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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작고 네모난 것들

 

 육체 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육체적인 고통 보다 힘든 감정이었다. 

‘내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소위 말해서 고학력자. 나름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도 내가 원하는 일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자기부정의 감정이었다. 머리로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이라는 분명한 정리가 되었지만, 육체의 힘겨움과 감정의 부대낌 등 부정적인 감정이 현실의 조건과 맞닥뜨릴 때 마다 또다시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쯤일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건강하지 못한 혼돈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런 내 인생 한 복판의 혼돈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이 준 기쁨과 감동은 말할 수 없이 광대하지만 특별히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아르바이트 대장정의 시절, 직업과 노동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서 신념을 획득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들이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다.


 모니카 페트의 그림책『행복한 청소부』는 청소 일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맞춤형으로 등장한 놀라운 책이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주변을 돌아봄으로써 ‘차근차근’ 자신의 일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실제적이고 유용하며, 지혜로운,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딴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가 어느 날 한 엄마와 아이가 자신이 청소하고 있는 거리 표지판을 두고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이 청소하는 거리인 ‘글루크’라는 사람에 대해 그 아이만큼 모른다는 생각을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종이와 연필을 꺼내 자신이 청소하는 거리의 이름이자 예술가들의 이름을 적어서 벽에 붙인다.

‘글루크-모차르트-바그너-바흐-베토벤-쇼팽-하이든-헨델‘

’괴테-그릴파르처-만-바흐만-부슈-브레히트-슈토름-실러-케스트너‘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다 작가들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책을 읽는다. 이제 청소를 할 때면 노래를 부르고 특별히 마음에 든 구절들을 읊조린다. 일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했다. 혼잣말로 하던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게 되고 유명해질 기회도 생기게 된다. 


 


 육체 노동을 하고 돌아오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지치게 되고 쉬고 싶은 생각만 간절할 때도 많았다. 이 때 토마스 바세크의『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읽으면서 

쉼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노동이 아니다. 여가에 집착하지 않는 좋은 노동이다.’ 라는 메시지는 쉼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노동과 쉼, 쉼과 노동, 그 사이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많이 쉰다고 해서 피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쉬지 못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온전하게 집중된 상태로 하느냐, 분열되느냐의 문제였다. 

 청소를 하든, 공부를 하든, 아이의 그림책을 읽어주든, 설거지를 하든, 그 행위의 가치롭고 하찮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몰입된 ‘지극한 마음’으로 할 때만이 진정한 만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한 청소부가 그랬듯이 특별히 마음에 든 문장을 거듭 읊조리면서 일을 하고 점차 쉼에 집착하지 않게 되자, 분열된 몸과 마음이 더 가까워지자, 내가 나 자신을 더 이해하고 더 친해지자 조금씩 행복한 메이드가 되어갔다. 


 엔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에 그은 수 많은 밑줄 중 강력한 한 대목을 소개한다.

작은 제목은 <생업과 직업, 그리고 천직>이다. 

 세상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상위 목표를 갖고 있어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소하고 지루한 것을 포함하여)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운아다. 벽돌공에 관한 다음 우화를 생각해보자.

세 벽돌공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두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벽돌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벽돌공을 생업은 갖고 있다.

두 번째 벽돌공은 직업을 그리고 세 번째 벽돌공은 천직을 갖고 있다.

 이 예화는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해본 일이나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등이 일치 하지 않을 때, 어딘가에 따로 천직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하는 일은 천직은 아니지만 현실을 유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여긴다.

 앤젤라의 이야기에서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고 말한다.

 벽돌공이 다음 벽돌을 놓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로 생각하는지 또는 개인적 성공을 가져오거나 자신 보다 큰 목적과 연관된 일로 보는지와 같이 본인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벽돌공들의 답을 읽으면서, 룸메이드 시절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벽돌공의 우화와 마찬가지로 룸메이드들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공부를 못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나이가 있으니까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이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일이 참 건강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빨리 시작하지 않은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취업이 힘든 세상에 대한 불평 불만이 가득한 채로 뚜렷한 목적 없이 공부만 하고 있는 고학력 젊은이들 보다 세상의 변화와 이치를 정확하게 꿰고 있었고, 도인에게서나 들을 법한 울림이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벌을 받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호텔 메이드 시절, 큰 용서를 받았고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내 삶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직함이었던 교사일 때도 비슷한 말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교사 일이 천직이고 만족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고 존경받는 일을 하면서도 자주 퇴직을 언급하거나 부자유한 고충을 말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 곳 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나도 호텔 메이드를 위시한 블루 칼라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을 것이다. 유치원 교사 일을 가장 오래 했고 교사 동료들이 가장 많지만 교사는 교사대로 메이드는 메이드대로 그들의 좋은 점과 어려움이 다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진실이 있고, 사람은 누구도 하찮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 삶의 한 가운데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귀한 배움이다. 


 벽돌공이나 룸메이드 동료들, 교사들의 말도 그렇지만 나 자신 부터가 그랬다. 근무조건이 좋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할 때에도 자신의 감정과 외부 상황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었지, 천직이 따로 있을거라는 생각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환상이 만들어낸 가짜 신화라는 생각이다.

 진짜 신화는 모든 현재를 천직으로 만들어내는 마음의 힘이다. 

 매일의 빵과 매일의 의미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 생업과 직업과 천직의 사이를 잘 유영해나가는 것이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은둔지에서 쓴 안네 프랭크의『안네의 일기』도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1944년, 놀라운 소녀에게서 온 메시지는 만날 때 마다 곧바로 힘이 되는 비타민 같은 힘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방법, 그것은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만일 네가 네 일을 적절히 끝내지 않는다면, 또한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린다면,

다시 한 번 네 일을 계속해 나가라. 그리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 보라.“

“마음의 행복은 비록 베일에 싸두어도 언젠가는 또 되살아나올 거예요. 두려움 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이 맑고, 앞으로 반드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한은 말예요.“

“밖으로 나가요. 들에 가서 자연과 햇빛의 은혜를 즐기는 거야. 당신 자신과 하느님에게서 다시 한 번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당신과 당신 주위에 아직 남아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봐요.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매주 최대의 기쁨은 레버 소시지 한 조각과 잼을 곁들인 빵을 먹는 것이예요.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이런 초라한 식사라도 맛있게 먹고 있는걸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기뻐해야 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숭고한 것을 믿을 수 있는 천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 만일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하루의 일을 생각하고,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정확하게 반성해 본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숭고하고 훌륭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날 아침부터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게 될 거예요. 당연히 그런 노력을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죠. 이것은 누구든지 실행할 수 있고, 비용도 들지 않으며, 더구나 매우 도움이 된답니다. 아직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티 없이 맑은 양심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고 발견하길 바래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도로 청소부 베포도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청소를 하다 보면 종종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향기나 꿈속에서 보았던 색깔과 같아서 전달하기 쉽지 않았다.’ 

 베포의 이런 생각도 내가 청소를 통해서 배운 중요한 삶의 교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 그게 중요한 거야.”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미하엘 엔데는 베포라는 청소부를 통해 소중한 삶의 진실을 전하고 있다.


 작고 네모난 친구들과의 마음의 대화는 그 시절을 견디는 힘이었다.

 빅터 프랭클의『심리의 발견』에서 ‘치유의 수단으로서의 책’에 대한 귀한 사례를 소개한다. 

 ‘수십 년 전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당장 다음날 아침 1천 명의 젊은이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수용소의 도서관이 털렸음이 이튿날 아침에 드러났다. 죽으러 갈 젊은이들이 각기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학술서들을 꾸러미 안에 챙겨 넣은 것이다. 그들에게 책은 비상식량과도 같은 것이었다. 빅터 프랭클은 이 젊은이들의 사례를 말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근원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환경의 빈약함은 행동의 확실성의 조건이 되며, 확실성은 풍부함보다 중요하다.‘ 

 생태학자 야콥 폰 윅스킬의 말은 곤경에 처했을 때 유용한 힘이 되었다.


 교사로 일할 때 이런 모순을 자주 보곤 했다. 내가 일하는 유치원은 발도르프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고 당시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발도르프 교육이 일반 공교육과는 다르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결정을 하지 못한 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질문을 하는 설명회 자리가 자주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이 자주했던 질문이 있었으니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뭐가 되었는지’ 였다. 현재는 우리나라 발도르프 학교에서 졸업생을 배출하고 뿌리를 내렸지만 십여 년 전 내가 현장에서 일할 때만 해도 전 과정을 다 마친 졸업생이 안 나온 상황이라 외국의 사례를 들어 모범답안처럼 설명하곤 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택시 기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은 각자의 능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답을 듣는 학부모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이 교육이 그렇게 좋다면 모두 좋은 최고의 영역에서 일한다는 답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 사회가 될 것인가. 

 버스 운전을 하시면서 목공예 공방을 운영하시는 옆집 사장님,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건어물 가게 사장님, 피아노를 배우는 옷수선 가게 사장님… 자신의 위치에서 정직하고 건강한 성장을 향하는 놀라운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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