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Jul 14. 2019

하농 예찬


 피아노 연습이 잘 되는 날이 있고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오늘 연습이 잘 되었는데 비로소 연습이 잘 되는 날은 며칠간 연습이 잘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인내심 있게 천천히 반복적으로 연습을 한, 잘 안 되는 날들을 견뎌온 데 대한 응답인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종합적으로 보면 잘 안 되는 날도 잘 되는 날을 위한 예비 단계인 것이다.

선함을 행하는데도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곧 은총이다.

오늘 읽은 성경 구절이 오늘의 피아노 연습을 축복해 주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은 기도하고, 즐거운 사람은 노래하라.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에서 연습을 하는 방법과 이유, 마음가짐에 대한 아름다운 조언들을 들려준다. 이 빛나고 성숙한 조언들은 피아노 연습을 넘어서 삶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인용하고 싶은 대목이 너무 많지만 연습하기 싫을 때 가장 큰 자극이 되어준 말을 나누고 싶다.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결심만 하기 보다는 자신의 두 손을 가지고 어떻게 그러한 마음을 실현해 나아갈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음악에 대해 존경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비참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연습을 안 한다는 것은 아직 충분히 비참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연습을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연습을 게을리 하며 다른 사람에게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을 불행했던 과거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올바르게 연습하는 것을 배우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의 과거에 매달릴 시간이 없을 것이며, 스스로의 기대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몹시도 싫어했던 연습이 이제는 즐거움과 성취에 대한 전주곡처럼 되어 질 것이다.' 

충분한 연습을 할 때, 너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하농을 칠 때마다 감탄스럽다. 

4번 손가락의 힘을 강화시키고 독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을 치면서 느낀 점이다. 눈으로 보기엔 5번 손가락이 제일 작고 약한 것 같아 보이는데 4번이 의외로 의존적이고 힘이 없다. 4번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과 같이 칠 때는 힘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4번 손가락만 따로 건반을 쳐보면 놀랄 정도로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립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꾸 누우려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손가락들이 4번 손가락 때문에 같이 기능을 못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4번 손가락을 바로 세우고 힘을 주면 조금씩 나아져서 전체 소리가 고르고 균형 있어진다. 

 4번 손가락이 꼭 내면아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의 마음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계에서도 모든 개개의 성격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때 전체 기능이 조화로워 진다. 전체가 잘 기능해도 하나가 제 역할을 소홀히 하면 그 하나를 돕느라 결국 전체가 질서를 잃게 된다. 


 하농은 치면 칠수록, 칠 때마다 새롭게 심오한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한다.

전체 곡들의 구성이 같은 주제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구조로 단순하게 보이는데, 각 곡 마다 각각 다른 손가락의 힘을 기른다든가 손가락 사이를 벌린다든가 좁히는 등 순발력을 연습시키는 목표가 뚜렷하다.

그렇게 버벅거리고 안되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느 날 쳐보면 이렇게 쉬운 게 그땐 왜 그렇게 안됐을까 우스운 것도 있다. 지금 연습이 되어서 잘 쳐지는데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 잘 치던 지난 곡의 습성이 손에 남아있어서 새 곡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난 곡을 빨리 잊어버리고 지금의 곡에 집중해서 빨리 습득을 해야만 한다. 

 한 곡으로 부점, 지속음, 스타카토, 레가토 등 리듬과 박자에 변화를 주어서 얼마든지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점을 배우고는 단순해 보이는 하농의 가능성과 무궁무진한 매력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한마디를 진행하는데 돌림노래처럼 왼손이 먼저 시작하면 곧바로 오른손이 따라가거나 반대로 오른손이 먼저 치고 왼손이 이어서 치는 방법도 패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마치 패달을 밟은 것처럼 에코 같이 들렸다. 단순한 음계를 치면서도 바흐의 인벤션이 생각날 만큼 대단히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손저림이 심할 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면서 손가락이 아픈데 피아노를 치면 더 악화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을 하면서도 정신이 육체를 끌고 가보자고 한 마음 내어서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저림이 없어졌다. 치료까지 되니 하농 예찬론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손가락 연습곡 집 하농을 만든 하농은 ’하농을 연습하면 손가락의 힘이 강해지고,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독립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힘이 약하다거나 4.5번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비해 약하고 움직임도 둔하기 때문에 특별히 훈련하지 않아 제몫을 못하게 되는 경우라고 생각했다.

 하농을 연습하면 손목의 유연성과 손가락의 민첩성, 독립성, 그리고 손가락의 힘의 완전한 균등성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5번 손가락은 힘줄이 독립적으로 있지 않고 3번에서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3번 손가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4, 5번 손가락을 각각 타건 연습과 4, 5번 손가락을 벌리는 연습, 3, 4번의 균형 있는 타건을 위한 연습을 함으로써 독립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다. 

 ‘연습을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아름답고 힘 있는 조언을 한 번 더 요청하며 하농 예찬을 마친다.



가르침을 통해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자질을 유인해 내는 것보다 더 뜻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각자의 재능이 곧 한 개인 고유의 개성과 주체성을 이루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재능은 우리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나타내 주는 것이며, 자신의 재능을 개발시키면 시킬수록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자신과 재능이 서로서로 힘을 보태주도록 함이 바로 음악을 공부하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되어진 것이다.

즉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이 자기수양, 더 나아가 자기완성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 ...

 음악과 내 자신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우주의 질서라는 동일한 대답을 얻게 된다. 하늘의 별들처럼 창조의 한 부분인 우리는 음악 안에서 우리 자신의 연장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는 완벽함을 향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의 언어를 통해 별들과 일체를 이룬다. 음악은 그 조화 속에 만물의 우주적 질서를 축약하고 있어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쌓여 있는 우주의 질서를 직접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이 험한 세상을 향하여 조화를 알려주며, 외로움과 불만을 몰아내 준다.

그 소리는 우리 안에서 진리가 자리 잡고 있는 생각과 느낌의 심오한 곳을 발견하게 해준다. 우리가 질서와 완벽함으로 충만되어 있는 음악처럼 되고자 한다면,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음악의 요구에 부응되도록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지속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음악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을 현명하게 지배하며 음악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철저한 기준이 어떻게 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분별 있게 안내해 주는지, 이 두 가지는 삶의 원칙으로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음악 안에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자신도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힘을 찾아서 모든 것이 파악되는 자신 속의 깊은 영역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상적인 연주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적 가치에도 공헌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꿀벌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