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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하늘나라 여행기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예쁜 물건을 파는 가계들이 많이 있었다. 대학교 때 유럽 여행을 가서 보았던 작고 예쁜 가게들 같았다. 유리 볼 안에는 코바늘로 뜬 꽃모양의 모티브들이 색 색깔로 들어있었다. 누우니까 배영을 하는 것처럼 공기 중에 무중력하게 둥둥 떠 다녔다. 유리 볼 속에 손을 넣어서 꽃 모티브를 한줌 집어서 뿌리니까 벚꽃처럼 흩날렸다. 꽃가루를 뿌리면서 가볍게 계속 떠다니는데, 어떤 여자가 “그렇게도 되네.” 하고 말을 걸어서 “네, 이렇게도 되네요.”하고 계속 떠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투명인간이 되어 위층과 아래층으로 자유롭게 통과했다. 예쁜 까페도 있고 모퉁이를 돌 때 마다 다른 작고 예쁜 가계들이 계속 나왔다. 내가 그린 그림이 그려진 옷들이 많이 걸려있는 옷 가계가 있었는데, 그림이 동영상으로 된 옷들도 있었다. 이국적인 색깔과 모양의 구경거리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서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생각했다. 


 예쁜 물건들이 가득한 가계들 안을 자유롭게 떠다니면서 구경하는 행복한 장면은 나에게 주어진 천국의 한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쭉 미술 관련한 꿈을 꾸고 미대를 나오고 공예를 전공하면서 예쁜 까페나 특이한 소품을 파는 가게를 갖고 싶어 하는 꿈을 꿨지만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장면들이 동화 같은 느낌으로 이어졌다. 구름처럼 희고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과 맑고 투명한 샹들리에가 있는 아름다운 침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첫날밤을 보내고 깨어났는데 창 밖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꿈도 그랬고,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근사한 문화센터의 주인이 된 꿈이라든가 멋진 빌딩을 짓거나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고 동경했던 옛날 친구와 같이 학교를 짓는 꿈도 그랬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꿈을 통해 소원 성취를 한 것이었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면 꿈에 비해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거나 과거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무의식은 의식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꿈과 희망을 품고 ‘의도’를 가짐으로써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불러들여 그로부터 인도를 받는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의 이루지 못한 억압된 욕망이 해소되자 보다 더 오래된 시간과 공간으로 초대되었다.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내린 곳은 숲과 들이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었다. 황금의 들판에서는 순박해 보이는 농부들이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면서 자신이 뿌린 씨앗의 결실을 위해 땀을 흘리며 평화롭게 일을 하고 있었다. 

 농부들은 내가 유치원 교사로 일할 때 아이들과 같이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농부가 들판에서 씨를 뿌리네

농부가 씨를 뿌려 곡식을 걷네

농부가 곡식 걷어 집으로 가네‘

 하프와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길을 안내해 주었는데 그 곳을 ‘축복받은 자들의 땅’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급하게 서두르거나 힘든 모습이 아니었고 노래를 부르면서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 평화롭고 복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빛으로 반짝이는 강물 뒤쪽으로는 짙은 초록의 정글 숲 속에서 이국적인 식물들과 지금은 멸종된 듯한 소와 같은 형상의 신령스러운 흰색의 동물들이 많이 보였는데 앙리 루소의 그림을 닮아있었다.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부지런히, 바쁘게, 열심히,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부여받은 나의 달란트, 나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지 않는 곳에 도착한 나는 ‘온 몸으로’는 살았을지언정 ‘온 마음’, ‘온 정신’으로 살지는 못했다는 아픈 고백을 해야만 했다.

 손목 절단의 가혹한 형벌은 나약한 정신에 대한 처단이었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혹독하고 근면 성실한 육체를 훈련한 만큼 그에 합당한 강인한 정신으로 거듭나야했다.

 무의식은 의식화되지 않은 의식, 즉 살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곳의 정신이다.

무의식의 꿈, 신화, 상징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는 불완전한 노력으로 좁아져있는 의식의 세계를 향해 건네주는 보편적이고, 진실한 메시지이며,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다.

삶과 죽음,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강렬한 꿈과 사유는 이후의 삶에서 갈림길에 설 때 마다 언제든지 ‘곧 죽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생의 근원으로 이끄는 질문이 되었다.


 여행을 마친 나에게 연주자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살아 있는 동안 항상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라.

하루 하루 행복하게 살아라.

근심을 멀리 버리고, 즐길 궁리를 하라.

너의 순수한 즐거움을 따르라.‘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천국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곧바로 답가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배운 노래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기억해냈고, 여기에 동작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즐겁게 불렀던 노래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는건 누구든지 알지요

농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덮은 뒤에 

발로 밟고 손뼉치며 사방 둘러보지요

친구를 기다리네 친구를 기다리네

한 사람만 나와줘요 나와 함께 춤춰요


둥근 큰 원을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다가 ‘친구를 기다리네’ 에서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친구를 지목한다. 자신이 선택한 그 한명의 친구와 후렴 ‘랄라랄라~’ 에서 두 손을 마주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이 때 친구를 선택하는 아이는 원을 한 바퀴 휙 돌아보면서 누구를 선택할지 갈등하기도 하고, 이미 마음속에 정해 논 친구를 곧바로 선택하기도 한다. 선택을 받는 아이들은 ‘나! 나!’하면서 자신이 선택되어지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고, 표현은 안하지만 모두 속으로는 자신이 선택되기를 바란다. 

선택되어지고 싶었지만 선택 되지 못한 아이들 모두는 ‘랄라랄라~’ 가 시작되면 잠깐의 서운함을 잊고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면서 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이 자신인양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아이들은 옆 친구와 손을 잡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빙글빙글 춤을 춘다.

한적한 산길 따라서 나는 내려갔지

숲 속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노랫소리

새들 노랫 소리에 장단 맞추어서

수풀 새에 시냇물도 졸졸 흐르네

깊고도 넓고도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깊고도 넓고도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천국에서 만난 연주자들이 불러준 노래는 내 안의 노래하는 사람을 깨우고, 마르지 않는 노래의 샘에서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 곳을 떠나기 전에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이름이 아주 긴 천국의 악사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악사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동시에 노래했다.

“사냥꾼과 농부, 성직자와 같아야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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