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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Jan 02. 2023

나무늘보를 닮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2023 새해를 시작하면서

어찌됐든 새로운 한 해를 선물받았다.

삶에 대한 사랑을 담아 스스로에게 선물을 했다.

큰 마음 먹고 스터디카페 200시간 정액권과 휘트니스 1년 회원권을 끊었다.

아침 6시 스터디카페 공부와 저녁 6시 휘트니스 운동, 하루 두번의 6시를 실천해볼 요량으로.

약속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면 뭔가 달라질 것이고, 그 변화의 동력으로 다음으로 건너가리라는 야심을 품고.


작년 한해는 과학책만 읽겠다고 선언했고, 실로 큰 수확을 얻었다.

여력이 안되어 독서요약 글을 쓰지 못했고,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한줄 요약 정도의 메모에 그쳤지만 미미한 시작의 창대한 끝은 한 단어로 요약되었다. '몸'이다. 건강, 운동, 뇌, 잠, 음식, 공부, 읽기, 생각... 많은 단어들로 변용될 수 있지만 여하튼 균형잡히고 리드미컬한 건강한 몸을 만들지 않고서는 원하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 과학책 읽기의 결론이다.


올해도 과학은 내 독서 카테고리의 1순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생긴 약간의 여유와 자신감의 틈새로 다시금 문학이 들어왔다. 새해 첫 책으로 앵거스 퓰래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와 얀 마텔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동시에 읽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읽다가 오래 전에 읽고 참 좋았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서문에서 밑줄 그은 부분들을 옮겨적는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주변이 조용해야 한다. 마음도 차분해진다. 삶은 우리 인식의 언저리에 고요한 순간이 찾아와 "나, 여기에 있는데, 너무슨 생각을 하니?"라고 속삭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분주해지고 고요함은 사라진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착각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일수록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정반대이다.

삶은 조용한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는건 우리 뿐이다.

조용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시절이다.

책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해준다.


다음은 수년간에 걸쳐 여러 차례 필사한 대목이다. 읽을 때 마다 너무나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심장에서 솟구친 뜨거운 피가 오른 팔로 흘러내려 손 끝에서 펜을 들게하였으므로 한번 더 베껴쓸 수 밖에 없었다.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푸른 정글 한가운데,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메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귀가 먹먹해지는 폭우에도 나무늘보는 개의치 않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물에 만물은 다시 소생하고 동물들도 폭우를 고맙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나무늘보는 책을 가슴에 품고 빗물에 젖지 않도록 보호한다. 나무늘보는 한 단락을 겨우 읽었다.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그 단락을 다시 읽는다. 나무늘보는 그 단락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떠올린다. 나무늘보는 그 이미지를 되새긴다. 아름다운 이미지다. 나무늘보는 주변을 둘러본다. 나무늘보는 아주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정글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빗줄기 사이로 다른 나뭇가지들에 맺힌 밝은 점들이 보인다. 예쁜 새들이다. 아래에서는 화난 재규어가 앞만 쳐다보며 맹렬하게 달리지만, 나무늘보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자족의 한숨을 내쉬며 나무늘보는 온 정글이 자신과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한다. 폭우는 여전히 계속된다. 나무늘보는 느긋하게 잠든다.'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책을 가슴에 품고 빗물에 젖지 않도록 보호하며 천천히 한 단락을 읽고 마음에 들어하고 다시 읽고 이미지를 마음에 떠 올리는 나무늘보의 마지막이 마음에 든다. '자족의 한숨을 내쉬며 느긋하게 잠든다'는.

앞만보고 달리는 화난 재규어에 가까웠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나무늘보를 닮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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