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찾기

최후의 고독한 싸움을 향하여

by 오렌


아무리 굳은 결심도, 차분한 마음 다스림도 러시가 뜨면 금방 무너져 내렸다. 호텔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들을 단어로 메모해 두었다가 한 줄로 정리하는 원 라이너 작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어 수준의 메모만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날짜별로 정리해서 집게로 집어두었는데, 그것들이 쌓이면서 집게도 집지 않고 정리도 안 한 채 글감 상자에 던져 넣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글을 쓰겠다고 했던 결심은, 쉬는 날로, 쉬는 날은 ‘언젠가 시간이 나면’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쓸 말이 있다면 10년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는 헤밍웨이의 말을 위안 삼아 되새겼지만 글을 쓰지 않는 날이 거듭되면서 그토록 특별하게 여겨지던 ‘쓸 말’ 또한 평범한 일로 변해갔다. 우연한 에피소드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효되어 한 편의 재미와 의미를 지닌 지적 생명체로 진화하기를 꿈꾸지만 단세포 동물의 증식과 같이 단어만 쌓여가는 퇴행의 현실에 머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기 위해 하게 된 일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던 어느 날, 지워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기차역이었고 땅이 진흙으로 되어 있어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진흙 덩어리가 엉겨 붙어서 무거워진 발을 겨우 들어서 옮기고 있을 때였다. 돌무더기로 된 길 위에서 한 외국인 아이가 손을 뻗어왔다. 금발의 곱슬머리, 흰 피부에 붉은 주근깨가 있는 마르고 체구가 자그마한 10대 남자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잡고 돌담길 위로 올라갔다. 아이는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고, 모퉁이를 돌아가자 환하고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은 갤러리나 공연장의 로비 같아 보였고, 한쪽에 커다란 구 형태의 스마일이 있었다. 노란색 투명한 유리 재질이었는데, 한참을 우러러봐야 할 만큼 커다란 조형물이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하나하나 작은 퍼즐 조각들로 맞물려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든 진흙탕에서 나를 구해서 큰 스마일 앞에 데려다준 아이에게 고마워하자 아이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아이 엠 프랭크.”

노란색 곱슬머리, 흰 피부에 주근깨가 있는 얼굴의 프랭크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를 찾아줘.”


프랭크 꿈을 꾸고 난 후로 틈이 날 때마다 멍하니 앉아서 꿈의 요소들을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프랭크라는 이름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프랭크 꿈을 꾸고 난 후로 더 이상 쉬는 날이라고 하루 종일 해변의 바다사자처럼 이불에서 뒹굴지 않았다. 알람이 울린 줄도 모르던 휴일 아침의 의식은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눈이 번쩍 뜨게 했다. 그동안 기이한 손님들의 행태를 기록한 메모들과 달그락거리는 필통, 따뜻한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넣은 배낭을 둘러메고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선한 공기를 느끼면서 도서관 언덕을 오르는 가쁜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메모지와 펜을 들고 검색 pc앞에 섰다. 프랭크를 검색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그저 단순한 하나의 꿈일 뿐인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왜일까? 프랭크를 입력하고 엔터를 쳤다.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닐 도날드 윌쉬 글, 프랭크 리치오 그림의 <작은 영혼과 해>, <프랭크>라는 영화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 DVD도 검색되었다. 책이 많지 않은 동네 도서관이라 생각보다 많은 책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기대가 커서인지 특별한 수확이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뭘 기대한 것일까? 아직도 요행을 바라고 있나? 별 수확이 없다 해도 꿈 때문에 다짐 다짐하면서도 못 오고 있었던 도서관에 왔다. 프랭크 찾기와 별도로 책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찾아진 프랭크 관련 책들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슬렁슬렁 돌아다니면서 눈이 머무는 이름을 집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최후에는 고독한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최후의 싸움이란 바로 책 읽기다.

책 읽기를 가장 좋아한 다독가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말하는 최후의 싸움으로서의 읽기와 내가 생각하는 최후의 싸움으로서의 읽기는 물론 다를 것이다. 내용은 다를지라도 그 말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는 비장함만큼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어슴푸레하게 최후의 싸움이 그려졌다.




메이드들은 고객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었고,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짐도 실어 나르는 용도였으므로 고객용 엘리베이터에 비해 공간이 넓었다. 갓 구운 빵을 가득 실은 트레이도 이동시키고, 객실에서 주문하는 식사들도 날랐기 때문에 분주한 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늘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배가 고팠다.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무지 느렸다. 바쁠 때는 느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들리곤 했다. 한 번은 메이드들이 엘리베이터가 만석이 되게 타고 다른 층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서열 7위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앱으로 소설을 읽고 있었고, 이동 시간이라고 해도 근무 시간 중에 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 한 서열 5위가 옆자리에 있다가 한마디 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소설을 읽고 있던 서열 7위가 큰 한숨을 내쉬더니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야.라고.

그러자 엘리베이터 뒤쪽 구석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왜 필요해?”

대각선 구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들 해. 잘났든 못났든 여기서는 다 똑같아. 메이드는 그림자야.”

대각선 구석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존경하던 나의 멘토 언니였다. 필요한 말만 하고, 자신의 일을 끝내고는 쉬지 않고 후배들을 도우며, 내가 몰랐던 에디트 피아프를 듣고, 내 꿈을 응원한다던, 뭔가 다른 포스가 느껴지던 멘토 언니가 ‘우리는 다 똑같고 메이드는 그림자’라고 말하자 존경의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그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한 마디씩 하느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페이드아웃 되어 멀어지면서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라고 규정하며 내뱉는 말과 “다 똑같다”는 말, “그림자”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거대한 반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들과 분리시키지 않으면 그 ‘우리’와 ‘똑같다’와 ‘그림자’ 속에서 한데 뒤섞여서 용해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날은 일을 마치자마자 샤워도, 인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쁜 기분을 떨쳐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떨쳐지지 않고 도서관을 오르는 길에서 계속 생각이 났다. 그리고 정말 어느 시점부터 책 가장자리를 빠르게, 대충 넘기게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떨어진 사람들을 체벌하거나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하거나 도서관 자리를 지정해서 누가 몇 등인지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비인간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저항하지 못한 채 그 지옥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며 숨죽이며 살았던 암흑기가 떠올랐다.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두뇌 대신 위장을 선택하면서 살이 찌고, 한두 과목씩 포기하게 되고, 못하는 것을 피해서 그나마 잘하는 것을, 남들이 잘한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되고 착각하게 되고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직도 그 말이 다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는 맞다고 인정이 되었다. 이 일을 하게 된 건 “우리가”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란 걸. ‘뭔가’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걸 수용했다. 아프지만 감정을 인정했다. 감정의 수용으로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불행에서는 벗어나고 있었다. 병들었는데도 아프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건강해지고 있는 증거였다.




도서관에 오르는 숨소리가 편안해지면서 프랭크뿐 아니라 프랭클, 프랭클린이란 이름이 들어간 책들도 찾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가장 눈부신 성과로는 빅터 프랭클을 알게 된 것이었다. 빅터 프랭클은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즈, 카우퍼링, 투르크맨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수용소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과 살아남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발견했고, ‘의미치료(logo therapy)’를 창시했다. 포로수용소에서 경험한 일을 기록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위대한 광맥에서 캐낸 아름다운 보석 하나는 ‘태도의 선택’이었다. 아무런 잘못 없이 맞닥뜨린 크나큰 시련 속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으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해도 자신이 무너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태도로 시련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으로 캐낸 또 하나의 보석은 20년 전에 몇 해에 걸쳐 사용했던 다이어리 ‘프랭클린 플래너’다. 그때 비서학과에 다니던 친구로부터 시간 관리 시스템으로 효과적인 플래너라고 소개받고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서 갈등하다가 큰마음먹고 장만했던 다이어리였다. 잘 사용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빈 페이지가 생기고 글자가 흐트러지면서 내 삶에서 흐지부지 사라진 그 다이어리가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갈등을 하다가 역시 큰마음먹고 장만했고, 2년째 사용 중이다. 빈 페이지가 생기지 않도록, 글자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삶에서 흐지부지 사라지지 않도록 촘촘한 기록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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