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Nov 16. 2019

김애영 튀김 연구소

 

 분식집에서 일할 때 김밥 이모였던 내 옆자리에 서서 일했던 튀김 이모였던 애영언니에 관한 이야기다.

 애영언니는 씩씩했다. 처음에 내가 입사했을 때 그녀가 분식집 사모인 줄 알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했다. 매일 유튜브에 나오는 새로운 튀김 레시피를 알아내서 자비를 들여 재료를 사 와서는 덜 바쁜 시간에 연구에 몰두했다. 언니는 오레오 튀김, 우유 튀김 등 새롭고 신기한 아이템에 도전했고 실패가 더 많았지만 꿋꿋했다. 그 언니 덕분에 반복적인 노동이 즐거웠다. 실패로 풀이 죽어있는 언니에게 '역사상 위대한 발명품은 실패가 가장 많을 때 탄생했다. 실패가 많다는 것은 시도와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는 식의 격려를 해주면 언니는 또다시 특유의 밝음을 회복하면서 내일은 여기에 뭘 더 첨가해 보겠다는 식의 의지를 다지곤 했다. 


 애영언니는 대박 아이템이 나와서 장사가 잘되기를 꿈꾸었다. 성과급이 아닌 정해진 월급쟁이임에도 회사 입장에 서서 늘 물건을 아껴주어서 같은 직원인 입장에서 언니의 눈치가 봐질 정도로 애사심이 강했다. 늘 파워풀했고 자기 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했다. 때때로 사장에게 직원들의 애로 사항을 말하기도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더 많은 이모들도 틈만 나면 애영언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언니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여기 사람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처럼'. '가족처럼'이라는 말은 비단 그 녀뿐만이 아니라 이곳 사장이나 찬모 이모 등 나를 제외한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였다. 그 용어가 활용되는 예를 관찰해 보면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데 상대가 알아주지 않을 때 주로 사용하곤 했다.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해놓고 이럴 수 가있냐'라든가, '나는 '가족처럼' 생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라든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곧잘 등장하곤 했다. '가족처럼' 생각해서 잘되고 있다는 식의 긍정적인 문장에서는 단 한 번도 사용된 걸 본 적이 없다. 그렇다. '가족처럼', '가족처럼'이 문제다. 가족이 아닌데 가족처럼 지내려 하고, 지내려고 노력하는 그 감정, 그 '가짜 감정'이 문제였다. 이 상황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가족처럼 지내야 되죠?"


 사실 남이다. 남이어야 한다. 반짝반짝하고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정확하게 일하는 협력 관계의 남이어야 한다. '가족처럼'이라는 익숙하고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가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모호한 경계의 틈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혹사하고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가치에 얽매여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곤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월급날 정확하게 임금을 못 받아도 곧바로 말하면 서운하게 생각할까 봐 속을 끓이면서 며칠씩 기다리는 이모도 있었고, 바쁜 시간에 칼 같이 퇴근해 버리면 싫어할까 봐 힘들고 하기  싫은 대도 일부러 10분 정도 늦게 가는 식이었다. 그러고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퇴장했다.    


 회사 측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에 도움을 주는, 즉 '눈치 보는 사람', '힘들어도 늘 밝게 웃고, 남을 배려하고, 불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양심적인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애영언니는 극도의 흥분을 하면서 그들이 '양심적'이라면 우리는 '양심적'이지 않다는 말이냐며 며칠에 걸쳐 흥분하기도 했었다.


 애영언니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했던 이모들과 언니들, 또 바쁜 날 한 번씩 일하러 왔던 사장 '아는 사람들'은 서로 위해주는 것 같으면서 서로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사장은 그런 이모들의 심리를 알고 이용하는 듯했다. 칭찬과 비난을 적절한 타이밍에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한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난하게 되면 당사자는 감격에 겨워 더 열심히 하게 되기도 하고 칭찬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분발하라는 뜻 인듯했다. 비난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적인 평가를 들은 사람은 사장이 사라지고 나면 욕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을 그토록 비난했던 그곳에서 나가지 않고, 마치 영원히 그곳에 있으려는 듯이. 또 한 사람이 비난을 받을 때 옆에서 지켜보았던 다른 사람들도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도록 긴장하기도 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일상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을 돌아보고 이해한다면, 이토록 무자비하게 자존감이 짓밟히면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애영언니의 튀김은 맛있었다. 그녀의 오징어 튀김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본 오징어 튀김 중에 최고였으며, 이 동네에서 제일 잘되는 분식점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큰 자산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보면서 대박 난 가게를 찾고 다른 사람의 신화에 열광했으며 쉬는 날이면 소문난 맛집 탐방을 갔고, 그런 대박 가게에 가서 더 배울 생각을 했다. ‘언니 튀김은 대단하다. 언니가 사장하라’고 헤아릴 수 없이 말해주어도, 창업할 자금도 있고, 실력도 있고, 성격도 되고, 체력도 되고, 주어진 여건은 충분한데도 스스로 늘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뜸한 맑은 아침, 언니가 문득 고백하듯이 말을 꺼냈다. 자신도 자신이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 가게를 하고 싶긴 한데 두렵다고 말이다. 예전에 큰돈을 잃어서 남편한테 눈치 보고 사는 것이 새로운 투자를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성공 신화에 나온 사람들은 그럴만하다고 칭송했고, 자신의 노력은 쉽게 폐기처분했다.

 애영언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영원히 두 힘 사이에서 갈등하는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땅에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몸집이 커진 스스로의 존재를 던져서 날아가든지 아니면 좁은 철창에 갇혀서 늘 넓은 세상을 동경하면서 살든지 말이다. 그래서 이루지 못한 꿈은 귀신이다. 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 찬모 이모는 차라리 평화로웠다. 자기는 늙어서 뭘 시도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며 이런 불황 때는 월급쟁이가 최고라고 했고, 애영언니는 나와 이야기할 땐 당장이라도 세상을 향해 날아갈 듯하다가 찬모 이모 말을 들을 땐 금방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저앉았다.        


 애영언니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은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점점 더 깊이 낮은 자존감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끔 큰 소리를 치거나 비싼 옷을 사 입는 것으로 자존감을 높이려는 것 같았다. 손님 중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흥분하는 에너지조차 아까운 경우가 하루에도 수차례 있었다. 그런 손님이 가고 나서 그 손님 욕을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장사 집에서나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서의 일상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지만 애영언니의 경우 훨씬 더 흥분하고 불쾌해했다. 그런 손님이 가고 나면 '내가 이런 데서 일한다고 무시하나?'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다. 언니의 그런 태도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비를 맞고 '왜 나한테만 비가 내리냐.'라고 투덜대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애영언니는 손님의 반응에 민감했다. 한마디 칭찬에 아이처럼 신나 했고, 한마디 비난에 흥분했다. 언니가 그토록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힘의 근원으로 내려가 보면 칭찬과 비난의 주체와 만나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이 칭찬이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원래 있었던 나의 가치가 더 상승되는 것도 하락하는 것도 아닌데 언니는 그 대수롭지 않은 칭찬 한 마디, 비난 한 마디에 큰 폭으로 진동하곤 했다. 한 마디로 그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그 활발한 움직임의 동력은 인정받지 못한 내면 아이의 최선이었다.

 애영언니는 다른 사람들 보다 적은 시간 일을 했다. 더 이상은 못한다고 했고 최선을 다해 최대의 에너지를 쏟고 갔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그토록 매일 나가떨어질 만큼 지치지 않는다. 솟아나는 힘으로, 기쁨으로 일해야 한다.        


 세상의 애영언니들이 오늘도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일터로 나갈 것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고갈되도록.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본다면, 내 마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서 그 소중한 에너지를 창의적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짜 감정'이 난무하는 거짓 세상에서 병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영언니가 헤어질 때 인사말로 한 말이 있다.

 “그래도 자기가 제일 잘 도와주고 제일 좋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구슬땀을 흘리며 튀김을 연구하던 언니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애영 튀김 연구소'를 차리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징어 튀김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언니, 나를 사랑하고, 가만히 존재하고, 질서 있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이전 04화 아침은 바흐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