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지평을 넓혀갈 나만의 탐험선

글쓰기의 재발견

by 오렌


측정된 객관적인 결과가 있어야만 하는 과학과 답이 없는 미술이 만나 자유로운 공간이 생겼고, 그곳에서 내가 하는 것이 맞는지 틀린 지 걱정 없이 느낌대로 그려서 출품했다. 수상은 아예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둔 작업이었다. 2020호에서 엿본 단어를 검색하다가 양자물리학 책을 읽게 되고, 공모전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열정이 일상을 충만하게 했고, 작업을 하는 순간만큼은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다. 참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수상자 발표 이후에 주최 측에서 메일이 왔다. 수상하지 못한 참가자를 포함한 전원에게 주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는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이란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호텔 청소를 하면서 받은 이화여대 나노과학연구단 주최의 시상식 초대장은 잿더미 위의 신데렐라에게 온 왕자님 파티의 초대장이나 친척 집 계단 밑의 허름한 다락방에 사는 해리포터가 받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초대장만큼이나 기쁜 것이었다. 요정이 마법으로 만든 호박마차를 타는 기분으로 일찌감치 KTX를 예매해 놓고 그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러시가 떠도 힘들지가 않았다. 모처럼 유니폼 대신 가벼운 옷을 입고 소풍 가는 기분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상을 받고 수상 작품을 보거나 설명을 듣는 정도의 일정을 예상했는데, 이화여자대학교 양자나노과학센터 헌정식 특강을 했고, 그 강연은 내 인생의 흔들리는 터전에서 중심을 잡는데 중요한 이미지를 제공해 주었다.


지평선 너머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
(There’s Planty of Room Beyond The Horizon)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과감히 가보자는 초대장
(An Invitation to Boldly Go Where No Has Gone Before)


이라는 다소 길고 의미심장한 제목의 강연이었다. 강연자인 나노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카블리상 수상자, 돈 아이글러 박사는 이 제목을 리처드 파인만의 1959년 논문의 제목,


밑바닥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 (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


에서 빌려와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아주 작은 규모로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험했다.


고 한다. 돈 아이글러 박사는 인류의 위대한 탐험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시대로 분류했다.

첫째,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을 발견한 고전적 탐험 시대

둘째, 노르웨이의 로알드 아문센, 영국의 로버트 팔콘 스콧, 영국의 에르네스트 세클턴이 남극대륙을 탐험했던 영웅적 탐험 시대

셋째,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가 달을 여행했던 현대적 탐험 시대를 들어 설명했다.

그 사실들에 이어서 덧붙인 말이 나를 압도했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성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실패였다.

그리고, 돈 아이글러 박사 본인이 카블리상을 받게 된 실험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서


Turn the knobs clockwise.
(손잡이를 시계 방향으로 돌려라.)


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진행되고 있는 일을 떠나지 말고, 한번 더 시도하라.
미지의 땅을 추구하라.


는 의미였다. 그리고 실험에 성공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폴짝 뛰어올랐고, 그때 했던 말은 ‘너무 재미있다!’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12분가량의 짧은 강연은 무한한 호기심과 탐험에 대한 갈증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지평선 너머로 가서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진취적 기상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계속 넓혀가는 자신만의 탐험선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재미있게! 강연은 양자물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나 미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는 그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삶의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진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강연 내용을 행복하게 반추했다. ‘삶의 지평을 넓혀갈 나만의 탐험선……. 생각하다가 졸다가를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어둠이 내리는 차창 밖에서 원 라이너가 떠올랐다. 이어서 오랫동안 써오고 있는 꿈 일기장이, 내가 머무는 시공간 어디에서나 글을 써왔지만 늘 깊숙이 숨겨놓아서 그림자로 존재했던 노트들이 보랏빛 하늘에 노랑노랑한 보름달 카스텔라처럼 둥실 떠올랐다. 달빛 아래에서 내 인생의 노트들을 생각하자 잊고 있었던 글쓰기와 관련된 기억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한 달간 아침 일찍 바닷가를 찾아가 맨발로 걸으면서 마음을 추슬렀고 집에 돌아와서 마음에 가라앉은 것을 글로 썼다. 마침 동네에서 열리고 있는 인문학 콘서트에 출품해서 우수상을 받았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시상식 무대에서 글을 낭송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아이를 출산하고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일기를 쓰는 내가 보였다. 손목에 안 좋다며 아기 낳고 곧바로 펜을 잡지 말라는 만류가 있었음에도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쓰고 또 쓰게 했다. 예방 접종하러 갔다가 아이를 출산한 병원에서 육아일기 공모전 홍보 전단을 보게 되었고, 출품해서 대상을 받았던 장면이 보였다.

임신하고 매일 산책 삼아 다니던 집 근처 대학교 교정에서 여성 백일장 대회 플래카드를 보고 즉흥적으로 참가해서 글을 썼고, 참가상으로 텀블러와 우산을 받아와서 요긴하게 잘 썼던 일도 떠올랐다.

타지에서 자취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때,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적적한 마음을 매일 글로 썼고, 많지는 않지만 꾸준한 몇몇의 독자들과 소통을 하며 외로움과 온기를 나누었던 일명 ‘자폐의 골방’도 기억이 났다.

한참을 거슬러 내려가서 초등학교 때 신문사 글쓰기 대회에서 2등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받아서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두꺼운 국어대사전을 부상으로 받았던 생각도 났다. 그때의 주제가 ‘운동화’였다. 나는 산문 부문이었고, 대상을 받은 1학년 꼬맹이는 ‘시’ 부문이었다. 시상식에서 대상작을 낭송했다.


빨간 자동차
내 운동화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태워줄 수 없어요.

40년 전의 일인데 그 시가 또렷하게 생각났다.

더 깊이 내려갔을 때,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탁 앞에 나가서 내가 지은 이야기를 해서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큰 소리로 웃었던 장면도 행복하게 반짝였다. 엄마는 10원 짜리에 깔려 죽고, 아빠는 50원 짜리에 깔려 죽고... 친구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더 더 거슬러 내려가서 돌잡이 상에서 연필을 쥐었던 기억이 났는데, 그때 뭔가 명료하지 않고 그 기억이 내가 상상을 한 건지 진짜인지 흐릿해졌다. 글과 관련된 기억을 끄집어 올리려는 의지가 돌잡이 상에 까지 뻗쳐서 연필을 쥔 것까지 상상을 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삶의 여정에서 만나지는 인연에 따라

글쓰기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을 때에도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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