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 앎인 사람들
룸메이드 일은 일반 청소에 비해서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객실 정비의 꽃인 베드 메이킹(bed making)을 비롯한 모든 일을 배우고 익히는 데 훈련 기간을 거친다. 마치 군대의 사수처럼 담당 멘토가 지정되고 일정 기간 멘토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운다. 독립적으로 룸 정비를 할 수 있게 되면 처음에는 하루에 방 하나부터 시작해서 둘, 셋, 넷……. 개수를 늘려가면서 체계적으로 근력을 키워간다. 웬만큼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와서 일의 경중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데, 이 일의 고단함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근골격계가 맹렬하게 저항해 온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세계와 너무도 다른 인상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룸메이드 선배들의 인사법이었다. 그 독특한 인사법이란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투명 인간이라도 된 것 같았다. 인사를 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든가 인사를 받아주어도 아주 성의 없이 건성으로 반응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뭘 잘 못했나?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불안하고 기분이 안 좋았지만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 또 다른 의미로 신기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초임 메이드들이 들어오면 적응해서 다니는 경우보다 교육받는 동안 일이 힘들어서 적응을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완전히 한솥밥 먹는 식구가 될 때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기이한 문화는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조폭 집단도 아니고, 침팬지 무리도 아니고 서열이 웬 말인가? 입사동기 말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된 동갑내기가 알려줬을 때 정말로 장난인 줄 알았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서열 1위가 뭘 물어보면 곧이곧대로 말하지 말고 조심해야 돼.’와 같은 말을 할 때 장난인지 진짜인지 헷갈렸다. 나중에 사무실에서 서열 1위부터 10위까지의 이름이 규격의 증명사진과 함께 엄격하게 적힌 출력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입사 순서뿐 아니라 근무 능력이나 태도를 모두 반영해서 종합한 랭킹이라고 했다. 내 멘토 언니는 서열 3위였고, 처음으로 친구가 된 동갑 친구는 서열 4위였다.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이해가 되는 방식. 보이는 표층적 풍경과 들려지는 심층적 의미가 공존하며 변주되는 다층적인 세계관이 마치 한식당, 중식당, 일식당, 이태리 식당, 베이커리, 뷔페가 한 층에 있어 온갖 음식 냄새가 뒤섞인 것처럼 알 수 없는 냄새를 풍겼고, 지하 2층에서 27층까지 온갖 사연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처럼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일한 호텔의 하루 정비량은 기본이 객실 11개였다. 이 기본에 준해서 정해진 기본급이 책정되고 주말이나 성수기 때 객실을 더 배당받으면 추가금이 지급되는 식이었다. 처음에 방 서너 개를 할 때는 이 일이 참 할만하고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다 전망의 객실에서 솜털구름 같은 베드 메이킹을 할 때가 그랬다. 물론 그것은 아침의 풍경이다. 늦은 오후가 되어 아웃 정비를 할 때면 창 밖의 바다는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솜털구름 같던 이불은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으로 돌변해서 근육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다가 일곱 개, 여덟 개를 할 때 고비가 찾아온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 하는데 속도 조절을 잘 못해서 늦어지게 되면 육체적인 힘듦에 심리적인 압박까지 더해져서 몹시 힘들어진다. 게다가 선배들의 엄격한 교육이 최고조로 심해지기 때문에 이 지점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신입들이 절반 정도라고 한다. 선배들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자신들이 떠안아야 하는 짐으로 여기게 되고 그렇게 낙인찍힌 사람은 빨리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안팎으로 압력이 심해지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생존본능이 발동했고, 내가 전생에 하녀였나 싶을 만큼 나도 모르고 있었던 육체적인 잠재력이 살아났다.
호텔 객실 청소는 생물처럼 매일매일이 비슷하지만 다른 패턴, 다른 혼돈이 내장되어 있었고, 그 혼돈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예고되지 않은 어떤 도움의 상황’이 생겨서 일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예고되지 않은 어떤 도움의 상황’이란, 주임이나 기사님, 하우스 맨, 먼저 끝난 동료, 누군가 예기치 못한 사람이 등장해서 도와준다든가 방이 깨끗하다든가, 스케줄이 변경된다든가 등등의 일인데 예기치 못한 이변의 나타남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옛이야기나 구조가 분명한 고전 음악과도 같은 리듬의 하루는 결코 내 힘으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내려고 분투할 때만 경험되는 기적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어떤 도움도 없이 나 혼자 해결한다는 비장함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때 그런 신기한 상황이 마치 문이 열리듯이 열렸다. 수영을 못하는 상태에서 물에 던져졌을 때,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생존의 스킬이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경제 활동을 쉬지 않고 해 왔지만 막연하게 벌고 써왔던 돈 씀씀이의 느슨함도 땀 한 방울 한 방울의 최소 단위로 쪼개져서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증폭되는 값진 수업이 계속되었다. 처음 들어올 때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서 잠깐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신경숙 소설 <외딴방>에서 이해도 안 되는 책, 헤겔을 펴놓고 있는 ‘헤겔을 읽는 아이’가 나오는데, 그곳에서의 내가 ‘헤겔을 읽는 아이’였다. 비현실적인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두껍고 어려운 철학책을 펴놓고 졸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만 내가 너희들과 다른 것 같아. 나는 너희들이 싫어.’ 외딴방의 여공, 미서처럼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열한 개 기본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이었다. 지금까지 분명히 열 개를 했고, 나머지 방 하나가 남은 시점이었다. 하나를 체크를 안 했나 하고 스캐쥴 표를 들여다보다가 복도를 걸어 다니며 직접 객실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붉은 해를 등에 진 누군가의 검은 실루엣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했어. 쉬어.”
평소에 너무나 매몰차서 여러 차례 눈물이 찔끔 나게 했던 멘토 언니였다. 본인 방 열다섯 개를 다 하고 내 것까지 하나를 통째로 하고도 나보다 먼저 마치고 숨을 헐떡이지도 않은 채 차분한 호흡으로 말이다. 해가 지고도 멘토 언니에게서 후광이 보였다. 드디어 열한 개를 해내고 정직원이 되었다. 그동안 투명 인간 취급하던 선배들은 삶은 계란이며 옥수수며 직접 산에서 캔 쑥으로 만든 쑥떡이며 단호박 샐러드를 넣은 샌드위치며 다 못 먹을 간식을 몰래 찔러주곤 했다. 다른 사회에서 받은 어떤 상보다도 치열하고 벅찬 인정이었다.
일을 마치고 지하 락커에 내려가면 매일 정해진 멘트라도 되는 것처럼 오가는 인사로 시작해서 지저분하게 쓴 방, 늦게 퇴실한 고객, 갑질하는 진상 손님들에 대한 험담이나 그날의 에피소드들로 매일 말 잔치가 열렸다. 욕으로 시작된 분노의 열기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몇몇 언니들의 재치로 곧 풍자와 해학으로 바뀌어 모두 크게 한바탕 웃으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1003호 진짜 더럽게 썼더라. 오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아까 복도에서 죽는다고 난리 치더구먼 안 죽고 다 내려왔네.”
“10년 전부터 힘들어서 죽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직 일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어.”
“방 하기 딱 좋은 나인데~”
“호랑이가 쫓아와도 하던 그대로 쭉 밀고 나가야 돼. 멈추면 끝이야.”
“우리는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불행해.”
“내일 단체 들어오고, 다음 주에 영화제 있어서 풀이야. 이제 진짜 죽음이야.”
락커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도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본 여죄수를 닮은 첫인상의 동료들은 힘들어서 죽는다는 엄살과 매일의 위기 속에서 어찌어찌해서 살아남아 웃으면서 헤어지는 선량한 소시민들이었다.
반듯한 자세, 탄탄한 근육, 바지런한 몸놀림, 활기찬 보행……. 샤워실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선배들의 몸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나이에 비해 꼿꼿한 등뼈와 잔근육들로 다져진 메이드들의 육체는 마치 선수촌을 연상시켰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만큼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런 몸을 볼 때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게 되든 그 몸들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안팎으로 그동안 숨겨왔던 선배들의 따뜻하고 친절한 면면들이 보였고, 바깥세상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독특한 친밀함과 자부심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진심으로 그곳의 선배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동료들이 든든하게 여겨졌다. 한 달을 버티기도 힘겨운 일을 십수 년째 해내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사람들,
앎과 함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행동 자체가 앎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의 일을 ‘시지프스 ROOM11’이라고 명명했다.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매일 방 열한 개를 청소하는 일은 시지프가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처럼 가혹하게 여겨졌다. 시지프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굴러 떨어져서 원점으로 되돌아간 바위를 다시 굴려 올리는 힘겨운 형벌을 받았다. 시지프는 고통스러워하거나 멈추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한다. 제우스 신이 시지프에게 ‘왜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 바위를 밀고 있는가?’라고 묻자 시지프가 대답한다.
나는 바위를 밀어 올린 결과가 아니라,
미는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시지프는 바위를 밀어 올리면서 자기에게 형벌을 내린 신은 결코 알 수 없는 기쁨을 알게 된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인간 존엄성의 획득이다.’라고 말한다. 카뮈는 부조리와 직면한 뒤 모순을 해소하려 애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을 긍정하는 태도’를 갖는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이다.
프로젝트는 일의 계획과 수행에 있어서 스스로 계획하고 구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 활동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일시적이고 독립적인 속성의 일이다. 프로젝트, ‘시지프스 ROOM11’은 개선된 삶을 창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투입하는 노력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 속에서도 모든 과정을 포트폴리오로 엮어가겠다는 의지다. 존재 자체를 기쁨으로 생각하겠다는 결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