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말하지 마

선함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

by 오렌


‘하녀들은 열쇠 구멍으로 엿보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자기들이 실제로 목격하는 좁은 범위의 하찮은 사실을 기준 삼아 어마어마하게, 더군다나 그릇되게 전체를 추측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카프카의 글이다. 카프카는 ‘책은 도끼로 머리를 깨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정말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카프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작가이니 당시의 하녀는 신분제 계급 사회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직급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처음 룸메이드 일을 하러 올 때 메이드가 이 메이드(maid, 하녀)인 줄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룸메이드란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아르바이트 앱을 통해 객실을 정리 정돈하고 비품을 보충하는 일로 미적감각이 있으면 더 좋다는 글에서 메이드가 방을 만드는(made) 일인 것으로 추측했었는데, 하녀라는 뜻을 알고 좀 놀랐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학력이 필요 없는 직업이고 허드렛일이라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스스로 말하지 않는 동료들의 신변에 대해서 천천히 알아가게 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텔 경영학과, 간호학과, 유아교육과, 작곡과를 나온 사람도 있었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고 보니 히스토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내 경우도 평범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과거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말해지는 것이었지 본인은 말하지 않았다. 업무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런 공부해 놓고 재능을 썩히면서 청소나 하고 있는 것은 실패한 인생의 증거이거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적인 일은 최대한 말하지 않았다.


빨리 마감한 날, 몰래 원 라이너를 정리하고 있는데 멘토 언니가 말했다.

“뭐 다른 일 준비해?

멘토 언니를 편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사적인 일을 하는 걸 들키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둘러댔다.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여기 십 년 넘게 있어서 딱 보면 알아. 오래 안 있을 것 같은데, 뭐 준비하지?

멘토 언니 말에 마음이 느슨해져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 의외의 충고가 돌아왔다.

나한테는 말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말하지 마. 여기서는 꿈을 말하면 안 돼.”

이유는 이랬다. 이 일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꾸준히 일하고 돈 모아서 집도 사고 정년을 기다리는 나이 많은 선배들도 몇 있기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각자 사정이 있어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대게 이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꿈꾸고 준비하고 있으며, 그들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여기를 떠난다는 것의 다른 말이었고, 기껏 교육시켜서 손발 맞춰놨는데 남는 사람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나의 꿈이 타인의 고통, 타인의 꿈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일을 준비한다는 것이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단지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케쥴러의 귀에 들어가면 어차피 나갈 사람에게 좀 더 불리한 스케줄을 줘서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에 좀 더 주의 깊게 둘러본 주변에서는 내가 몰래 성경책을 펼쳐보고 원 라이너를 정리를 하듯이 퇴근을 기다리는 스테이션 곳곳에서 몰래 뭔가를 엿보는 동료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유료앱으로 소설을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자그마한 노트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한 동료의 SNS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스케치 소품들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듯이 역동적인 고양이와 인체 소묘 작품들이 놀라운 실력이었다. 그림 아래에 달린 코멘트에 올해는 작품을 다섯 점은 완성해서 내년에는 꼭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적혀있었다. 그 SNS의 주인장이 바로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한 입사 동기였고 도쿄에서 미술대학을 나온 이력이 있었다. 그 친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계획같이 여겨졌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였다. 동기의 SNS를 본 후 나도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19세기 하녀들은 열쇠 구멍으로 타인을 엿보았는지 모르겠지만 21세기의 메이드들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조각난 꿈을 엿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절대 꿈을 말하지 마!

이루지 못한 꿈은 시기로 변질된다. 타인의 꿈을 응원해 줄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시기라는 감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앤. 베리 율라노프 부부 공저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인간의 시기심>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책을 접할 때만 해도 시기라는 감정을 질투의 다른 표현 정도로 알았는데, 읽어가면서 시기는 질투와는 다른, 대단히 문제가 되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투는 상대의 재능을 부러워함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 즉 생산적인 감정일 수 있지만 시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탁월함을 시기받는 사람에게 투사하거나 시기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재주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이 두 가지 방식에서 시기하는 사람은 선함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자신에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상대방이 가진 것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파괴하고 싶어지는 감정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시기받는 사람으로서 신데렐라를, 시기하는 사람으로서 신데렐라의 언니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웠다.

율라노프는 시기심의 반대 감정으로 선함을 말한다.

선함은 그저 착함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을 하며, 선함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선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진정한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쁜 생각, 고통스러운 실패, 질병, 그리고 상실 등의 위협적인 진공 속으로 빠져드는 대신에 작은 선함의 부스러기를 맛보겠노라고 선택할 때, 우리는 풍성한 선함에 참여하게 된다.


멘토 언니의 말을 들은 후로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필요해서 들어온 곳인데 탈출하는 것이 목표가 된 모순이 느껴졌다. 탈출을 향한 조급한 마음은 쉬는 날만 기다리게 했다. 휴일만 되면 도서관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1등으로 가서 그동안 써 모은 글감을 펼쳐놓고 미친 듯이 글을 쓰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막상 휴일이 되면 등에 강력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글을 쓰겠다는 집념의 불꽃은 이미 잿더미 속에서 깜빡이고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을 하며 불쏘시개 대신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다. 느지막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도서관 대신 대중탕에 가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는 사랑을 실천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마트에서 당도 높은 조청 유과와 새로 나온 맛의 감자칩, 천하장사 소시지, 투게더 등을 사 와서 티브이를 켰다. 꿈을 위해서 출현한 참가자들이 열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멍하게 하루를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널 믿는데 왜 너는 너 자신을 못 믿어?”

참가자들에 대한 멘토들의 호통에 맥박이 빨라졌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 있습니다.”

합격자들은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모습으로 환호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떨어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탈락자들은 세상을 잃은 듯이 슬퍼했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한 글자 차이로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이 꺾이는 장면에서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다. 티브이를 끄면 모니터에 비치는 내 얼굴에서 탈락자의 비애를 느꼈다. 나도 내가 설 무대를 위해 연습하고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최대한 나에게 친절하면서 이 터널을 통과하자고 다짐했다. 못나나 잘나나 끝까지 나를 믿고 같이 가야 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밖에 없으므로.




주말과 성수기의 하드워킹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밥과 잠만으로 연결되는 시간의 패턴이 지속될 때 글쓰기는 더 멀어지고 더 커지고 더 빛나고 더 두려운 것이 되어갔다.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 다짐이 반복되고, 반복된 다짐은 가분수처럼 점점 무거워졌고, 무거워진 영혼은 불행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냈다.

그 시절의 불행한 나에게 놀라운 의지의 위인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일에 지쳐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상태로 단지 쉬기 위해서 갔던 해변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에서, 카페에서 펼친 잡지에서, 잠자리에 누워서 들여다본 유튜브 영상에서, 무심코 넘긴 신문 조각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위인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행과 비슷하거나 더 힘든 조건 속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결혼도 안 할 정도로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다.

주류에서 벗어난 별종으로 적이 많았던 철학자 스피노자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기쁨과 전망만을 믿으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제3의 눈인 안경 렌즈를 세공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면서 외롭고 조용히 자신의 연구를 이어갔다.

<홍당무>를 쓴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안에서는 그를 파리의 사범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철도 회사, 창고 회사 등에서 낮은 급료를 받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파리에 가서 상징주의 시인들과 사귀면서 5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미국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한창 열심히 작곡을 할 때도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도 나르고 배관 일도 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가 자기 집 식기 세척기를 고치고 있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걸 보고 놀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봉준호 감동은 영화 <기생충>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면서 주인공 기우의 아르바이트인 과외선생 설정이 대학 때 중학교 남학생한테 수학을 가르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철문을 삐그덕 열면 정원이 나오는 고급 복층 빌라와 2층의 사우나, 사모님 첫 면담 때의 느낌이나 대리석 바닥의 감촉, 넓고 싸한 적막감을 기억해서 영화 속의 기이한 설정을 만들어 냈다.

별 하나를 바라보자 그 옆의 별이 보이고 그 옆의 또 다른 별이 보이고 점점 더 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게 되듯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했던 배우나 뮤지션들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찾아졌다. 배달 아르바이트,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음식점 서빙, 피팅모델, 구청 서류 정리, 전단지 돌리기, 의자 나르기 일용직, 주유소, 대리운전기사……. 다양한 생계형 파트타임 일을 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일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중요한 일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즉문즉설 강의로 유명하신 법륜스님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생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신 조언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좋은 것 찾는다고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를 찾는다면 허황되기 쉬워. 그렇다고 현재의 밥벌이만 생각하면 미래의 희망이 없어. 그래서 우리는 이상을 좇을 거냐, 현실을 중요시할 거냐 사람들이 많이 묻는데, 모순관계에 있는 게 아니야. 두 발은 현실에 두고 두 눈은 이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나가야 한다.

사람이라고 생긴 것은 밥을 먹어야 되죠? 현실적으로 최소한도의 생활비가 필요하죠? 이 현실에 서 있되, 자기 하고 싶은 걸 보면 돼요.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밥 먹을 수 있으면 좋고.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돈을 많이 주지만 이상과는 달라. 그렇다고 꼭 이상만 찾을 필요는 없고 차근차근 찾으면 되는 겁니다.

반대로 현실이 어렵단 말이에요. 어렵다고 타협을 하면 안 되겠죠? 힘들다고 목탁치고 제 지내면 기성불교하고 똑같아지죠. 그럼 어떻게 현상 유지를 할 거냐. 4년 아르바이트를 했단 말이에요. 내가 옛날에 수학 선생을 했기 때문에 돈 받으면서 생활 유지를 했던 거예요. 밥벌이는 수학 선생을 하고, 포교를 겸하다가 시간이 지나 신도가 어느 정도 생겼을 때쯤에 선생을 그만둔 거예요. 지금은 절이 아닌 강당에서 플래카드만 달아놔도 사람들이 있잖아요?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어요. 다섯 명도 안 왔어요. 그런 게 20년 정도 쌓이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짜로 먹으려고 하면 안 돼요.’


불가의 용어로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듯이 모든 만남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도, 일도, 깨달음도. 유형무형의 일체의 생성과 소멸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리 조급해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을 수 있고, 여여한 마음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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