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Jul 14. 2019

난독증의 독서가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고, 초등학교 때는 공부와 예체능, 친구 관계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잘하고 활동적인 아이었다. 중학교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오랜 기간 시달리면서 암기 등의 집중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졌다. 당시에 뇌파검사도 해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남겨졌고, 두통약을 먹거나 잠을 자는 일시적이고 소극적인 방편으로 시간을 보냈다. 학습장애의 요인이 된 편두통은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학교를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지니까‘ 문제 삼지 않았다. 고통이라면 고통일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좋아하고 잘하는 그림으로 방향을 잡아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세우고 인정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런데 문제 삼지 않으려고 했던 문제들은 그 이후 오랜 세월 난독증, 일시적 언어장애, 불안장애 등 다른 형태로 변장해서 삶에 자꾸 등장함으로써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문제‘들을 의식적으로도 느끼기 시작했지만 ’큰 문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30대 때는 교육을 통해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극복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나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 본 것은 40대에 와서 오랜 세월 잠복해있던 문제를 더 이상 작은 문제로 생각할 수 없는 총체적 난관이 닥쳤다. 

 단테가 『신곡』의 도입부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나는 인생길 반 고비에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처했었고, 나의 길을 올바로 걷기위해 별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반짝이던 작은 별은 점점 더 밝고 환하게 빛나며 길을 밝혀 주었다. 당시에 하던 유치원 교사의 일을 그만두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정신분석을 받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공부를 하면서 나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돌아보는 강도 높은 시간을 가졌다. 

 어둠의 긴 터널과 같이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나의 고통은 성적이 떨어짐으로써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된 낮은 자존감으로 부터 온 무력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내가 처하게 된 고통에 대해 그게 무엇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명료하게’ 알게 되면서 그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런 증상이 남아있다해도 더 이상 나에게 고통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미미한 힘에 불과했다. 

 내가 가진 고통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적절히 치료하지 못한 후유증에서 온 일시적 난독증, 실어증(말 자체를 잃은 정도의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행위가 자유롭지 못할 때 언어도 같이 퇴행된다.) 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안개처럼 내 시야를 가로막았던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이 걷히게 되었다. 앎은 무지의 구름을 걷고 맑고 명료한 의식을 회복하게 한다. 


 난독증, 언어장애, 선택적 함묵증, 학습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강박증, 편집증……. 처음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나에게 속한 증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메모는 심리학에서 철학으로, 신학으로, 과학으로, 문학으로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작은 메모지는 노트로 변했고, 한 권의 노트는 어느새 열 권, 스무 권이 되었다. 공부라기 보다 하나의 취미처럼 놀이처럼 변했고, 하나의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일종의 자산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여정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친해지게 되었고, 용서하게 되었고,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5분 생존 독서

 난독증을 극복한 이야기는 ‘5분 생존 독서‘라는 강렬한 단어로 정리된다. 더 이상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 존엄성을 갉아먹는 ’내 안의 어떤 것‘을 모른 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시작한 정신분석과 육체노동의 시간들은 끊임없는 강한 의지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5분 만에 옷을 입는 것으로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자동반사적으로 책장 앞에 다가가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꺼냈다. 대충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눈에 뜨이는 단어나 문장을 잡고는 그것을 기도처럼 주문처럼 외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고 했던 말이 절로 떠오르고 이해가 되었다. 실존적 불안 앞에서 단어 하나는 생명과도 같았다. 

 그 때 붙잡았던 단어는 이런 것들이었다.

‘창조하시는 성부, 구원하시는 성자, 지키시는 성령

새로운 시작은 하느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은 노동이다.

회개, 동의, 감사‘

 주로 신학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을 찾는 것도 다 의존이라고. 믿음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당장의 위기 앞에서 본능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 실존의 상황이고 그 때 붙잡게 되는 것이 늘 나와 함께 계시는 현존, 하느님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극도의 불안이 가라앉으면서 하나씩 확장하고 싶은 단어들도 떠올랐다. 시간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장문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혜와 힘이 담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캐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드러나는 행동으로 감행해나가는 혁신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고민하면서 정의, 평등, 욕망, 고통, 자유, 힘, 용기, 존재, 사랑… 선하고 아름다운 단어들을 생각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서서히 알아갔다. 그런 복된 시간이 쌓여가면서 희망이 보여서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내 안의 중심, 주님을 향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이 흐르곤 했다.

 글만 보면 금방 졸음에 빠지고 집중이 분산되는 난독증 증상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 근처에 있는 텍스트라면 그게 어떤 형태든 잡아채서 씹어먹듯이 강렬한 욕망으로 집어삼키면서 저절로 치유가 되었고, 언제 어떻게 좋아졌는지 모를 정도로 점점, 예전에는 근접하지 않았던 두껍고 어려운 학술서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학교를 십여 년이나 다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제대로 된 독서는 이 때 부터였고, 그 시작은 위기 상황이 주는 생존의 욕구였다. 




분노의 도서관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마음껏 할 수 없는 제약 속에서 나는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도서관은 시쳇말로 가성비 갑의 공간으로 돈으로 대접받고 돈이 없으면 위축되기 쉬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마다 분노를 삼키며 도서관으로 갔다.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나는 ‘분노의 도서관’이라고 말하곤 했다. 

 도서관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다. 내 마음 속 분노가 불처럼 활활 타오를 때나, 모든 것이 잠길 듯이 슬픈 바다와 같을 때도 도서관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다. 크고 조용한 도서관은 특유의 고요와 침묵으로 내 마음 속 혼돈을 받아주었다. 분노의 도서관으로 무료입장해서 분노의 가방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오면 자판기 친구가 나를 반긴다. 음료수를 하나 뽑아서 마시면서 늘 그 자리에 있는 눈앞의 산을 바라본다. 딱 그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산을, 딱 그 시선으로 바라본다.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서관의 고요와 질서, 음료수의 청량함과 산의 초록이 내려앉는다. 이건 마법이다. 불같은 분노에도 나를 믿어보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 나에 대한 선물이다. 게다가 카프카와 들뢰즈를 읽게 된 지금의 도서관은 어린왕자나 엘리스만 알던 예전과는 달리 친근하고 도전적이기도 하다.

 날 새는 줄 모르는 늦게 배운 도둑 같은 분노의 독서가는 미식가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면서 음식을 즐기고 음식에 대한 평을 글로 쓰듯이 육체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번 돈으로 심장 떨릴 정도로 비싼 책들을 줄줄이 사고 읽었다. 눈으로 읽고,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부분을 필사를 하고, 글을 썼다. 내 생각과 같은 글을 쓴 유명한 철학자들을 읽으면서 혼자 있어도 수많은 철학자들과 교류하는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날 밤, 우리 동네 분노의 도서관은 웅장한 중세의 도서관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커다랗고 긴 테이블에 법복을 입은 중세학자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앉아 있는 나도 학자 같은 검은 옷을 입고 헤르미온느 처럼 긴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헤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고 특히 헤르미온느를 좋아하는 나는 내가 꿈에서 똑부러지고 사랑스러운 헤르미온느가 된 것이 무척 행복했다. 내 오른쪽 옆자리의 흰 수염이 긴 학자는 옆면이 황금으로 된 두껍고 큰 책을 읽고 있었고, 왼쪽 옆자리의 두꺼운 안경을 낀 사제 같은 분은 차돌같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검은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내 앞에 앉은 또 한 명의 학자는 머리가 새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초록빛이 나는 돌에 뭔가를 새기고 있었다. 새 머리의 학자는 고대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문서라고 하면서 빛이 나는 초록빛 석판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식물과 동물, 보석과 인간이 정교한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새머리의 학자는 나에게 끈이 여덟 개 달린 펜을 주었다. 그리고는 그 실을 땋으라고 했다. 


 난독증의 최대의 불행은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비하, 자책감이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어느새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자기소외, 자기부정과 같은 결핍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어느 맥락에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고 난독증을 극복하고 읽게 된 책은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기쁨이기에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고 생각할 만큼 책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입장 또한 견지할 수 있다. 난독증의 고통을 알고 난독증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부여한 소명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쉽게 쓰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말한 글을 잘 쓰는 법은 내가 가진 이 소명에 입각해서 필수적인 지침이 돼주었다. 유시민 작가는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서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바 있다. 

첫째, 끝까지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둘째, 주제를 설명하는데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를 넣는다.

셋째, 단문으로 쉽게 쓴다.

 책을 쓰면서 막힐 때 마다 단순한 이 지침이 마음을 초기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쉽고 단순해 보이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쓰기란 온몸으로 끝까지 밀고나가는 힘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다.




 이반 일리치는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12세기 수도사들의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도사들에게 한 줄 한 줄 책을 읽고 배운다는 것은 수도원 포도밭에서 딴 포도 한알 한알'의 달콤한 맛을 음미하듯이 맛보는 것으로 여길 만큼의 기쁨과 즐거움이었다.

 '페이지 page' 는 라틴어 '파지나 pagina' 즉, 포도넝쿨에서 유래되었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성경을 읽다가 

"거룩한 이해의 달콤함을 맛볼 때면 그것은 정말로 꿀이다."

라고 기록했다.

포도넝쿨인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시선으로 텍스트를 따라가면서 읽는 행위를 '산책'으로 비유했으며, 거룩한 철자들을 가슴에 새기고 음미하는 것을 손으로 포도를 따듯이 '수확'하는 기쁨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눈만 뜨면 쏟아지는 텍스트의 홍수를 재앙처럼 느끼는 21세기 한 날 아침, 12세기 수도사들의 읽기 신공을 엿보면서 텍스트의 포도밭을 거닐면서 달콤한 포도를 맛보는 축복을 언제든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선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청소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