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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May 31. 2021

매일 조금씩 쓰는 독서 노트

버트런드 러셀 『과학이란 무엇인가』 ➁

2.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첫 번째 전투

-코페르니쿠스 혁명  

        

 

 러셀은 신학과 과학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가장 악명 높은 전투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말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인지 태양인지를 두고 벌어진 천문학적인 논쟁 즉,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론(천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을 16세기, 지구는 정지해 있기는커녕 이중 운동을 한다. 즉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사건이다.

 러셀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그 자체로는 아직 많이 불완전했지만 더 큰 발전을 만들어낸 상상력의 결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지구 중심 우주론이 지배적일 때 인간은 태양과 달, 행성과 항성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며 우리 자신이 창조주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가 회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별들은 우리 지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세상을 설득했을 때, 우리가 우주의 목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때,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는 자존심은 우리가 우주의 목적이 아니라면 목적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든가, 신학자들은 천문학에 적대감을 느끼고, 이단으로 낙인을 찍는 등의 혼란이 생겨났다.

 한마디로 획기적인 코페르니쿠스 체계로 인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상상력들이 다양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러셀은 천문학에서 그다음으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은 이로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를 꼽는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그리스인들의 편견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케플러는 이러한 편견에 감히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었다. 그리스인들의 미적 감각에서 비롯된 선입관은 도덕적 혹은 신학적 선입관만큼이나 사람들을 호도했는데, 이 때문에 케플러가 중요한 혁신가로 평가된다. 또한 케플러의 법칙들을 토대로 뉴턴이 중력 법칙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케플러는 지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에 호감을 갖게 된 데는 합리적인 동기 못지않게 태양 숭배 사상도 큰 몫을 했다.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는 힘든 과정에서 그를 이끈 것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다섯 개의 행성과 다섯 개의 정다면체 사이에 반드시 모종의 연관 관계가 있을 거라는 기상천외한 가설이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참이며 중요하다고 밝혀진 이론들이 발견자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올바른 가설을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단계에 돌입하는 것을 쉽게 해주는 비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획을 짜는 등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어느 것 하나 유용하지 않은 것은 없다. 만약 그 방법을 확고하게 믿기만 한다면, 탐구자는 아무리 많은 가능성이 폐기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시험해나갈 것이다.

 ’케플러 역시 그랬다. 그의 최종적인 성공, 특히 세 번째 법칙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심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참을성은 정다면체와 연관된 무언가가 반드시 어떤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고, 행성들은 회전 운동을 통해 태양의 영혼만이 들을 수 있는 ’천체의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신비스러운 믿음에 시인한 것이었다. 그는 태양이 신성한 영혼을 가진 물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p45-46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가장 큰 장점은 실험적. 기계적 기술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수학 공식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정역학, 즉 평형 법칙을 연구했다. 그러나 운동 법칙, 특히 속도가 변화하는 운동 법칙은 그들뿐만 아니라 16세기 사람들조차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운동하는 물체를 혼자 내버려두면 운동을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갈릴레오는 반대로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직선 운동을 계속한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물체의 운동이 아니라 방향이든 속도든 혹은 그 둘 다든 운동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 조건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봤다. 운동의 속도나 방향의 변화를 ‘가속도’라고 한다. 따라서 물체가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힘이 가해졌음을 보여주는 요소는 속도가 아니라 가속도다. 이러한 원리를 발견한 것은 역학에서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첫 단계였다. ... 그는 낙하하는 물체에 관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데 이 원리를 적용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다른 교수들의 눈에는 그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는 행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악의적인 행위들 탓에 그는 진리는 실험이 나이라 책을 통해 추구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미움을 샀다. 

 그의 시대 이전에도 관찰에 의존하지 않는 연역적인 순수 수학이 있었고, 특히 연금술과 관련해 전적으로 경험적인 실험이 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수학적 법칙에 도달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제대로 된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수학은 ‘선험적’ 지식이 전혀 없는 분야에 관한 자료에도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조금만 실험해봐도 금세 거짓임이 밝혀질 주장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얼마나 쉽게 반복적으로 이어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매우 극적이고 반박 불가능한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갈릴레오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0년 동안 어느 누구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낙하 법칙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져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언명들을 검증해보는 일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갈릴레오의 시대만 해도 천재성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이후 망원경은 갈릴레오를 더 큰 위험으로 몰고 갔다. 한 네델란드인이 그런 도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을 접한 갈릴레오는 자기식으로 망원경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천문학적 사실들을 많이 발견해냈고 신학자들을 소름끼치게 할 사실들이 잇달아 드러났다. 신학자들은 갈릴레오의 불경스러운 호기심에 대해 노발대발했다. 

교회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참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이 담긴 책은 1835년까지 금지 목록에 속해 있었다.     


 러셀은 ‘2장.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첫 번째 전투’에서 천문학계의 큰 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과학의 발전은 조악하고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되어 불경스러운 호기심이라는 오명으로 두고두고 미움을 받는 가운데 믿을 수 없는 인내심으로 만들어낸 개인들의 노력, 인류의 유산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훗날 발전하게 될 학문들 역시 무지의 시대에서 물려받은 교리들을 상대로 자기들만의 또 다른 싸움을 치러야 했다.’는 구절을 끝으로 문명의 발전은 무지를 상대로 치열하고 끝없이 싸움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러셀이 말하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와 같은 큰 별들에 대해 읽으면서 일상의 자질구레한 상념에 시달리는 것이 모두 ‘무지’에서 오는 허상임을 다시금 깨닫고, 변화와 발전을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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