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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6. 2019

자기존중

 

 3개월 가까이 출판을 목적으로 달려온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극적으로 출간을 하는 길이 열렸다. 우여곡절에 대한 이야기만해도 또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과 현실의 간극이 컷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매일 글을 쓰는 생활 글쓰기로 나름의 글쓰기 근육이 단련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면서 글이 더 써지지가 않는 부작용을 경험했다.
의식적으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느끼는데서 오는 과욕이 손과 뇌의 근육을 경직시켰다고할까. 풀타임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새벽 글쓰기를 할 때는 시간이 더 주어지기만 하면 날아다닐 것 처럼 간절했던 글쓰기가 무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고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타이핑하던 긴박함이 그리워지고, 청소를 하면서 스캐쥴표 뒷면에 떠오르는 에피소드를 휘갈려 적던 시절이 아련해지는 퇴행 현상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경계없는 시공간을 온전히 혼자서 경영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집중적으로 경험했다.
미하엘 엔데가 '끝없는 이야기'에서 한 말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혹독하게 겪어냈다.
 '젊은이여, 그대는 스스로의 참된 소망을 아는가?
모든 소망이 현실로 이뤄진다 할 때 그대는 과연
 그대의 자유를 찬란히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향한 바스티안의 멀고 끝없는 방황은
 곧 그대의 방황일지니'

 처음 마음은 '인생은 도전이고 모험이다. 가능성에 대한 시도가 중요한거다. 
하는데 까지 해보고 안되면 그 까지로 좋은 경험이 되고, 그 힘은 또 다른 힘으로 변형되니까 어떤 도전도 남는 장사다.'
라고 담대하게 시작했지만 너무 작은 일에도 곧잘 실망하고 좌절하는 마음을 너무 자주 알아차리게 되면서, 일의 진행이나 결과 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토록 나약한 정신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유한 직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계기도 되었다.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지만 꿈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다닌다고 생각했던 직장이라는 경계가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자발적이지 않다해도 그 테두리 안에 있음으로해서 지켜졌던 많은 부분들이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온전히 자발적인 꿈을 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전체 프로세스에서 가장 좌절감을 느꼈던 지점은 역시 출간을 위한 원고투고였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서 채택이 되었을 때, 출판사가 비용을 대는 이른바 '기획출판'의 진입장벽은 예상은 했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혔을 때 더 만만치가 않았다. 많은 작가지망생들의 경험담을 읽어보면서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열군데 메일을 쓰면 두세군데 정도에서 형식을 갖춘 정중한 거절 답변이 오는 정도였다.
 '귀하의 소중한 원고를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희 출판 사정과 의도가 맞지 않아 이번 기회에는 출간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나머지는 아예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망생에게는 당연한 현상인데, 머리로는 수없이 확인을 하면서도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이 정도에 위축이 되는 내 마음을 확인하는 자체가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처음엔 일정한 기간 동안 기획출판을 시도해보다가 안되면 자비출판이나 독립출판 등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한번 시도한 것에 대한 결과를 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투고에서 좌절된 마음이 어느새 힘을 잃어 굳이 자비출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즈음, 한 출판사에서 반반 부담의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부터 그런 제안이 있었다면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반반도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여자가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공간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사소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든 것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다잡아가며 하나 하나 분별해나갔다.
무엇보다 나의 고집으로 '끝까지 해내고 말리라!'는 태도를 접고 하느님께 묻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느님, 이까지는 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될까요?'
당장 답변이 없을 때, 마음은 너무 쉽게 좌절한다.
실망과 좌절은 의심의 다른 이름이다.
좋으신 하느님께서 최고의 것을 준비하신다고, 다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나는 잠깐의 숙성의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뜸도 들지 않은 밥솥 두껑을 자꾸 열어보면서 실망하고 분노한다.

 포기나 실패라는 단어는 하느님 나라의 언어가 아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다림과 침묵을 모르는 자들의 어둠의 단어일 뿐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잠정적 보류', 영어로는 'pause' 정도로 설정했다.
결정의 중심에는 '자기 존중'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책을 낸다고 몇몇 지인에게 떠벌린 것과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다는데 촛점을 맞추어 서두르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형태로 한다면 해놓고도 불편한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변명같은 말을 할 것 같은 일은 안하는게 맞다.' 는 생각에 기대어 일단 안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 홀가분함 속에서  홀연히 '브런치'가 떠올랐다.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으로 2015년도에 개설되었고, 나는 2016년에 작가 지원을 해서 그 곳 기준의 심사를 통과해서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바쁜 일상 속에서 그 곳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3년이 지나서 들어가본 작가의 방에는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절, 룸메이드로 일할 때, 새벽에 쓴 스물세편의 글이 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것이, '3주 글쓰기 근육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매일 새벽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쓴 글이었는데, 너무 피곤하고 잠에 취해서 스물 한 편이면 3주가 되는데, 날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스물 한 편이 넘는 스물 세 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글을 써놓고 까맣게 잊고 있는 동안, 구독 작가도 열 세명이나 생겼고, 조회수가 1,000회를 넘어있었다.
더 안타깝고 놀라운 사실은 브런치 플랫폼이 글 서른 편만 올리면 무료로 출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거의 한 달의 시간 동안 수십 군데의 출판사 문을 두드리면서 번번히 거절을 당하고, 멈춰서 숨을 고르다가 돌아본 브런치에 투고한 원고 한편씩을 올렸다. 서른편이 올라가지마자 자동 설정된 메시지 '출판할 수 있습니다.'가 떳다.
너무 쉽게 진행이 되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가 부크크 출판사를 통해서 무료 출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POD (Publish on Demand)라는 형식인데, 수요자에 따른 인쇄 방식의 출판으로 재고가 없는 점, 실리콘벨리에서는 이미 널리 보급되어있는 미래형 출판 방식이었다.
출판 비용이나 재고에 대한 부담이 없는, 그야말로 누구나 자기 컨텐츠만 있으면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얼마전에 양자의 세계 미술공모전을 하면서도 주최측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듯이 이번에도 브런치와 부크크 측에 진심어린 감사가 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타인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모든 일 속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을 묻을 때 나의 하느님은 센스있는 표징들을 제시해주신다. 
한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갰다는 고집으로 달려들었다면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 길을 묻는 방식으로, 하느님 뜻이 아니라면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응답이 없을 때는 내려놓는 겸손한 태도로, 침묵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카이로스에 대한 감각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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