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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버림의 미학

 

 재활용 쓰레기들을 모아놨다가 쉬는 날 내다버리곤 하는데 버릴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이걸 내가 먹었었나?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버린 것이며 단지 몇 주 사이의 쓰레기들인데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

막연하게 요즘의 식생활을 생각하면 과거에 비해 정말 적은 양과 종류의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집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고 착각할 것이지만 명백한 증거물들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음식을 먹고 살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서너 개나 되는 1리터 짜리 우유팩, 수십 개의 요거트 통들, 땅콩, 견과류 깡통, 열개나 되는 음료수 병, 빵 포장 비닐, 김 포장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 방부제, 언젠가 다시 입을거라고 옷장에 넣어두고는 수년간 입지 않은 옷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많은 물건들도 언젠가는 모두 버려야할 쓰레기들이다. 최종적으로는 애지중지하는 이 몸뚱아리까지 모두.


 정신 분석을 받으면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 일은 우연이었지만 그 작업들은 종료한 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숙성되어 ‘버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리가 되었다. 청소도 마음도 모두 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어릴 적 교회에서 배웠던 노래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지만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지금, 가지는 것 보다 버리는 것에 진실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매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세계에서 바로 나온 지혜가 담긴 그림형제 이야기가 주요 텍스트였고, 가능하면 토씨까지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외워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수년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외우고 반복적으로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들은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나지는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교훈으로 살아나 나에게 다시금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행운아 한스'는 사소하게는 오늘 아침과 같이 쓰레기를 버릴 때나 크게는 아주 아끼는 소중한 유형, 무형의 소유물을 버리거나 혹은 내 의지가 아닌 채 잃거나 빼앗기게 될 때, 조용히 떠올라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준다.


 한스가 주인집에서 7년간 일을 하고 이제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하자 주인이 그동안 성실히 일해 준 보답으로 큰 금덩어리를 준다. 한스는 무거운 금덩어리를 메고 고향을 향한다.

 가는 길에 소를 탄 사람을 만나서 소와 금덩어리를 바꾸게 된다. 또 길을 가다가 소와 돼지를 바꾸게 되고, 돼지와 오리를, 오리와 가위를 가는 돌덩어리와 맞바꾸게 된다. 바꾸는 장면에서는 소와 돼지와 오리의 주인들과 가위 가는 사람은 한스가 가지고 있는 것을 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니 바꾸는 게 너한테 더 이로울 거라고 꼬득였고,  순진하게도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신이 오랫동안 힘들게 일해서 번 재물을 더 작고 가치가 낮은 것들과 바꾸면서도 그 사람들 말처럼 자기가 운이 좋아서 더 나은 것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한스가 답답하고 안타깝게 보인다. 그리고 그 한심해 보이는 한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점점 궁금해진다.

 결국 7년간 일해서 받은 금덩어리를 돌덩어리와 맞바꾸게 된 한스는 돌덩어리가 너무 무거워서 지친 나머지 우물가에 놓아두고 물을 마시다가 그 돌덩어리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돌덩어리가 우물 깊이 빠져서 보이지 않게 되자 한스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를 이렇게 무거운 돌덩어리로 부터 구해주시다니요. 나는 정말 행운아가 틀림이 없어!"




 이 이야기가 가진 반전과 역설의 카타르시스를 정말 좋아한다.

 한스는 누구나 탐내는 금덩어리를 소로, 소를 돼지로, 돼지를 오리로, 오리를 가위 가는 하찮은 돌덩어리로 바꾼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잃고도 감사할 수 있는 한스는 진정 지혜롭고 자유로운 행운아인 것이다.

 '행운아 한스'를 기억하다가 정확한 문장이 궁금해져서 수 년 만에 그림형제 이야기책을 뒤적이면서 다시금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한 때, 한 문장 한 문장, 단어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하는 이야기를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긴장감 속에서 외웠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안은 성실의 다른 이름이었고, 역으로 그 성실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 또한 한스 처럼 금덩어리와 소와 돼지와 오리와 돌을 버리는 중이고, 그 버림에 대한 고통이 고통만이 아님을 깨닫고 있는 중이고, 지금 무엇 까지 버렸는지, 다음으로 버릴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중이고 그로인해 만나질 새로운 종류의 명랑함과 기쁨에 대한 기대 하고 있는 중이다.

 '행운아 한스'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우물 속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돌들을 보고 한스는 기뻐서 펄쩍 뛰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그토록 큰 축복을 내려서 돌덩이들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정말로 그 돌들은 그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으니까요.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도 없을 거야!"

 모든 짐에서 벗어난 한스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렇게 외치며 어머니가 계신 고향마을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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