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네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니?

나는 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by 오렌


인생의 버스는 종종 엉뚱한 곳에 하차해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중년의 나이에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내 의지가 아닌 채 갑작스럽게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인생이라는 집에서 큰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리자 다른 모든 요소들도 연쇄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려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뜨거운 태양 아래, 거친 비바람 속에서 걸을 만치 걸어서 도착한 곳에서 어리둥절하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던 내 생각 때문일까? 그때그때마다 최선이었고 노력에 대한 적절한 수확도 있었지만, 전력을 다해서 해왔던 일들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던가? 인생의 한복판에 서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질문했다.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더 잘하는 일, 타인이 권하는 일, 전망이 좋다고 생각한 일,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그게 뭐 문제인가?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고 하더니 정신적인 죽음을 앞두고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기억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솟구쳐 올랐다.


네 뜻하는 바를 행하라.
젊은이여, 그대는 스스로의 참된 소망을 아는가?
모든 소망이 현실로 이뤄진다 할 때
그대는 과연 그대의 자유를 찬란히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향한 바스티안의 멀고 끝없는 방황은 곧 그대의 방황일지니.

사랑하는 책,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내 꿈을 향해서 사랑을 향해서 멀고 끝없는 방황을 했나? 바람 좋고 물 맑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실 내가 원했던 곳은 여기야.’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았나? 나는 스스로의 참된 소망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해냈을 때, 두려웠다. 이제 와서 참된 소망을 찾는다 해도 그것이 만만치 않는 길임을 깊은 곳에서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면 골방에 숨어들어 가장 익숙해져 있기에 내가 가진 능력 중에 제일 많이 계발이 된 영역인 그림을 그렸다. 온몸에 힘을 빼고 물살에 몸을 맡기고 떠다니듯이 붓을 따라가고 있었다. 블랙에서 나온 짙은 인디고로 바다를 그리다가 화면 가운데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고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바닷속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거대한 흰 수염고래처럼 낚아 올려졌다. 내가 다니던 입시미술학원이었고, 성희가 보였다. 성희는 홍익대학교 서양학과를 목표로 한다고 분명하게 알려져 있었고, 선생님들과 선배들, 동기들 모두가 인정하는 우리 화실 최고의 실력자였다.


나를 비롯한 보통의 입시생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가 있고 없고를 떠나 출제 빈도가 높은 석고상 그리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는 아그리파나 줄리앙, 비너스 같은 소형 석고상을 거쳐 카라칼라, 아리아스, 아폴로에 이르는 중대형 석고상을 그리면서 입시에 대비했다면 성희는 달랐다. 기출문제나 출제 빈도와 상관없는, 보통의 아이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그러기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름도 잘 모르는 석고상을, 그것도 선생님이나 남자 선배들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혼자서 씩씩하게 끄집어내서 그리곤 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은 형태나 밀도에서 좀 더 낫고 부족한 차이가 있을 뿐 종이 위에 연필로 그려진 그림의 느낌이라면 성희가 그린 미켈란젤로나 호머, 세네카 같은 인물들은 마치 안개가 걷히면서 종이 안에 있던 사람이 드러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흰 종이에서 뿌연 아우라를 뿜으며 위용을 드러내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경이와 시기가 섞인 눈길로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성희는 때때로 불쑥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했다.

“고흐 해바라기를 보는데 눈물이 흐르는 거야. 고흐는 어떻게 그런 살아있는 듯한 화풍을 완성시킬 수 있었을까?”

“……”

또는 이런 식이었다.

“고양이, 개, 앵무새, 독수리, 사슴, 거미원숭이, 다람쥐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동물이잖아.”

“프리다칼로가 키웠던 반려동물이야.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키웠대. 그림에도 많이 그렸고, 너무 대단하지 않아?”

입시에 나오는 것만 배우기에도 벅찬 아이들이 프리다칼로가 누군지 알 리가 없었다.

“프리다칼로가 누군데?”

물으면,

“야, 실망이다.”

하면서 고독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걷곤 했다. 그렇게 성희는 혼잣말처럼 하늘을 오를듯한 경탄과 땅속 깊이 꺼질듯한 절망의 외마디 감탄사를 자폐적으로 내뱉었다.


성희의 그런 모습에 어떤 아이들은 혼자 잘난척한다느니 밥맛이라느니 했지만, 나는 성희가 그런 말을 한 날은 성희가 옆에 있어도 갑자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고, 일종의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비싼 수업료 내고 화실 다니면서 그런 정신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건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높은 곳을 동경하면서도 그곳에 닿지 못하는 무력감이 어느덧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의 동경은 시기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점차 빛을 잃어 갔다. 그 사악한 그림자의 이름은 '내가 한다고 되겠어?' 혹은 ‘이제 와서 해봤자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너무, 너무나 서둘러 생각을 정리해 버리고는 나보다 못 그리는 찌질이들과 어울려서 화실 근처 골목을 쏘다니며 튀김 가루가 잔뜩 들어간 쫄우동이나 다리가 30cm나 되는 대왕오징어 튀김, 얼굴만큼 큰 호떡 같은 초 고칼로리 간식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배 터지게 먹어버리고 시답잖은 소리로 아이들을 웃기면서 미켈란젤로와 호머와 세네카를 망각하려 했다. 나는 예리한 화가지망생에서 뚱뚱하고 웃긴 캐릭터의 소녀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성희는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누가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의기투합하는 반면, 성희는 자기가 먹고 싶으면 조용히 혼자 나가서 먹고 오고 안 먹고 싶으면 모두 다 나가도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 성희의 고고함은 도도함으로 해석하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남의 말을 나쁘게 하기 좋아하는 몇몇은 '성희는 그림은 잘 그리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림을 목적으로 화실에서 만났지만 그림에 대한 고민이나 진지한 대화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해봤자 어느 대학의 경향성은 이러저러하다는 식의 근거 없는 정보가 오갈 뿐이었다.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대화란 선생님이나 화실에 대한 불만, 실체 없이 무성한 소문, 친구들 험담과 같은 부정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었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대화라는 것은 좋아하는 선생님이나 화실 오빠들에 대해 열광하는 것이 다였다.


나는 그 당시 화실의 주임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공중부양을 한다고 해서 그걸 전수받는답시고 선생님 똘마니가 되어 따라다니면서 조수 노릇을 했다. 불을 끄고 주문 비슷한 것을 외우면서 신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진지한 행위를 했다. 선생님이 일만 하니까 심심해서 우리를 데리고 장난친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때 진짜 선생님의 엉덩이가 소파에서 약간 뜨는 걸 봤다고 흥분했고, 그 자리에 없었던 아이들에게 대단한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선생님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다음번에는 유체이탈을 보여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학 가면 행글라이더를 가르쳐 준다고도 했는데, 실제로 공중부양이나 유체이탈, 행글라이더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에 고구마 장사를 시켰다. 입시가 끝나고 고구마 통을 사주면서 고구마 장사를 해서 수입을 상납하라며 우리에게 앵벌이를 시켰던 괴짜 선생님이었다. 그때는 그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게 재미있었다.


나는 그런 엉뚱하고 어수룩함으로 인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예민한 예술가적 자질을 갈고닦는 길에서는 멀어지고 말았고, 너무 먼 길을 돌아 돌아서야 존재 깊숙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닌 성희와 더 닮아 있다는 것을 아프게 인정하게 됐다.

성희는 공중부양이나 유체이탈, 고구마 장사 같은 놀이에는 당연히 열외였다. 오직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 높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질문, 고뇌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성희를 사차원 또라이라고 했지만 고독하게 혼자였던 성희가 멋있었고,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가 찌질했다. 나는 그렇게 정신과 육체가 양분되는 불편한 감정 속에서, 원하지 않는 대학에 비싼 등록금을 내는 것으로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웃고 떠들며 고구마 장사를 하는 동안 성희는 좋은 성적으로 꿈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몸이 멀어지자 소식이 뜸해져 잊힌 어느 날이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성희가 한 번은 우리 동네에 있는 큰 병원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의 눈에 띈 성희는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병동에서 나왔다고 했고 이름을 불러도 못 듣고 초점 없는 눈으로 힘없이 걸어갔다고 했다. 그런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서 돌면서 성희가 대학 가서 적응을 잘 못한다고 하더니 결국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인격 살해한 것이 성희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때는 그 일이 대단한 사건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령 성희가 진짜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먹었다 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아니면 병문안 왔다가 눈에 뜨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성희를 닮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초점 없는 눈이나 힘없는 걸음, 불렀는데 못 들었다는 정황들도 마찬가지다. 남의 말 나쁘게 하기 좋아하는 친구와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반갑게 생각하는 힘없고 시기심 많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 추측성 소문, 삐뚤어진 마음이 문제였다.


한 번은 성희와 둘이 화실에 남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작심한 듯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너 살 많이 찐 거 알지? 처음에 봤을 때의 그 예리함이 그립다.”

나는 웃음으로 받아칠 수 없는 그 진지함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 뭔가 크게 곪아가고 있는, 두려워서 덮어두고 있는 상처가 성희의 예리한 촉수에 찔려 터뜨려진 것이 너무 아팠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응어리가 눈물로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지켜야 할 마지막 자존심처럼 꾹 참고 있었다. 이어서 성희가 나한테 뭘 물어봤는데 눈물이 귀까지 차올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성희가 다시 물었다.

“꿈이 뭐냐고?”

내가 겨우 힘을 짜내서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말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당하지 못한 내용과 말투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답을 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때 성희가 벌떡 일어나더니 장난 반 진지함 반으로 내 어깨를 잡고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 말고 네 생각을 말해보라고! 니 꿈인데 왜 다른 사람 생각을 말하냐고!”

처음 만났을 때는 꿈과 실력이 비슷했던 화실 베프가 점점 꿈에서 멀어지고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었다. 참고 있던 눈물이 눈에서, 코에서, 귀에서 집채만 한 파도가 되어 터져 나왔다.




나에게 그렇게 멋진 친구가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두루 좋은 신경증 환자로 사는 것보다 고독한 사차원 또라이일지언정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카리스마 작렬했던 내 친구 성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미켈란젤로와 호머, 세네카에 대해, 고흐의 고독과 프리다 칼로의 고통에 대해, 그 수준 높은 미학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먼발치에서 희미한 실눈을 뜨고 보지 않고 가까이에서 감탄하고 칭찬하고 질문하고 싶다. 핑계 대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 내가 그리고 있는 마을을 보여주고 싶고,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설레고 치열한 나의 꿈에 대해,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의 생각 말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고 성희의 생각을 듣고 싶다.


너는 왜 네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니?

이 말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서 상상계의 어린 왕녀가 자신이 주인공인 줄 모르고 계속 망설이고 있는 바스티안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말이다. 어린 왕녀의 안타까운 외침에서 삼십 년 전의 베프 성희가 꿈을 잃어 가는 친구를 안타까워하면서 외쳤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오래도록 나의 질문이 되었다.

나는 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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