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Nov 16. 2019

아침은 바흐처럼

 

 내가 일했던 분식집은 연중무휴로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노동 강도가 높은 곳이었다.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 휴무를 했고, 근무 시간도 개인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교대로 빠지는 식이었다. 나는 아침 오픈 조였고 마감 1시간 전에 퇴근을 했다.

 오픈해서 그날 영업을 준비하는 아침 1시간 동안 나와 사장인 남성, 이렇게 두 사람이 일을 했다. 1시간이 지난 후에 한 명이 더 출근해서 3인이, 또 한 시간 후에 한 명이 더 투입되어서 4인 체제가 되었다. 이렇게 4명이 5시간 일을 하다가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 때 또 한 명이 투입되고 점점 일의 강도와 속도가 높아지면서 가장 바쁜 전쟁을 치르는 식이었다.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아침에 한 명씩 한 명씩 투입되어 점점 속도를 올렸던 것처럼 한 명씩 한 명씩 빠져나갔다. 빠져나갈 땐 더 짧은 시간에 와르르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이 구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재미있는 것이 음악적인 구조, 삶의 리듬을 너무나 적절하게 배치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이 음악적인 구조를 공부해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에 적용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같은 구조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아침, 점심, 저녁 사람들이 먹고, 활동하는 시간대에 따른 유동 인구의 수요가 만들어낸 리듬이 자연의 리듬에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적인 리듬,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 중첩되어 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5개월간 아침 1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둘이 있으면서 오픈 준비를 했던 그 남자, A에 대한 관찰기이다.

 한마디로 그는 불안 덩어리였다.

 큰 키와 큰 체구는 100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였다. 주로 내가 더 먼저 와있는 식이었는데, 오자마자 셔터 문을 올리는 게 0순위의 일이었다. A가 가끔 먼저 와 있을 때 A는 셔터 문을 올리지 않고 다른 준비를 먼저 하고 있었다. 처음에 셔터를 올리지 않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단순히 잊어버린 줄 알고 내가 셔터를 올리면 A는 

 “누나, 좀 더 있다가 올립시다.”

 하면서 셔터를 올리고 싶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놀랍고도 안타까웠던 사연은 셔터 문을 올리면 햇살이 들어오면서 하루가 또 시작된다는 생각에 셔터 문을 여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나는 A가 두려워하든 말든 셔터 문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 두려움은 지켜주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깨부수고 직면해야 할 병적인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불안에 대한 A의 표현은 모든 곳에 있었다. 틈만 나면 그 바쁜 와중에도 TV를 보려고 하는 것도 현실도피였고,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거나 뭐든 남아있는 음식을 먹어치우는 습관도 불안의 징후였다.       

 

 문제는 A만이 아니었다. 오픈을 도와주고 다른 지점으로 가는 직원 2명이 있었는데 그들도 표현만 달랐지 심리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세수도 안 한듯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중 한 명인 50대 여성은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여성은 심지어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의 지역장이었다.) 그녀는 내가 매일 아침마다 상쾌해 보인다며 쉬는 날 뭘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다른 아침 도우미 한 명은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이 사람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부러움의 요체는 나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데 자기는 ‘걸리는 게 너무 많다’고 말이다. 내가 걸릴 것이 없다고 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나보다 몇 배는 넘게 벌었고, 외제차에, 아름다운 아내에,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기에,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좋은 아파트에, 불황에도 잘되는 분식집을 세 개가 소유한 소위 '서민갑부'였다.   

      

 나 역시 처음부터 그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습관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별 다를 것이 없이 힘든 일을 두려워하고 편한 일과 쉼을 추구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하고 내 선택에 부자유하게 끌려 다니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의 존엄을 해치는 일인지 알아가면서 조금씩 나쁜 습관의 자리에 좋은 습관을 대체하는 것으로 그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든 일을 대하는 태도가 관건이었다. 자발적인 행위, 존재가 살아있는 행위가 아니고서는 어떤 성실도, 신념도 온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 내가 원하는 높은 가치에 부합되는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 삶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일할 때,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쉼에 집착하지 않는 건강한 형태의 노동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내가 왕년에 무엇이었든, 앞으로 무엇이 되고자 하든 간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고,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궁금해하는 나의 상쾌함의 비결, ‘기쁨의 방식’이다.        


 바흐는 '아침에 일어나면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는 멋진 말을 했다. 자고로 아침은 그런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들의 아침 불안은 압력이 높은 현실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상적인 불안도 있지만 정상적 불안을 넘어서는 신경증적 불안의 요소가 많았다. 화장실 가는 문제,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 행동, 시간을 지키는 문제 모든 면에 있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방식으로 비 공식화된 언어를 사용했다.

 오픈 조 도우미들이 가고 나서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면 주문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날의 첫 전화벨이 울리면 A는 예외 없이 '이건 아니다.'라는 표현을 했다.

 A는 오픈부터 마감까지 14시간을 일하면서 배달과 이곳의 특화 상품인 만두 기술까지 가지고 있는, 한마디로 이곳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고 따라서 버는 돈도 제일 많았다. 그런 A는 배달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마디로 가기 싫다는 표현이었다. 특히, 바쁜 주말이나 비가 오는 날, '이건 아니다.'는 표현을 정말 많이 했다.

 자신은 무심코 하는 말이었지만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이 일하면서 자꾸 힘들어하는 A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불안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을 배려하고 친절하고 재미있고 좋아 보이지만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 불안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주위 사람들 까지 전염시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불안과 피로를 느끼게 된다. 배고픔 까지도. 따라서 불안으로 인한 비만이 전염되고 비만으로 야기되는 모든 병이 전염되고 유전된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사람이 많은 사회란 이와 반대일 것이다. 상상해 보자. 건강이 전염된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A와 지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과거의 내 모습도 많이 보였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불안을 행동화하는 A가 싫기도 했지만 그런 A가 안 됐기도 했다. A는 자기의 역량을 몰랐다. 어디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움직여지니까 이렇게 살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하고, 잘하고, 그 결과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고, 욕망을 누리고…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그러는 동안 억압되고 변형되는 몸과 마음의 무질서가 곧 병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무질서는 의미를 상실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살기 운동본부 지역장이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질서는 의미를 생산해 내고 재미를 추구하게 한다. 무질서 속에서 억지로 의미를 짜내면 고갈되고 병들어간다.         


 그곳에 있는 동안 분식집 DJ였던 나는 아침마다 바흐를 틀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좀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트로트로 바꾸자고 하기도 했고, 안 어울린다고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트니까 '누나는 원래 이런 걸 좋아한다.'는 둥, '음악이 있으니까 좋다.'는 둥, '분식점에 클래식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둥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바뀌었다. 

 내가 음악을 트는 시점은 보통 두 차례였다.

 사람들이 피곤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침과 우리가 말했던바 소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가서 몹시 피로감을 느끼는 늦은 오후에 주로 음악을 틀었다.

 '힘들지만 다시 힘을 내서 잘해보자.'는 응원의 메시지였고, 음악은 최고의 비타민이었다.

 나는 쇼생크 탈출의 엔디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틀었던 마음을 떠올리며 바흐를 틀었다.

 엔디가 다른 동료 죄수들에게 지상의 고단함에 갇혀 있지만 천상적인 퀄리티의 음악의 힘을 부여해주고 싶었듯이 분식집에서 현실의 고단함과 불안에 지쳐있는 동료들에게 아침에 눈을 뜨면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던 바흐의 상쾌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은 대단했다. 생활고에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세상에서 소중한 젊음을 불태워 많은 시간 노동으로 삶을 유지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살았다. 그 대단함이 의미를 잃고 방황하지 않고 내적으로도 더 깊고 충만한 행복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그들, 우리가 조금 더 크고 높은 프레임을 가지기를 바란다. 크고 높은 프레임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뜻한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 말이다.

 아무리 피하고 숨고 미룬다 해도 어차피 시작될 하루, 셔터를 내리고 어둠 속에서 불안해하면서 다른 사람이 올리는 셔터에 의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에 수치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살아있는 내가 셔터를 힘껏 올릴 수 있는 힘찬 팔에 감사하고, 나의 공간에 햇살을 초대하고 음악에 생명을 부여하고 내가, 내가 주체가 되어 사는 거다.

 '이건 아니다.' 하면서 억지로 밀려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거다!' 하면서 내가 주도해서 여는 상쾌한 아침이어야 한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때 행복해지는 것처럼.

 착하고 인물도 좋고 기술도 뛰어난 A, 아름다운 아내와 어디서든 사랑받을 귀여운 아이가 있는 A가 아침마다 힘차게 셔터를 올리고 춤을 출 듯이 흥겨운 움직임으로 그 맛있는 만두를 빚으면 좋겠다.



이전 03화 천사와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