰딩거고양이 #양자역학 #양자나노과학연구단(뉴스)

 제시된 키워드로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막연한 느낌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어갔다.


 이화여자대학교 석박사 통합 과정 김진경님의 공모전에 대한 안내를 돕는 글을 통해 수년간 관심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명쾌하게 이해가지 않았던 양자세계에 대한 이해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이분이 과학의 영역인 양자를 연구함과 동시에 미술을 공부함으로써 가지게 된 융합적인 시각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다른 과학자들이 쓴 글을 읽었을 때는 와 닿지 않았던 내용이 이만큼 와 닿은 데는 미술을 전공한 내 이력도 함께 진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양자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든 화가인 쇠라, 피카소, 토끼-오리 그림은 이미 친숙한 이미지들이었고, 부담스러운 미분 방정식으로 설명했다면 도망갔을 곳에 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편안한 설명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주춤하고 있었던 발걸음을 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1 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정도로 매우 작습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내려가 원자 안으로 들어가면 양자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우리 일상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두 곳에 있거나 순간이동을 하듯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신기한 상태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을 통해 양자의 성질에 대한 특징을 크게 네 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었다. 

 첫째,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양자는 ‘빛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었고,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가진다. 파동성은 에너지를 가진 주기적 진동이 물질과 공간에 따라 퍼져나가는 현상이고, 입자성은 점처럼 생긴 작은 알갱이가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양자의 파동과 입자에 대한 성질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쇠라의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를 예를 들었다.

 둘째,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의 세계에서 입자들은 확률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입자의 운동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원리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작은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이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 있는 기계와 독가스가 들어 있는 통이 연결되어 있다. 실험을 시작할 때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을 50%가 되도록 조정한다. 만약 핵이 붕괴하면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가 죽는다.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는 상자를 열어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것으로,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오직 확률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나라의 내전 상황의 불확실한 이면’ 이나 ‘정신세계와 현실세계의 불완전한 경계의 속성’을 작품화 하는 등 이러한 양자 세계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소개했다. 

 셋째, 중첩은 두 파동의 합을 표현한 것으로, 상자 안의 상태를 0이라고 하고, 상자 밖의 상태를 1이라고 했을 때, 이 두 가지 상태를 합한 것이 중첩이다. 확률적으로 50%는 안에 있고, 50%는 밖에 있다. 

 중첩에 대한 시각화로 피카소 작품을 예로 들었다. 하나의 시각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원근법에서 탈피하여 정면과 측면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던짐으로써 양자적 해석을 하고 있다. 중첩은 단지 다른 두 개의 이미지를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를 가진 두 개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넷째, 얽힘은 두 가지 입자가 서로 상태를 공유하는 것으로 기존의 개념으로는 두 가지 입자가 가까워지면 두 입자의 상호작용이 커지고, 멀어지면 상호작용이 약해지며, 두 입자의 거리가 무한대가 되면 두 입자는 개별적이라 생각했다면, 양자적 세계에서는 처음에 얽혀 있었던, 즉 같은 상태를 공유하면 두 입자의 거리가 멀어져도 얽혀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이에 대한 시각적 작업으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얽힘의 속성(Qumtum Cloud)을 제시했다. 하나하나의 작은 철골을 얽히게 하는 방법으로 공간 속에 인간 형상의 대형 구조물을 만든 작품으로 중심부로 갈수록 밀도가 높게 구성되어있고, 주변부로 갈수록 밀도가 약해져서 옅은 막 같은 구조물을 형성한다. 작가가 피부라고 표현하는 주변부는 배경과 얽혀있다.  


 


 이 젊은 과학도는 양자역학을 ‘삶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이라고 말함으로써 내가 오랫동안 이해도 되지 않는 양자역학의 주변부를 서성이며 이해하고 싶었던 핵심을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정체성을 고민하며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는 자연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세상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신개념을 제공했습니다. 양자의 결론에 의하면 세상은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률로, 추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의 인식을 벗어난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고 있죠.

 예술과 과학은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고 표현합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얽힘’ 상태의 예술과 과학, 그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것은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에게 좋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를, 또 그로 인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결과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해서 양자의 세계를 탐구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아이가 된 듯이 즐겁게 그림을 그려서 응모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어떻게 되든 과정을 충분히 즐겼기 때문에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감상 자체가 이미 양자적이다! 

 이번 공모전으로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은 삶의 구체성을 통함으로써만 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막연한 관심사’였던 양자역학이 ‘양자의 세계 미술전‘이라는 구체적인 세상에 들어가서 탐험함으로써 내 이야기가 있는 나의 세계가 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신들이 공부한 고급 학문으로 대중과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준 주최 측의 사려 깊은 나눔 프로젝트를 귀감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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