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
불행으로 이끄는 정신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 분석을 받으면서 조건이 맞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분산되고 육체적인 노동으로 점철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는 정신적인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휴일이 되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질서 정연함을 호흡하며 균형을 잡았다. 어느 날,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글을 보았다.
1929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500파운드의 돈을 지금 한화로 환산하면 4천만 원 정도의 돈이다. 이 문장을 읽자 심장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이 느껴졌다.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현실의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틀림없이 기쁨이었다.
네 마음속에서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꿈틀거리는 것은 하느님의 천사란다.
잘 다루어야 한다.
앙리 보스코의 아름다운 글, <아이와 강>에 밑줄 쳐 논 문장이 생각났다.
방과 후 수업과 설거지, 마감 청소 등등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투잡, 쓰리잡으로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인생이란 손목을 내주면 팔 까지 내주어야 하는 법’(이 놀라운 표현은 그림형제 동화에서 본 것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일을 전환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스러운 조각난 시간과 헐떡이는 속도를 벗어나서 그토록 갈망하는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다면, 그 연결된 안정적인 시공간 속에서 미하엘 엔데의 질문처럼 ‘과연 나는 나의 자유를 찬란히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달려가고 벗어나고 도망쳐서 다다른 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가 문제였다. 그랬다. 정확한 목표가 없으면 또다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더 잘하게 된 일, 타인이 권하는 일, 전망이 좋다고 생각하는 일,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다시 나는 언제나 닥치는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한 질문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살아온 모든 것을 떠안고 합리화시키려는 정념의 삶이 아니라 단순한 기쁨의 삶을 살고 싶었다. 급변하는 삶의 굴곡들에 맞춰서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면서 살아오는 동안 내가 가진 고유의 색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진실되게 자신을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엄정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두렵게 느끼고 있었다.
어두운 심연의 두려움이 에메랄드 빛 찬란한 물살로 바뀌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었을 때 느꼈던 꿈틀거림이 다시 떠올랐다.
맞아, 내 꿈은 작가야.
의식적으로 ‘작가’라는 단어를 떠올린 첫 순간이었다. 무언가에 의해 억압되고 외면되었던 심층적인 욕구를 생각해 내자 기쁜 것도 잠시 뭔가 마음이 조급해졌다. 서둘러 글을 쓰지 않으면 쓰고자 하는 말들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글을 쓰려면 일정한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조각난 파트타임 아트바이트를 두, 세 개씩 하는 것으로는 시간도, 돈도, 집중력도 영원히 모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대로 출퇴근 시간이 분명하고 생활이 되는데 필요한 일정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특별한 준비 없이 그 조건에 부합되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호텔 룸메이트 일을 하기로 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목돈의 수입과 일정한 작업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청소를 한다는 일 자체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다. 내가 만일 깨끗하고 좋은 직업을 하나만 지속해 왔다면 하기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된 하이브리드형 인간의 장점도 있는 법이다.
룸메이드 업무에 대해서 직업 소개 글을 읽어보았다. ‘객실을 정리 정돈하고 비품을 보충하는 일’이라고 쓰여 있었고, 괄호에 참고표시로 미적인 감각이 있으면 좋다고 되어 있었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지만 기본 이상의 정비를 하면 추가 지급이 되고 옛날에 비해서 줄긴 했지만 팁도 있다고 했다. 돈보다 더 중요했던 건 정확한 근무 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으로 긴 시간이긴 했지만 연장 근무 없이 정시 퇴근이 보장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파트타임으로 조각난 시간의 사이를 풀타임으로 메꾸면서 글을 쓰는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하기로 했다.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