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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지하 감옥 여행기

 

 이른 새벽 분식집 마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의 분식집, 어제 영업하고 난 것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아직 덜 깨어난 피로를 의지력으로 뿌리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밤새 열 평 공간에서 잠을 잔 기름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청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순서, 똑같은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똑같은 반복으로 몸에 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같은 동선에 따라 기계들을 세척하기 시작했다. 어묵 통 쪽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묵 통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서 거북이를 바라보았다. 거북이는 오래 사는 장수 동물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 거북이는 아쿠아리움이나 책에서 본 것과는 달리 정말 먼 과거에서 온 것 같은 시원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묵 통 한쪽 모서리로 천천히 기어 나온 거북이는 태고의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약간 슬픈 것 같기도 했고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거북이를 향해 두려운 마음으로 한걸음을 떼는 순간, 갑자기 분식집 공간이 겨울이 된 것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유리에 급속도로 성에가 끼기 시작하고 냉장고, 순대기, 튀김기가 차례대로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없는 냉동 창고처럼 변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서 깜깜해졌다. 

     

 천천히 몸이 뜨더니 공중에서 두 바퀴 회전을 하고는 갑자기 발밑의 땅이 꺼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떨어졌다. 아주 깊이 깜깜한 통로를 계속 내려갔고,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정사각형이 계속 겹쳐진 모양이 보였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가 엘리베이터가 멈춘 듯이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수평이동을 한참 했고, 벽을 뚫고 계속 갔다. 다시 멈추었다가 또 한참 내려갔고, 회전 운동을 하듯이 빙그르르 돌았다가 다시 수직 하강했다. 꽤 오랫동안 내려가서 멈춘 곳은 깊은 바닷 속 지하세계라는 직감이 들었다. 큰 돌로 된 성이 있고 그 주변에 고양이 석상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커다랗고 무거워 보이는 철문이 열리고 그 안에 문이 열리고, 열리고……. 여러 개의 문이 차례로 열려서 들어간 곳은 온통 황금으로 번쩍이는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와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이 고대 이집트라고 생각했다. 2차원의 평면적인 모습을 한 사람들이 각 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네모난 관들이 보이는 그 곳은 지하 감옥인 것 같았다. 

 화려하고 웅장한 공간에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커다란 저울이 있고 그 저울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이 올려지고 한쪽에는 깃털이 올려졌다. 저울이 심장이 올려 진 쪽으로 기울어졌다. 괴물이 날뛰는 것으로 보아 망자는 잡혀 먹힐 운명인 것 같았다.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반짝이는 소재의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이 벽을 통과해서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다. 작두 같은 기계에 두 손목과 발목을 싹뚝 싹뚝 자르는 광경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탄 것 처럼 위로 위로 올라가면서 층층마다 사람들이 벌 받는 모습이 움직이는 벽화처럼 보여졌다. 흙으로 된 벽에는 눈, 귀, 입, 손, 발... 육체의 부분들이 상형 문자와 함께 새겨져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는 눈

남의 말에 끌려다니는 귀

폭식하는 입

질투를 말하는 혀

나태함을 가진 발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 손

육체에 대한 심판의 기준은 옳은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 혹은 성실했는지 게을렀는지의 여부 보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는지, 자신의 의지 없이 현실을 따랐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상에서 한 일은 너무나 상세하게 분류되어 하나 하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놀라운 꿈을 기록하기 위해 펜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목이 얼얼했고, 손에 힘이 빠져서 펜이 잡아지지 않았다. 꿈속에서 손목 절단을 당한 죄수가 나 자신인 것 같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한 후에 침착하게 꿈을 적어나갔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강력한 체험을 한 후 삶이 달라진 이야기처럼, 이 꿈은 단지 꿈이 아닌 ‘진짜’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집트의 지하에 떨어져서 손목 절단의 처형을 보게 된 것일까?‘ 

‘그 죄수는 나였을까?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처럼 다른 영혼 통해 자신을 일깨워준 것일까?’

‘태고의 거북이는 왜 나를 찾아왔고, 손목을 절단하는 무시무시한 처형의 장소로 데려갔을까?’

처음에는 아무 것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일단 기억한 것 이 모든 것을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꿈을 꾼 당시에도 매우 중요한 꿈이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 꿈은 두고두고 의미와 해석의 깊이를 더해가며 다시 살아나 삶의 자세를 바로 잡게 했다. 

 죄의 허물이 잘려져 나가고 새로 자라난 것 같은 손의 소중함, 어디로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육체의 기회, 사자의 서 그림에서 살아난 오시리스 법정에서의 처형을 통해 죽음을 경험하고 깨어난 이후의 시간은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 똑같은 아침이 아니라 죄를 씻고 부활한 새아침이었다. 

 꿈에서 본 장면은 언젠가 배웠던 ‘오시리스 신화’였다. 

이집트의 왕이며 신으로서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오시리스 신은 이를 시기한 남동생 세트에게 신체가 열세토막으로 분리되는 죽음을 당한다. 이에 여동생이며 아내인 이시스의 손으로 신체를 연결하여 부활한다.

오시리스는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자 새 생명을 주는 부활의 신이다. 손목 절단 처형이 집행된 황금의 이집트 공간은 오시리스의 법정이었다. 죽은 자의 심장은 저울에 올려져 진실과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과 그 무게를 저울질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소명을 알고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자의 심장은 진리와 정의의 깃털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균형을 이루어 결백이 판정된 자는 부활의 신 오시리스를 만나 축복받은 자들의 땅에 가게 된다. 아침이 되면 태양 신 라(La)의 배를 타고 모든 신들과 함께 빛으로 찬란한 강을 운행한다.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머리는 악어, 앞발과 가슴은 사자, 뒷발과 배 아래는 하마 모양인 괴물, 암무트에게 던져져 잡아먹히게 된다. 


 꿈은 하나의 장면에 모든 상징들을 다 담고 보여주는 큰 그림이 아니다. 주제가 될 만한 큰 스토리가 드러날 때가 있고, 그에 따르는 핵심적인 상징으로서의 이미지가 나올 때도 있다. 같은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고 한참을 지나 그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다. 중요한 메시지가 보여지거나 들려질 때도 있고, 배경음악처럼 들릴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자신의 신화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전혀 관련 없는 듯한 각각의 조각들의 연관성과 성장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새와 원숭이, 고양이와 풍뎅이, 배... 이런 이미지들은 의식하지 않고 의미를 놓쳐버릴 때 벽지에 그려진 의미 없는 무늬처럼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무의식에서 보여지는 상징들은 뿔뿔이 흩어져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다시금 힘을 내고 이미지 하나 하나를 생각하고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을 연결시킬 때, 벽지 속의 무늬 같았던 이미지들은 신화 속의 숭고한 의미로 되살아나 또 다시 한걸음을 내딛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는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자의 서’ 중 ‘심장의 무게달기’ 장면을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바쁜 일과 가운데서 한번 씩 멈추어 서서 사후 심판의 그 섬뜩했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나는 별을 닮은 이 소중한 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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