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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Mar 08. 2023

프루스트 효과

-새롭게 피어나는 기억에 대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읽었다. 프루스트 특유의 만연체가 읽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고 시작한 일이라서 읽기 전부터 약간의 부담이 있었는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편안한 물살의 흐름을 탄듯이 익숙하게 여겨졌다. 다듬어지지 않은 만연체를 대가의 만연체와 비교해서는 안되겠지만 나의 지리멸렬한 만연체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있기도 하다. 더 줄이고 줄여서 꼭 써야만 할 주제만 요약해서, 단문으로 써야한다는, 글에 대한 지침을 읽고 또 읽어서 스타일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마들렌을 먹으면서 콩브레 마을이 이어지는(프루스트의 표현으로 '찻잔 속에서 솟아나는')장면이라든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냄새에 대한 섬세한 묘사 등등은 필사해가면서 나만의 읽기의 즐거움을 찾아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동안, 뭔가 무너지고 일어나고 변화할 내적 동요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미 시작된 것은,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지침으로 부터 얻는 혜택에 의존하는 댓가로 잃어버린 나의 많은 좋은 것들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콩브레 마을이 되살아나듯이 피어올랐다.


오랫동안 갈망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한데 대한 선물일까? 프루스트식 의식의 흐름이 이런건가 싶은 방식으로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꿈도 아닌 것이 30년 전 처음 했던 작업실의 내부 구조가 되살아났다. 대학교 때, 학교와 집 사이 즈음에 있는 아파트 상가 2층에 처음 얻은 작업실이 있었다는 것만 흐릿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봄이 되면 창문으로 보였던 꽃과 창가에 놓았던 회색 소파와 그 옆에 놓았던 책상도 이어졌다. 당시 화실 선생님께서 쓰시던 작업실에 놀러갔다가 선생님이 그만 두신다고해서 선생님한테 물려받았다는 사실과 그 좋은 공간을 단돈 500만원에 인수했다는 사실도 또렷이 생각났다. 1층에는 수퍼마켓과 밥집이 있었는데, 운 좋게도 그 밥집의 음식들이 전부 무척 맛있었다. 보통의 김밥 집과는 차별화된 노란 단무지 대신 들어가는 분홍색 절임 무도 생각이 나고, 같이 나오는 된장국에 든 두부가 아주 작은 입방체로 깍뚝썰기되어 있는 것이 깔끔해서 나중에 나도 이렇게 썬 두부를 넣은 된장국을 끓여 먹겠다고 했던 결심도 떠올랐다.(그 이후로 그 된장국을 잊어버린 까닭으로 지금까지 늘 구태의연한 크기로 썰어넣은 된장국을 끓여오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 떠 오르고 이어질 것 같은 이미지 기억으로 희망이 샘솟는 아침이다. 더 생각난다고 돈이 나오고 밥이 되는 건 아니지만 신경회로가 이어지고 뇌세포가 살아나서 형체가 이어지고 색감이 선명하게 떠 오르는 순간은 죽은듯한 나뭇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봄 꽃 처럼 피어나는 생명의 찰나라고 여겨지니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주 간격으로 작업하는 영상을 이번에는 평소보다 이삼일 일찍 마감하여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그럴 때면 검색해보는 장소 중 하나인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다카시에서 시작된 정보 검색은 프란시스 베이컨에서 들뢰즈로 들뢰즈에서 베르그손으로 베르그손에서 다시 프루스트로 이어졌다. 시작의 단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돌아온 것이다.


하루가 온전히 비워진 날을 맞이할 때면 예전에 비해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신중해지고, 오늘을 맞이하면서 보낸 어젯밤도 그랬다. 굳이 또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전시회를 보러 갈 것인가, 모처럼의 온전히 비워진 하루를 조용히 책읽기에 할애할 것인가, 갈등을 하다가 꿈에 맡기고 잠 들었던 터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선명하게 되살아났던 30년 전 첫 작업실의 장면은 오늘 아침의 발걸음을 전시회로 향하게 방향지웠다. 어디로가든 내가 가는 길이고, 그것은 결국 하나가 될 것임을 믿게 된 것, 나의 모든 선택을 조금은 더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아침을 먹고, 텀블러에 커피를 내리고, 무라카미 다카시의 귀여움과 기괴함과 덧없음의 세계에 다녀올 것이다. 그리고 또 글을 쓸 것이고, 다음 영상을 기획할 것이고, 그림을 그릴 것이고, 꿈을 꿀 것이고, 여전히 미래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흔적 만큼의 차이가 이어진 반복, 노력했다는 느낌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생성의 기쁨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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