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벌레와 나무늘보
강도 높은 육체노동도 힘들었지만 체크인, 체크아웃이 분명한 일의 성격으로 인해 시간의 경계와 싸우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계산상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이라도 예외 없이 끝을 내야 한다는 부조리한 조건이 전제되어 있었다.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는데 청소가 안된 방이 많이 남아 있을 때, ‘러시(rush) 떴다’ 고 말했다. 러시가 뜰 때 유난히 초조해지고 불안해하는 증상을 지켜보았다. 학창 시절이나 다른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시간은 존재했고, 늦거나 결석하는 일이 거의 없이 성실함 하나만은 지나칠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시간에 쫓길 때는 꼭 맹수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물리적으로 공평하게 주어지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사라지고 심리적인 시간, 기회의 시간, 카이로스만이 내 앞과 뒤, 위와 아래, 양쪽 옆을 촘촘히 둘러싸고 압박해 왔다.
의식적으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초식동물이 되어 맹수가 쫓아오는 환상에 시달리며 호텔 헤르메스의 밀림을 뛰어다니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존재 불안 속에서 과도하게 성실했던 내 안의 시계는 내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심각하게 고장이 나 있었고, 시계를 고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짚신벌레는 어떤 곳에서든지, 무엇이든 자극을 받기만 하면 도주 운동을 시작한다.
야콥 폰 윅스퀼은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의 환경세계 속에서 반응하는 동물들의 지각적 특징을 설명하는데, 그중 짚신벌레의 행동에 내 병든 영혼이 투영되었다.
입시미술을 할 때, 그림은 잘 그리는데 속도가 느린 삼수생 선배가 나를 부러워하면서 ‘속도에서 만큼은 네가 전국 1등일 거다.’라고 했던 말을 비롯하여 과거의 기억 곳곳에서 ‘빠르다’는 행동의 특징으로 받았던 칭찬들이 들려왔다. 그 칭찬이 칭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밀림에서 쫓기는 동안 내가 지나치게 서두르게 된 동기가 된 쫓아오는 것들을 떠 올렸다. 이제는 더 힘을 쓸 수 없는 멸종된 공룡, 옛날에 꺼진 불길, 잠잠해진 쓰나미, 이제 안 해도 되는 밀린 숙제……. 처벌 공포들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분열된 자아의 환상이 만들어 낸 퍼레이드는 내가 그 존재를 알아차리자 점점 희미해지고 작아져서 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먹이를 먹을 때만 멈춰 서고 다른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놀라서 도망치는 짚신벌레의 도주행동을 슬프게 생각하면서 힘 있는 외부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의 힘으로 외부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주체적인 생명체를 그려보았다.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 것은 얀 마텔이 묘사한 나무늘보다. 아름답고 간결한 이 글이 너무나 좋아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읽고 낭송하고 베껴 쓰면서 병든 영혼의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푸른 정글 한가운데, 나무늘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귀가 먹먹해지는 폭우에도 나무늘보는 개의치 않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물에 만물은 다시 소생하고 동물들도 폭우를 고맙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나무늘보는 책을 가슴에 품고 빗물에 젖지 않도록 보호한다. 나무늘보는 한 단락을 겨우 읽었다.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무늘보는 그 단락을 다시 읽는다. 나무늘보는 그 단락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떠올린다. 나무늘보는 그 이미지를 되새긴다. 아름다운 이미지다. 나무늘보는 주변을 둘러본다. 나무늘보는 아주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정글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빗줄기 사이로 다른 나뭇가지들에 맺힌 밝은 점들이 보인다. 예쁜 새들이다. 아래에서는 화난 재규어가 앞만 쳐다보며 맹렬하게 달리지만, 나무늘보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자족의 한숨을 내쉬며 나무늘보는 온 정글이 자신과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한다. 폭우는 여전히 계속된다. 나무늘보는 느긋하게 잠든다.’
-얀 마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앞만 쳐다보고 맹렬하게 달리는 화난 재규어에 가까웠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자족의 한숨을 내쉬며 느긋하게 잠드는 나무늘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