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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나의 그리스인 시절

 

 육체 안에 아름다운 영혼이 가득하고, 영혼이 건강한 육체와 조화로운 인간, 태초의 순수함과 호기심, 열정이 변질되지 않은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으니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그 기억의 배경에는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즐겨 입으시던 영화배우 뺨치게 멋진 총각 선생님, 김봉경 선생님이 계셨다.

모든 잠재력을 통합하는 인생의 르네상스를 꿈꾼다고 할 때,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만한 장면은 바로 그 때이고, 그 장면들에 늘 등장하시는 담임선생님, 김봉경 선생님을 추억한다.

 김봉경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불을 켰을 때 불빛에서 보았던 큰 난로와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속에 나타난 다정한 할머니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살아나서 나를 따뜻하게 해 준다. 


노래

 김봉경 선생님하면 아침 조회 시간에 늘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가르쳐 주셨던 모습이 떠 오른다.

 '내 마음은 하나요. 내 뜻도 하나요. 어젯밤에 꿈도 하나요. 

친구도 하나요. 사랑도 하나요. 그렇지만 외롭지 않아라.'

이런 노래도 있었고, 트윈 폴리오가 불렀던 

'사랑은 한 순간에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을 해도 

내 마음 모두 바친 그대 그 누가 뭐라해도 더욱더 사랑해'

라는 노래도 가르쳐 주셨다.

 '산 너머 강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도 있었고,

자전거가 들어가는 노래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아홉 살 어린 아이지만 잘생긴 총각 선생님이 기타를 치시면서 동요가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장르의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고 멋지게 보였다. 

     

그림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그림 두 장을 들고서 아이들에게 '이 그림 두 장 중 어떤 그림을 벽에 걸까?' 하고 물으셨던 장면이다. 한 장은 짙은 남색 기차 3량이 일렬로 있고, 그 앞에서 양팔을 들고 인사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었고, 또 한 장은 어미 닭이 화면 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있고, 병아리 들이 그 주변에 있는 그림이었다.

선생님 질문에 아이들은 일제히 "예정옥 그림이요!" 하고 외쳤다.

닭 그림은 숙제로 집에서 그려온 거였고, 기차 그림은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그린 거였다. 둘 다 내 그림이었다.

선생님이 크게 웃으시면서 '둘 다 예정옥 그림이야.' 하니까 '기차 그림이요.', '닭 그림이요.' 하면서 반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결국 기차 그림이 유리 액자에 보관되어 교실 왼쪽 기둥에 붙어서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말 이 기억은 나에게 있어서 베스트 중 하나다. 내 그림 두 장을 가지고 갈등했던 선생님과 그림 자체 보다 작가를 더 믿고 만장일치로 소리쳐준 반 친구들의 신뢰. 선생님과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뒤섞인 따뜻한 교실 풍경은 잊고 있었던 화가의 꿈과 선생님의 꿈을 떠 올려준다.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나에게는 보석 같은 한 장면이다.




달리기

 또 하나의 장면은 체육 시간에 릴레이를 하는데 내가 릴레이 선수 몇 명에 뽑혔고, 두 번째 주자로 달리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릴레이 달리기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먼저 달린 친구가 다음 친구에게 바톤이라고 하는 흰색 막대기를 전달해주면 그걸 받아서 계속 달리는거라고 하셨다. 출발 선에 서서 직진으로 뛰는 달리기만 알았던 나는 먼저 달린 친구가 나에게 바톤을 넘겨주었을 때 바톤을 받아서 진행 방향으로 뛰지 않고 그 친구가 달려왔던 방향으로 거꾸로 뛰었다. 바톤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터라 방향 까지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소리치시면서 뒤 쫒아 왔지만 상대편에게 이기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던지라 선생님 목소리도 안 들렸다. 선생님은 도중에 멈추시고 다시 아이들이 모여 있는 출발선으로 가셨고, 나는 한 바퀴를 거꾸로 다 뛰어서 씩씩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아이들이 손가락질 하며 ‘하하하!’ 웃었다. 그 때서야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당황했는데, 선생님께서 활짝 웃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양손으로 두 뺨을 감싸주셨다. 나의 큰 수치심은 이내 '선생님이 내가 실수해도 나를 예뻐해 주시는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나도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이야기

 아침 조회 시간에 노래도 불렀지만 아이들이 한 명씩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고, 내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한다고 자주 앞에 나갔던 것 같다.

내가 했던 이야기 중에서 지금 생각나는 것은 누가 10원 짜리 동전에 깔려 죽고, 누구는 50원 짜리 동전에 깔려 죽고.. 뭐 이런 쓰잘떼기 없는 우스개소리였던 것 같은데 아이들이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던 분위기가 생각이 나고 선생님도 크게 웃으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께서 교실 앞 쪽 의자에 앉으셔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아이들과 같이 크게 웃어주시면 나는 힘이 나서 내 안에 있는 웃기는 캐릭터를 더 끌어내어서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을 했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 와야겠다고 마음먹곤 했다. 이제 그림뿐만 아니라 이야기 시간에도 선생님께서 ‘이야기 할 사람?’ 하시면 아이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스스로가 부여한 우리 반 최고의 재담가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즐겁게 떠안고 학교가 끝나면 어디에 재미난 이야기가 없나 호시탐탐 내 안의 수집가를 가동시켰다. 그 재기발랄한 부지런함은 모두 나를 신뢰하고 사랑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부터 비롯된 힘이었다.


 그렇게 해맑고 똑 부러진 언어를 구사했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거늘 나에게-지금은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던- 언어장애가 찾아왔다. 사람들 앞에서 가슴이 떨리고 긴장이 되어서 말을 잘 못하는 증세가 생긴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그렇게 긴장한 내 모습을 기억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떨려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못난 내 모습이 자꾸만 되살아나서 나를 괴롭혔다. 자존감도 티비 위에 쌓인 먼지처럼 작아졌다. 나는 점점 사람들 앞에 서고 싶지 않아졌고, 점점 혼자 있는 게 편해졌고, 점점 스스로를 가두고 숨어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다. 때로는 가혹하다 싶을 만큼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찾아온 이해 못할 현상은 마치 벌과도 같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건 벌이 아니라 용서의 기회였다. 스스로의 욕구와 소중함을 외면한 채 자폐의 골방으로 숨어든 나약한 내면아이에게 스스로 부과한 성장의 기회, 그 의지가 쌓이고 쌓여 억압된 가슴을 열게 하고, 잊어버렸던 기억들을 되찾아주었다.

 셀프 언어치료와 더불어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관심과 조언을 통한 귀한 배움으로 작은 나무가 점점 더 튼실해져 갔다. 

또한 나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보게 된 내 안의 아픈 감정은 타인의 불편한 시선과 감정이 모두 내 안의 결핍과 상처의 투사체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힘으로 세상과 만난다. 스스로 변화하려는 마음을 낸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득 안고.

‘고통은 말하는 순간 이미 고통이 아니다.‘ 는 스피노자의 말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는데 너무나 유용한 명언이다.

 아동정신치료의 권위자이며 최초로 놀이치료를 도입한 멜라니 클라인도 자폐였고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 본인이 그 고통을 절감했기에 세상의 절실한 요구에 한줄기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상처 없고 완벽할 필요가 없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이미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뿐 모든 인간은 탄생 자체가 박탈의 경험이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면 알수록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되찾을 수 있다.

짐은 날개가 된다. 상처는 별이 된다.


 다시 마무리는 김봉경 선생님이다.

이토록 생생한 기억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받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롭게 일깨워 준다.

겁에 질려서 대중 앞에서 벌벌 떨면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바보 멍청이가 되었나 자괴감에 휩싸였을 때, 2학년 3반 최고의 이야기꾼, 인기 만점 화가, 엉터리 릴레이 선수, 꿈 많은 가수였던 나, 모든 것을 좋아하고 잘 하는 나, 조화롭고 행복한 그리스인이었던 나를 기억해낸다. 빛나는 그리스 시절의 기억은 암울한 중세의 가을을 견뎌내는 힘으로 작용하고, 내 안의 이야기하는 사람, 내 안의 노래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르네상스의 부활을 꿈꾸게 한다. 

그 뒤에서 내가 잘 할 때나 실수할 때나 항상 웃어주셨던 김봉경 선생님의 햇살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내 어린 시절은 현재에 있지 않고 이미 없어져 버린 과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회상하면 나는 그것의 영상을 현재에서 보게 됩니다. 

 … 우리가 하려는 행동을 미리 생각하는 경우, … 그것은 미래이므로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계획을 착수하면 그 행동은 현재의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미래가 아니고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차라리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 이 세 가지의 때가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이 셋은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 memoriae 이고, 현재의 현재는 직관 intuitus 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 expectatio 입니다."


 모든 것을 잘하고 걱정 없이 즐길 궁리만 했던, 욕망과 능력이 조화롭게 표현되었던, 순수하게 즐거웠던 나의 그리스 시절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기대하고, 현재에 집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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